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계획
발렝탕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로뮈알... 테오가 그간 자신의 삶에서 완전히 밀어내고 지워 버린, 무의식 깊숙이 묻어 두었던 사람이다. 인생의 한 토막을 싹둑 잘라낼 수 있는 그의 놀라운 능력이 여기서도 어김없이 발휘된 덕이다. 그는 여태껏 과거나 감정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 미래지향주의자라고 스스로 자부해왔다. 그런 그가 여기에 와 있는 것이다. 그 빌어먹을 과거, 그것과 맞서겠다면서.

어딘가 익숙한 설정이다. 결코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고, 친하다고는 볼 수 없는 친구들이 모여 산행을 하게 되고, 산이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의외의 상황들은 그들 중 누군가에게 다른 속셈이 있다는 이야기. 현재 산행을 하게 되는 친구들의 상황에 이어 과거 그들 사이에 있었던 일의 실체가 밝혀지는 것이 교차 구성되어 있고, 서로를 믿지 못하는 친구 아닌 친구들의 관계는 점차 금이 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익숙한 설정이라고 해서 이야기까지 뻔할 필요는 없다. 발렝탕 뮈소는 누가 기욤 뮈소 동생 아니라고 할까 봐 페이지 터너 다운 면모를 선보인다. 책장이 빨리 넘어간다는 건, 그만큼 독자들에게 몰입할 거리를 준다는 말이고 지루할 틈이 별로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거에 벌어진 어떤 사건이 결국 현재 이들의 일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인과응보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나, 사실 그것은 오로지 신만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그 역할을 인간이 하고 있다는 것. 그것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완벽하게 설정된 계획을 통해서 말이다.

테오와 도로테는 2년 동안 커플로 함께 살고 있다. 돈과 사치를 좋아하는 도로테와 사람을 대놓고 무시하는 것이 습관이 된 테오는 로뮈알의 초대로 한적한 산 속의 산장에 도착한다. 로뮈알은 한 때 테오와 절친한 친구였으나 연락이 끊겼다가 십여년 만에 우연히 카페에서 마주치게 됐다. 그의 갑작스런 산행 제안으로 테오와 도로테 커플, 그리고 테오의 친구 다비드와 쥘리에트 커플이 함께 주말 산행을 하기로 한다. 악명 높은 피레네 산맥에 모인 이들 중에 유일하게 산에 대해 아는 것은 로뮈알 뿐, 나머지 멤버들은 완전히 산행엔 초보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관계가 어딘지 처음부터 삐걱거린다. 로뮈알을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라 반가워하는 것 같지도 않은 테오는 대체 왜 그의 초대에 응한 것이며, 그와 도로테의 관계도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고, 신경성 거식증 환자인 쥘리에트는 험한 산행을 견뎌낼 체력이 되는 것인지, 다비드와 테오의 사이는 가까워 보이면서도 서로 배려하지 않는 이상한 친구 사이로 보인다.

의식이 뿌연 세계 속을 유영하자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실타래처럼 엉키기 시작했다. 그는 눈을 감았다. 의식을 뒤덮은 뿌연 안개가 세상에 대한 그의 지각을 왜곡시키는 순간, 이상하게도 서서히 다른 영역이 열리기 시작했다. 집요한 의문들이 고개를 들었다. 명징한 의식과 이성에 가려 그 동안 분명하게 표현되지 못하고 있던 의문들.

이상한 디테일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간 단순한 의구심에 머물렀던 것들이 끈질긴 의혹으로 바뀌었다. 딱 봐도 알 수 있는 로뮈알의 아마추어리즘..... 길을 잘못 들질 않나, 지도를 두고 오질 않나, 하네스를 준비하지 않은 건 또 어떻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니까, 이들의 산행은 시작부터 이상한 조짐들이 여기저기 복선처럼 깔려 있었던 셈이다. 게다가 산행 시작부터 테오는 갑자기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쥘리에트는 예상했던 대로 위태로워 보인다. 그녀가 다칠 뻔한 것을 구한 계기로 테오는 상처를 입고, 다비드와 다툼이 일어나고, 갑작스런 기상악화로 엄청난 소나기를 만난 그들은 원래 일정대로 가지 못하고 동굴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긴박감 넘치게 진행되는 현재의 스토리 중간중간 과거 테오와 로뮈알이 처음 만나던 학창 시절의 에피소드가 교차되어 보여진다. 홀어머니와 함께 어렵게 자라온 로뮈알은 우연한 계기로 평소 꿈도 꾸지 못하던 명문 고등학교의 학생이 되고, 그곳에서 부유한 집안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온 테오를 만나고 그와 가까워진다.

테오와 로뮈알, 그들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어떻게 해서 세상 무서울 것 없었던 테오가 과거의 발목에 잡히게 된 건지, 과연 로뮈알이 산행을 계획한 진짜 목적은 무엇인지, 그리고 십 여년 이나 연락을 끊고 살아왔던 로뮈알의 초대를 선뜻 받아들인 테오의 속마음은 뭔지는 직접 이야기를 읽어보아야 한다. 아마도 앉은 자리에서 첫 페이지부터 끝 페이지까지 자신도 모르게 달려가게 될 테니 말이다. 그만큼 몰입감이 좋고, 긴장감 넘치는 군더더기 없는 전개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물론 반전을 위한 추리소설이 아니기에 어느 정도 예상된 결말에 이르기는 하지만, 그것에까지 다다르는 솜씨는 매우 뛰어나서 발렝탕 뮈소의 다른 작품을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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