엔더스 블랙 로맨스 클럽
리사 프라이스 지음, 박효정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내가 알고 있는 건 당신이 괴물이고 살인자라는 거야. 그리고 난 당신이 하는 그 어떤 말도 신뢰할 수 없어."

<진실을 하나 말해 줄게. 언제까지나 진실일 얘기란다. 듣고 있니?>

나는 그와 그의 금속성 목소리를 죽여 버리고 싶었다. "그래."

그가 하는 말이 서서히 들려왔다. <자신 외에는 아무도 믿지 마.> 한참 침묵 후에, 그가 덧붙였다. <그리고 의문을 가져라>

이 작품은 <스타터스>의 완결편이기 때문에 전작의 내용을 살짝 정리해둘 필요가 있겠다. 하지만 물론 전작을 읽지 않더라도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무리가 있는 건 아니다. 시작부터 전작에서의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배경은 생물학 폭탄이 강타한 근미래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폭탄이 떨어진 뒤 중장년층 대부분이 사망하고, '엔더'라고 불리는 7~80세 이상의 노인들과 '스타터'라고 불리는 10대 이하의 청소년들만 남게 된다. 기득권층이자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엔더들이 자신들의 일거리 보존을 위해 연장자 고용 보호법을 만들자 미성년자들의 취업은 불법이 되고, 보호자가 없는 미성년자들은 길거리로 내몰리게 된다. 열여섯 주인공 캘리는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자, 아픈 동생을 위해 불법적인 노동을 하게 되고, 그것은 바로 '신체 대여'이다. 돈은 많고 젊음이 필요한 엔더들이 스타터들의 몸을 렌트해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행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신체대여라는 아이디어 자체가 신선한 것은 아니었다. 꽤 많은 SF영화에서 지구를 침공하는 외계인들이 인간의 신체를 강탈하는 설정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얼마 전에 개봉했던 영화 <셀프/리스>에서도 기억이식수술을 통해 70세 할아버지가 30세의 신체 건장한 남자로 다시 태어나기도 했다. 최고의 부동산 재벌이지만 몸에 종양이 퍼져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남의 몸에 자신의 기억을 이식하고, 몸을 바꿔서 젊음을 누릴 수 있다는 설정이었다. 원하는 신체에 자신의 정신을 이식해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나, 이 작품의 젊은 신체를 빌려서 잠깐 살 수 있다는 것이나 실제로 가까운 미래에 벌어진다면 끔찍하기 짝이 없는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 애는 자기 원래 몸으로 있었다.

그는 나를 등지고 있었지만, 그의 근육질 어깨, 곱슬머리도 직모도 아닌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모든 것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그 애는 거기에 있었지만, 그 애는 사라졌다. 마땅히 존재해야 할 방식대로였다. 그 애는 자기가 속한 곳으로 돌아왔다. 그 애 자신의 몸 안으로.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은 그 애를 만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동생을 구하기 위해서 신체 대여에 자원했던 탓으로 캘리의 머리 속에는 칩이 박혀 있고, 그것은 곧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올드맨의 목소리를 자신이 원하지 않을 때도 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시작부터 머릿속에 칩을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스타터의 몸이 폭발하는 것으로 서문을 여는데, 캘리는 그제야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칩의 위험성을 자각하게 된다. 자신의 머릿속에 잠재적인 폭탄이 있는 한 절대로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녀는 또 한번 생존을 위한 게임에 뛰어 들게 된다. 전작에서 바디뱅크가 괴멸되면서 엔더들에게 자신의 몸을 렌트해 주지 않아도 되게 되었지만, 그 일로 뇌에 칩을 이식한 그들을 추적하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다. 특히나 이번 작품에서 밝혀지는 올드맨의 실제 정체는 엄청난 반전으로 충격을 주어, 전작보다 더 흥미진진하게 스토리를 이끌고 가는 원동력이 된다.

꽤 많은 디스토피아 소설을 읽어 왔지만, 이 작품에서 불법 신체 대여 회사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음모는 그 어떤 작품 못지 않게 탄탄한 구성으로 그다지 길지 않은 분량에도 묵직한 무언가를 전달해주었다. 리사 프라이스의 데뷔작이 바로 <스타터스>였는데, 어쩜 첫 작품부터 이런 강렬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는지 감탄 스러울 만큼 말이다. 미국에서는 이 책이 청소년 소설로 분류되어 있었다는데, 어른들이 만든 거대 시스템과 맞서 싸우며 고군분투하는 십대 주인공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책은 청소년 소설로만 분류하기엔 너무 매력적인 요소들이 많은 작품이다. 그래서 국내에 출간될 때는 그저 디스토피아 로맨틱 스릴러 장르로 나온 거겠지만 말이다.

"결국 스타터는 미들이 될 것이고 엔더가 될 것이며, 새로운 세대에는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커다란 구멍이 남지 않게 될 것이다."

남의 몸을 빌려서라도 불멸의 삶을 꿈꾸는 인간들의 욕심,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늙을 수밖에 없다. 영원히 시간을 거스를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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