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셰프 -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셰프의 24시간
마이클 기브니 지음, 이화란 옮김 / 처음북스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바야흐로 대세는 요리하는 남자이다. 한참 '먹방'에 관한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더니, 이제는 '쿡방' 모든 방송사를 휘어 잡고 있다. 바라만 보는 먹방보다는 직접 참여해볼 수 있는 쿡방이 더 즐거운 오락이 된 것이다. 요리와 일상을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이런 방송들은 집밥 열풍으로 고스란히 이어져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의 추구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거기다 젊고 실력있는데다 재미있기 까지 한 인기 쉐프들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숲처럼 푸른 빛을 띠는 시실리안 피스타치오를 만져보니 부들부들하다. 깨물어보자 입 안 가득 즙이 퍼진다. 맛이 풍부하고 달콤하다. 처음 경험하는 맛이다. 아르간 오일 뚜껑을 열자 오일 향이 공기를 가득 채운다. 오일이 병목을 타고 방울져 내려와 손을 타고 흘러내린다. 이것을 낭비한다는 건 죄악이다. 얼른 혀로 훔쳐낸다. 감칠맛이 있고, 풍부하며, 고소하다. 이번엔 PX(페드로 히메네스) 식초를 맛보자 강렬한 달콤함이 좀 전의 진한 오일과 강한 대조를 이룬다. 다른 식초들과 다르게 향긋함을 풍기는 이 넥타는 농도가 짙고 여러가지 맛이 켜켜이 쌓여 있다.

이 책은 실제 셰프이자 작가인 마이클 기브니가 셰프의 그늘에 가려 주목 받지 못하지만 실질적으로 주방에서 가장 많은 일을 하는 셰프의 오른팔, '수셰프(Sous Chef)'를 주인공으로 그려낸 소설이다. 그가 특급 레스토랑 주방에서 겪는 24시간, 하루 동안의 모든 일들을 통해 그들의 삶 전체를 직접 느껴볼 수 있다. 수셰프라는 낯선 직책은 한 주에 70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셰프 옆에 딱 붙어 셰프의 바람을 실행하는 수행자이다. 그는 주방의 견습생처럼 요리를 어떻게 하고 레스토랑을 어떻게 구성하는지를 배우려고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 이미 그런 기술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진정한 셰프가 되기 위한 마지막 단계에 있는 것이다.

몇 해전 드라마 <파스타>에서 등장했던 매력적인 셰프. 주방에서는 까칠하지만 여자친구에게는 너그러운 멋진 남자 이선균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드라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 바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 쉐프." 아마도 그때부터 였을 지도 모른다. 요리하는 남자에 대한 환상이 사람들에게 생기기 시작한 것이 말이다. 연예인을 능가하는 외모와 입담의 셰프들이 방송을 통해서 캐릭터화되면서부터 그것은 구체화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 그들이 일하는 주방이 전쟁터라는 것은 우리 일반인들이 실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주방은 완전히 딴 세상이기 때문에. 나는 워낙 요리에 관심이 많기도 했거니와, 그들 쉐프들의 생활도 너무 궁금했기에, 실제 그들이 매일같이 전투를 치르는 그곳, 전쟁터를 한번쯤은 구경해보고 싶었다.

오후 시간은 드디어 서로 연결되기 시작한다. 혼돈의 시간을 잘 헤쳐 나와 모든 것을 내 통제 아래 두었다. 사실 너무 잘 해내서 셰프가 하나부터 열까지 하기로 했던 테린에 들어갈 가니쉬도 대신 구워줄 수 있는 시간도 남았다. 그것까지 해주면 셰프가 고마워하겠지 하는 기대를 한다. 눈은 긴장감에 여전히 여기저기 두리번거리지만 이번에는 밖에 한번 나갔다 와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안정감이 찾아온다.

그런데 갑자기 셰프의 살찐 손이 내 어깨를 때린다. 안정감은 산산조각 나고 만다. 손에 쥐고 있던 칼을 놓쳐 새끼손가락 끝을 거의 베일 뻔했다.

", 이제 말해보게." 셰프가 말한다. "잘 되어가고 있나?"

"그런 것 같습니다, 셰프."

"4시 반까지 가능한가?"

"(Oui), 셰프." 나는 대답했다. "언제나 가능합니다."

요리가 멋진 일이라는 것 중에 하나는 바로 여러 가지 감각을 활용하는 거라는데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요리는 운동신경, 효율적인 움직임, 예민한 감각을 활용할 수 있는 장'이라고. 소스가 타면 냄새로 알 수 있고, 생선이 다 구워지면 소리로 알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요리가 매일 똑같은 일의 반복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매 순간 새로운 경험'이라는 사실이다. 이미 알고 있는 레시피가 있더라도, 이미 많은 경험을 했더라도, 지금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감각을 이용해 재료에 따른 다양한 독특함에 대처하고, 기존에 가지고 있는 정보를 모두 활용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주방 체험 24시간을 겪고 나니 요리사들이 일생 전체를 통해 겪게 되는 수많은 경험, 그 히로애락을 한꺼번에 보게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물론 일생을 하루 안에 담아놓은 거라 전부는 아니겠지만, 주방이 전쟁터라는 것만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저자인 마이클 기브니는 분명 요리사인데, 웬만한 소설가 뺨치게 묘사가 너무나도 멋지다. 덕분에 재료의 맛을 보는 것도, 요리를 하는 과정에 대한 것도 매우 리얼하다. 실제로 요리하는 현장을 지켜보는 것 같고, 요리의 향이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말이다. 지금 요리하는 남자들에게 푹 빠져 있다면, 그래서 '쉐프'라는 직업에 마구 관심이 생겼다면, 이 책이 가장 핫한 아이템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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