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하드보일드를 읽는다 김봉석의 하드보일드 소설 탐험 2
김봉석 지음 / 예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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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다른 사람의 리뷰를 굳이 찾아서 읽지 않게 되었다. 너무 줄거리 요약만 하는 글은 지루하고, 그렇다고 자기 감상에 빠져 작품과 관계없는 내용만 이어지는 글은 재미가 없고, 지나치게 분석적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들을 늘어놓는 글은 목적이 리뷰가 아니라 잘난 체 같아서 볼 필요성을 못 느낀다. 뭐 그렇다고 내가 쓴 리뷰를 다시 읽어보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책을 열심히 읽고 리뷰를 쓰는 것은 아직 그 책을 읽지 않은 미지의 독자에게 책을 소개하는 목적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에게 책을 기억하기 위한 메모를 남기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리뷰를 읽게 되는 건 아주 최소한이다. 그렇지만, 가끔 전혀 관심이 없던 책인데 우연히 보게 된 리뷰 때문에 구매하게 되고, 결국 그 작가의 팬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몇몇 리뷰는 꾸준히 챙겨보게 되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김봉석 평론가의 글이다. 그의 글이 매번 감탄을 자아내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몇몇 글들은 기어코 책을 구매하게 만드니 말이다.

책을 볼 때, 제일 먼저 표지를 본다. 다음은 뒤 표지를 보고 작가 소개와 차례 순으로 넘어간다. 존 하트의 <아이언 하우스>를 봤을 때, 표지에 적힌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지옥이라도 가겠다"라는 문구에 혹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 중 하나는 연인이나 가족 등 무엇인가를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이야기다. 절망적인 상황이라면 더욱 좋다. 영화 <맨 온 파이어> <킬 빌>처럼.

    -'누구도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도망칠 수 없다' 존 하트의 <아이언 하우스> 서평 중에서

이 책은 영화평론가이자 대중문화평론가 김봉석의 하드보일드 소설 서평 집으로, 2012년 출간된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을 잇는 두 번째 권이다. 이 책을 위해 새로 쓰여진 건 아니고, 기존에 그가 범죄소설 서평을 연재하는 분량의 모음집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는 하드보일드가 일종의 애티튜드, 태도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세상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 내가 진리를 알고 있다며 마구 판결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일단 물러나서 지켜보는 것... 그리고 결국은 '태도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사실 그의 글보다, 이런 그의 생각과 태도가 더 마음에 든다.

언젠가 오프라인에서 그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생각보다 참 말을 두서 없게 하셔서 살짝 놀란 적이 있다. 하긴 글을 잘 쓰는 사람이 꼭 언변까지 좋다는 법은 없으니까. 알고 계신 사실은 많은데, 그걸 조리 있게 전달하는 건 좀 서툴어 보여 오히려 인간적으로 보였달까. 그가 가지고 있는 이름값이 있으니 같이 갔던 친구는 기대했던 강연이 지루하다며 투덜거렸지만, 나는 뭐 나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여성 탐정을 상상해보자. 경찰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가 묻는 말에 답할 의무는 없다. 심증이 있다 해도 용의자나 참고자로 강제 소환할 수도 없다. 물리력으로 굴복시키지 않는 이상은. 그러니 탐정이라면 자신만의 장점과 무기가 있어야 한다. 뛰어난 증거 수집력과 두뇌, 웬만한 상대와는 싸워 이길 수 있는 물리력도 갖춰야 한다. 새러 패러츠키가 쓴 <제한 보상>의 주인공 V.I. 워쇼스키 역시 그렇다. 얼 스마이슨이라는 깡패 두목이 똘마니 둘을 보냈을 때, 워쇼스키는 그들을 꽤 고생시킨다. 갈비뼈도 부러뜨리고 최대한 저항을 한다.

               -'현실을 직시하고 정면으로 맞서라' 새러 패러츠키의 <제한 보상> 서평 중에서

이 책에 실린 서평 도서 중에 읽지 않은 책 한 두 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미 읽은 책이라 글을 읽는 재미가 있었다. 내가 바라보는 시각과 그의 시각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는 맛도 있었고, 색다른 견해로 흥미로울 때도 있었고 말이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책들이라 서평의 글 내용 자체보다는 멋진 제목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몇 가지 골라보자면 이런 식이다.

허술한 사회가 괴물을 키워낸다(지우, 혼다 테쓰야)

잔인한 세상, 그러나 어딘가에 인정이 있다(귀동냥, 나가오카 히로키)

때로는 직관이 증거보다 낫다(데드 조커, 안네 홀트)

지옥 속에서도 알고 싶은 것은 진실(IN,기리노 나쓰오)

책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기도 하고, 분위기를 읽어내기도 하고, 호기심을 자아내기도 하는 멋진 제목들이다. 책을 홍보할 때도 카피가 중요하듯이, 사실 서평도 제목이 꽤나 중요하다. 쏟아지는 무수한 글들 속에서 누군가에게 읽힐 운명의 글이 되려면 눈에 띌 만큼 인상적이어야 하니 말이다.

하드보일드가 무엇인지 궁금하신 분들, 하드보일드 소설을 읽어보고 싶은데 어떤 작품을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는 분들, 그리고 이미 너무 많은 하드보일드 소설들을 만나봤기에 다른 사람의 견해가 궁금한 분들에게 이 책이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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