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주는 레시피
공지영 지음, 이장미 그림 / 한겨레출판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젠가부터 집밥 열풍이 뜨거워졌다. 흰 쌀밥과 정갈하게 차려진 반찬이 나오는 한식당들이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끼니는 챙기고 살자는 취지의 먹방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모아 요리하는 과정 자체에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우리가 먹는 음식에 어떤 재료가 들어가고, 어떤 방식의 조리방법이 쓰이는지 알려면 직접 만드는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이렇게 건강한 생활방식을 추구하려는 킨포크 라이프를 지향하기 시작한 건 어쩌면 점점 삭막해지는 도시의 삶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출근길 지옥철에서 시달리고, 회사에서 상사에게 한 소리 듣고, 내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기획안은 풀리지 않고, 연인은 속을 썩이고, 그렇게 종일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는 퇴근길 지하철에서 사람들에게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면서 극대화가 된다. 그러고 퇴근해봐야 어두운 집에서 나를 반기는 건 아무 것도 없고, 대충 차려서 배를 채우고 거실에 앉아 멍하니 티비를 보고 있노라면 다음날 다가올 출근에 대한 압박으로 답답해지고 말이다. 이럴 때 생각나는 것이 '엄마가 해주는 집밥'이 아닐까. 이상하게 내 입맛에 꼭 맞는, 맵지도, 그렇게 짜지도, 지나치게 달지도 않으면서 조미료 하나 안 들어가도 감칠맛이 돌고, 두 그릇을 먹어도 살이 찌지 않을 것만 같은 포만감을 주는 그럼 엄마 표 밥상 말이다. 그러니 집밥 열풍과 쿡방의 인기의 도착점은 바로 엄마의 집밥이다. 우리는 밥 힘으로 살아가니까.

재료는 시금치야. 싱싱하고 예쁜 시금치 한 단. 약간의 올리브유(없으면 포도씨유나 현미유, 유전자를 조작한 옥수수유 같은 것은 권하지 않아. 이왕이면 몸에 좋은 기름은 한 병쯤 마련해두자. 앞으로도 기름은 계속 쓰일 거거든), 파르메산 치즈 가루, 이렇게.

 

이 책은 소설가 공지영이 매우 간단한 요리법을 상황에 맞춰 딸에게 소개하면서, 엄마로서 자식에 대한 애정과 조언이 가득한 매우 따뜻한 책이다. 물론 레시피 책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간단한 요리법들 투성이지만, 재미있는 건 이 책을 읽다 보면 요리에 관심이 없었던 이들이라도 "맛있겠다, 나도 한번 만들어볼까'하는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 부담 없이 시도해 보고 싶을 만큼 어렵지 않은 요리들이지만, 함께 실린 일러스트를 보면 꽤 그럴 듯해서 이 책은 레시피 북으로서도 괜찮은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화가 머리끝까지 뻗치는 날,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았던 누군가의 옷차림조차 견딜 수 없을 만큼그냥 다 그만두고 막 망가져 버리고 싶은 날, 그런 날 그녀는 <시금치 샐러드>를 만들어 먹어보라고 말한다. 방법은 레시피라고 할 것도 없을 만큼 초간단. 시금치를 깨끗이 씻어 한입에 먹기 좋을 만큼 손으로 뜯고, 올리브유를 그 위에 살살 뿌린 뒤, 마지막으로 파르메산 치즈 가루를 '성질대로' 뿌린다. ! 요리하는 데 5분도 걸리지 않지만, 그 맛만은 여느 레스토랑에서 나온 시저 샐러드 못지 않다. 그리고 이런 날에는 화이트 와인을 함께 마시는 것도 좋다. 샐러드를 다 먹고 나면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라벤더 오일을 로션에 섞어 얼굴과 몸에 바르고,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워 오늘의 일기를 써보는 거다. 세상에 지치고 상처 입으며 돌아온 딸에게 이렇게 멋진 해결방법을 제시하는 그녀가, 정말 대단한 엄마처럼 느껴진다.

우선 유기농 브로콜리를 사자. (유기농 제품 비싸. 그러나 유기농 제품을 먹도록 하자. 비싸면 조금만 먹기로 하고. 같은 돈이면 좋은 것을 조금만 먹는 것이 훨씬 더 좋아.) 먹기 좋은 크기로 썬 다음 찌거나 삶아. 유기농일 경우 잘 씻어 냄비에 물 한 숟가락만 넣고 찌면 특유의 영양이 유지되고 색깔이 잘 살아나서 좋아. 만일 유기농이 아니라면 소금을 한 꼬집(엄지, 검지, 장지를 모아 살짝 꼬집듯 집어낸 양) 넣고 물을 넉넉하게 부어 삶자

공지영 작가는 인간의 세포가 6개월마다 모두 바뀌기 때문에 인스턴트 음식에 쌓였던 먼지와 싸구려 기름기, 합성 조미료에 지친 우리의 세포들에게 좋은 것들을 주자며 유기농 재료들을 권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소중하니까. 한 끼를 먹어도 가치 있게 먹을 줄 아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그만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남에게도 딱 그만큼의 존중을 받게 된다면 참 좋을 것 같다.

 

 책에 실린 레시피 중에 탐나는 것은 비프커틀릿이었다. 돈까스보다 훨씬 맛있고, 고급스러운, 그리고 혼자 먹기에도 그럴듯해 보이는 메뉴여서 어쩐지 먹고 나면 든든한 것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커틀릿이라고 해서 손이 많이 가고 귀찮을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우선 조금 두꺼운 불고깃 감이나 구이용 고기를 준비해서, 후추를 치고, 밀가루, 달걀, 빵가루 순으로 입히는데, 작가만의 비장의 무기는 바로 빵가루에 파르메산 치즈 가루를 섞는 거라고. (사실 이건 어떤 쿡방 프로그램에서 모 쉐프님이 이미 알려준 비법 아닌 비법이지만) 구울 때는 버터나 올리브유를 넉넉하게 두르고 튀기는 것이 아니라 전 부치든 지져내면 된다. 생각만 해도 먹음직스러울 것 같다. 이렇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며 앞으로 수많은 실패와 시련들을 겪어 나가야 할 자식에게 멋진 요리법을 전해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멋진 엄마가 어디 있을까 싶을 만큼 공감이 되고, 마음 따뜻해지는 책이었다. 언젠가 내게도 딸이 생긴다면 꼭 권해주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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