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수염의 다섯 번째 아내 블랙 로맨스 클럽
제인 니커선 지음, 이윤진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할리우드에서 가장 자주 거론되는 작가 중 하나가 바로 샤를 페로와 그림 형제이다. 샤를 페로의 <신데렐라>, <푸른 수염>, <빨간 모자>, <장화 신은 고양이>, <푸른 수염> 등과 그림 형제의 <개구리 왕자>, <백설공주>, <라푼첼>, <헨젤과 그레텔> 등등.. 재미있는 건 곰팡이가 피어 있을 것만 같은 낡은 이야기일 것 같은 이들 작품들이 동화와 호러 스릴러가 꽤나 어울린다는 걸 보여준다는 것이다. 게다가 동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작품들은 소녀들부터 중장 년 여성들까지 매혹시키기에 충분하다는 것. 로맨틱하며 위험한 남자 주인공과 아름답고 순진한 여자 주인공의 조합은 소녀 풍 동화들이 성인용 드라마로 진화했을 때도 크게 어색하지 않으니 말이다.

이렇게 이상한 기분이 들다니, .... 기이한 일이다. 그 머리카락을 발견하고 이렇게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이 바보 같다. 따지고 보면, 윈드리벤 애비가 존재해 온 다양한 시기별로 여러 세대의 여성들이 이곳에서 살고 죽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당연히 인지하고 있는 바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내 후견인의 부인들이 모두 너무나 최근에 이곳에 살았다는 점과..... 그들의 머리가 모두 붉은 빛깔을 띠고 있었다는 점이다.

...... 모든 것이 과하게 느껴졌다. 마치 어떤 동화 속에서처럼 이 세계 전체가 화려함으로 뒤덮여 있지만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를 페로의 잔혹 동화 <푸른 수염>은 영화로 만들어 진 적도 있고, 아멜리 노통브를 비롯해 여러 작가들에 의해 소설로 변주되기도 했다. 그만큼 잔인하지만 매혹적이라 할만큼의 무언가가 담겨져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사실 플롯 자체가 치정극에 가깝기 때문에 현대물로 풀기에도 변주할 거리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야기를 어떻게 바꾸어도 변하지 않는 플롯은 이거다. 엄청나게 화려한 저택에 살고 있는 남자, 그리고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여자가 등장한다. 여자는 어떤 이유로 남자의 집에 가서 살게 되고, 남자는 외출하면서 대저택의 열쇠를 맡기면서 특정한 장소에는 가지 말라고 당부하지만, 호기심 가득한 여자는 금기 따위는 무시해버린다. 그곳에서 발견하게 된 것은 그 남자의 아내였던 여자들의 시체들이다. 그리고 위기에 처한 그녀를 구하는 것은 그녀의 가족들로, 다양하게 변주가 되어도 이 틀은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제인 니커선의 이 작품은 노예 제도가 살아 있던 19세기 미국으로 가져와 부유한 대부이자 후견인의 초청으로 그의 대저택을 방문하게 된 17살의 아름다운 소녀와 매력적이지만 다혈질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40대 남자 사이의 관계를 그리고 있다. 소피아가 대여섯 살 때 변호사인 아버지의 고객이자 친구였던 버나드는 그녀가 미성년일 때 아버지가 죽게 된다면 자신이 법적인 보호자가 되겠다고 나선다. 아버지는 그렇게 되면 최소한 소피아라도 부족함 없이 살 거라고 그걸 허락했고 말이다. 몇 달 전, 소피아의 아버지가 죽었고 그녀의 가족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태였다. 그 때 버나드 씨가 자신의 저택으로 그녀를 초대한다는 편지를 보낸 것이다. 물론 그녀는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그가 홀아비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소피아가 그를 처음 본 인상은 이랬다. <내 속의 모든 것이 소용돌이치는 기분이었다. 내 앞에 서 있는 이 사람은 여태껏 본 중에 가장 잘생긴 남자였다> 라고. 그 동안 상상으로 부풀어진 이미지에, 직접 와서 보게 된 어마어마한 저택에 압도된 어린 소녀는 마치 사랑에 빠진 것처럼 그렇게 그를 만나게 된다.

나는 버나드씨가 내 손을 쓰다듬거나 그의 입술이나 뺨으로 내 손을 가져가는 행동을 허락했다. 그런 애정표현이 그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없는 "프랑스식" 행위이리라고 치부했다. 게다가 나는 그에게 홀딱 반했을 뿐 아니라 그를 진정 사람으로서 좋아했다. 물론 때때로 그의 눈빛에 뭔가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있기는 했다. 그는 어쩌면...... 위험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 , 왜 그런 표현이 머릿속을 스쳤을까? 어쩌면 그 표현이 어울리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버나드 씨는 호랑이를 연상시켰다.... 늘씬하고 벨벳처럼 부드러운 존재였으며 미소를 짓지만 위험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매우 매력적이었다.

소피아는 그곳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지려고 애쓰며 일상을 가족들에게 자주 편지로 보냈지만, 가족들로부터 답장은 전혀 오지 않는다. 저택의 주인인 버나드씨와는 함께 식사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얼굴 보기도 힘들고, 그곳에서 그녀가 할 일이라고는 산책을 하거나 승마하기, 바느질, 피아노 연주, 독서 등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매일의 시간을 채워 보내기 위해 은밀히 이곳 저곳 다니면서 저택을 둘러보고 시작한다. 너무도 커다란 저택이라 활용되고 있지 않은 층들도 있고, 사용되지 않고 있는 통로도 있고, 여기저기 과거 수도원의 유물들도 많아 호기심 많은 그녀의 시간을 가득 채워준다. 그러면서 그녀는 버나드씨의 전 아내들에 대한 흔적을 하나 둘 씩 찾아내어 그들의 정체에 대해 이런 저런 상상을 해본다. 네 명의 전 아내들이 모두 자신처럼 빨갛다고 묘사될 수 있는 머리를 갖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리고 점점 버나드씨의 다혈질적인 성격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갑자기 분노를 드러내거나, 어느 순간 화를 내거나 급변하는 그의 눈치를 보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로맨틱한 긴장감은 매우 천천히 진행되고, 별다른 사건도 없이 매일매일이 흘러간다. 책을 읽는 우리는 홀아비인 그가 왜 어리고 예쁜 소피아에게 잘해주는지, 왜 그녀를 이곳에 와서 살게 했는지 모두 알지만, 우리의 순진무구한 주인공은 그것을 깨닫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 버나드씨 또한 전혀 서두르지 않고, 그가 마침내 속내를 드러내어 소피아에세 자신의 아내가 되어 달라고 말하는 순간은 무려 이야기가 70프로 이상 진행된 시점이다. 그제야 이곳에서 정말로 도망가고 싶다고 깨닫는 소피아의 자각 덕분에 그 이후에 진행되는 스토리는 나름 긴장감이 부여되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스토리가 너무 천천히 진행되어 이 작품이 로맨스인지, 미스터리인지 감을 잡기가 어렵다.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풍경 묘사와 집주인의 비밀스런 전 부인들에 대한 상상은 매혹적이지만, 샤를 페로의 원작이 동화 치고 꽤나 잔혹했던 충격에 비하면 이 작품의 스토리는 부드러운 편이다. 아무래도 작가는 원작의 소름 끼치는 잔혹성보다는 고풍스럽고 우아한 동화를 그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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