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스토어 밀리언셀러 클럽 138
벤틀리 리틀 지음, 송경아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작은 상점들이 사라지고, 점점 거대 체인점들로 도배되는 거리를 보면서 언젠가는 저러다 동네 전체가 거대 기업의 자본에 먹혀 좌지우지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적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지역 사회에 파고드는 무시무시한 자본의 힘은 실제 현실에서도 너무 자주 겪고 보아오던 거라 어느 정도 짐작이 될 것도 같지만, 이 작품에서 그려지는 풍경은 입이 떡 벌어지는, 그러니까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이럴 수도 있겠구나, 설마 이렇게까지? 말도 안돼.에 이르는 그것은 진짜 공포란 바로 현실에 바탕을 둔 리얼리즘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니 이 작품은 벤틀리 리틀이 브람스토커 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이유를 짐작하고도 남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겨준다.

그 사슴은 불길한 징조였고, 앞으로 올 일의 전조였다. 그때도 그는 그것이 이상하다, 심지어 섬뜩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사슴의 죽음이 완전히 사악해 보였다. 마치 표지판을 세운 결과 그 사슴이 죽은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 땅이 밀리면서 다른 동물들도 이렇게 죽은 것이다.

그들은 건설의 대가로 죽은 것 같았다.

여느 때처럼 집에서 나와 아침 조깅을 하던 빌은 초원에서 새 표지판을 보게 된다.

2

더 스토어가 옵니다.

그는 초원 한가운데 들어서는 거대한 새 건물을 상상하는 것도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표지판 기둥 사이에서 죽은 사슴의 시체 때문에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집에 돌아온 그는 업무를 위해 컴퓨터를 켜고 뉴스 헤드라인들을 훑어보다, '한 달 동안 세 번째 더 스토어 대학살'이라는 기사를 보게 된다. 여러 지점의 더 스토어 판매원이 동료 직원들을 무차별로 쏘아 사람들을 죽이고, 부상시킨 사건이었다. 그는 자신이 보았던 죽은 사슴을 떠올리며 오싹한 한기를 느낀다. 하지만 그의 딸들을 포함해 대부분의 주니퍼 읍내 주민들은 더 스토어가 들어온다는 사실에 모두들 흥분해있다. 할인 체인이 아니라 마치 고급 백화점이라도 들어오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더 스토어는 예정대로 오픈을 하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쇼핑을 하면서 필요한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는 더 스토어가 천국 같다고 느낀다. 필요한 물건을 살 때마다 시내에 나가야 했던 그들에게 그곳은 온갖 최고 상점의 온갖 최고 물건들을 모두 가져다가 한 상점에 모아놓은 백화점과도 같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현대적이고 최신식인 소매점안, 최신 물건들이 가득한 곳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거나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가득한 그곳은, 외견만 봐서는 동물의 이유 없는 죽음이나 수수께끼 같은 사건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인다.

더 스토어의 모든 부서, 모든 복도, 모든 구석에는 비디오카메라가 숨겨져 있어. 카메라는 하루 24시간 켜진 채 우리 상점 경계 안의 모든 활동을 기록하지.

할인 마트에 CCTV가 설치된 것이 뭐가 이상하겠는가. 문제는 탈의실 안에서 옷을 갈아입는 사람의 모습과 특정 부위를 클로즈업까지 하면서 훔쳐 볼 수 있는 비디오카메라까지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우리는 빌의 딸인 서맨시가 대학 등록금을 위해 파트타임 업무를 지원하면서 말도 안 되는 면접 방식을 목격하게 된다. 거짓말 탐지기를 통과하기 위해 블라우스와 브래지어를 벗으라고 하질 않나, 테스트 과정에서 남자와 오럴 섹스를 해본 적이 있냐고 묻질 않나, 약물 시험을 위해 소변 샘플이 필요하니 당장 그 자리에서 치마를 벗고 유리병에 소변을 채우라고 하지를 않나.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면접이 있고, 그에 응하는 이 사람들은 뭔가 싶은 그런 상황을 말이다. 물론 면접 중에 아무도 그녀의 머리에 총을 대고 억지로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심리적인 압력인지 감정적인 무능력인지 그녀는 수치스럽고, 무서웠지만 그 과정을 참아내고 더 스토어의 직원이 된다. 마지막으로 업무에 투입되기 전 과정은 비밀 유지 서약과 '집중 공격'을 견뎌내야 하는 것인데, 그 실체는 직접 작품 속에서 만나보라. 당황스럽고, 어이없지만 내가 그 상황에 처했다고 생각하면 소름 끼치도록 무섭기도 하다.

그러나 이 모든 충격적인 상황들은 모두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 이보다 더 무시무시한 상황들이 계속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더 스토어라는 거대한 체인 마트가 조그만 지역 사회를 말 그대로 '장악'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은 너무도 현실적이고, 그럴 법하기도 한 풍경이라 더욱 오싹하기만 하다. 그들이 지역 상권을 어떻게 붕괴시키는지, 그들이 고객을 어떻게 노예로 만들어가는지, 그리고 그들이 경쟁자들을 어떻게 제거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점점 피라미드처럼 쌓여가 말도 안 되는 공포가 완성되어 간다.

이곳에 이상한 것이라곤 없었다. 이건 정상적인 할인 소매점이었다. 몇 가지 불운이나 부정적인 사고가 우연히 겹쳐 일어났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어디서나, 내내 일어난다.

우리나라에서도 불리는 기업형 슈퍼마켓이 가속화되면서 골목상권과 재래시장들이 거의 다 전멸해가고 있는 것은 벌써 몇 년이나 된 뉴스 거리이다. 작가인 벤틀리 리틀은 실제 월마트 등 미국의 마트 체인들에서 모티브를 얻어 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단순히 공포 소설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부족할 만큼 리얼해서 무섭고, 비현실적으로 보일 만큼 무시무시해서 섬뜩하다.

예전에 SSM 규제에 대해서 홈플러스 회장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질 좋은 상품을 값싸게 파는데 이 사람들은 질이 나쁠 수도 있는 것을 비싸게 판다"면서 대형마트 규제는 서민들이 싼 것을 사 먹지 못하게 하는 반 서민 정책이라고 말이다. 물론 누가 봐도 적반하장이나 다름 없는 어처구니 없는 발언이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나름 그들만의 논리가 있다는 것이고, 약자의 편이 아니라 강자의 편에서 보자면 사실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이더라도 누군가에게 그럴 듯하게 포장하고, 납득시킬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영화 '카트'나 현대 차 노조 등 노동자들의 부당한 대우에 대해 분개하는 근로자들의 현실 따위 나는 관심 없다, 혹은 안 그래도 팍팍팍 노동계 현실을 굳이 소설 속에서까지 머리 아프게 만나야 하겠냐 싶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걱정은 전혀 마시길. 이 작품은 진지하고 현실적인 배경이라는 재료에 치명적인 스토리를 얹어, 공포로 양념을 치고, 디저트로 충격적인 반전까지 더해 놓은 제대로 물 만난 완벽한 엔터테인먼트 작품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저 이 무시 무시한 공포 소설을 오롯이 즐겨라. 그 뒤에 따라오는 여운과 현실에 대한 경각심은 그저 보너스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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