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사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9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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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토 가나에의 작가인생 제2막의 시작을 알리는 이 작품은 굉장히 따뜻하다. 혹시 이 책을 아직 읽기 전이라면 의아할 것이다. '따뜻'하다고? 미나토 가나에가? 그만큼 그 동안의 작품들은 충격적이었고, 거침없었으며, 파격적인 반향을 일으키는 소재와 플롯으로 사랑을 받았었다. 그랬던 그녀가 '꽃사슬'이라는 예쁜 제목만큼이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써냈다. 특유의 날카로움을 잊어버리지 않고, 다만 내놓는 그릇을 달리해 더 보기 좋게 플레이팅했다고 할까. 인간 내면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시선은 여전한데, 어디선가 화과자의 달콤한 냄새도 나는 것 같고, 색색깔의 꽃 냄새도 나는 것 같아 훨씬 더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미나토 가나에의 날선 문장들을 좋아했지만, 읽을 때마다 어딘가 불편하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기에, 이런 변화가 반가웠던 것도 같다.

 

말하자면, '리카梨花'의 이야기

매년 10 20, 어머니 앞으로 커다란 꽃다발이 집에 배달된다. 철들 무렵부터 그런 기억이 있다. 꽃 값은 생각도 못했던 어린 시절에는 꽃집 아저씨가 몸을 기울여야 현관에 들어올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꽃다발을 그저 예쁘다고 생각하며 바라보았다. 생일도, 결혼기념일도 아닌 날에 꽃이 오는 이유에 대해서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영어 회화 학원 강사로 일했던 리카는 갑작스런 회사 부도로 인해 퇴직금은커녕 지난달 급여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러던 차에 유일한 가족인 외할머니가 위암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곧 수술을 해야 해 돈이 필요하다. 일가친척 하나 없는 그녀가 의지할 사람은 매년 엄마에게 꽃을 보내던,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신 다음 경제적 원조를 자처했던 익명의 남자 K뿐이다.

 

말하자면, '미유키美雪'의 이야기

내 잘못, 내 잘못이었어.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데 등에 따스한 손길이 닿는 것을 느꼈습니다.

"괜찮아?"

상냥한 목소리도 들립니다. 하지만 고개를 들 수도, 말을 할 수도,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멈출 수도 없었습니다.

외삼촌이 임원으로 계신 건설회사에서 만난 가즈야와 결혼한 미유키는 아이는 아직 없지만 둘만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무심코 한 사소한 행동 때문에 남편이 오랫동안 준비했던 공모전이 그들에게 좌절을 안겨준다. 게다가 이어진 갑작스런 사고, 그녀는 이 모든 상황을 견딜 수 없어 과거를 지워버리고만 싶다.

 

말하자면, '사쓰키紗月'의 이야기

"어머니는 모르겠지만 전 아버지가 안 계시다는 사실보다 아버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게 더 괴롭단 말이에요. 난 어떤 사람의 자식일까, 내 성격은 누굴 닮았을까.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있어도 어머니하고 내 감상은 어딘가 다르죠. 난 아무리 드라마라 해도 어머니처럼 달콤한 동화 같은 생각은 못해요."

일러스트레이터인 사쓰키는 시민회관에서 주최하는 꽃 수채화 교실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학창시절 친구였던 기미코에게서 연락이 오고 그녀가 어렵게 부탁을 하는 바람에 난처해진다.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려면 다른 누군가의 믿음을 배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세 여자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데, 인물들 간의 관계가 전혀 상관없어 보이듯이 진행되던 이야기가 마지막에 이르러 긴밀하게 연결이 되며 클라이막스로 치닫게 되는 구성이다. 그들 세 여자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주는 꽃사슬은 눈과 달, 꽃을 의미하는 '설월화'이다. 미유키美雪, 사쓰키紗月, 리카梨花, 이렇게 세 명의 주인공의 이름에 눈, 달 꽃을 의미하는 한자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이 거주하는 동네에 긴쓰바를 판매하는 가게 매향당과 야마모토 꽃집이 있는데, 긴쓰바와 꽃은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네모나게 빚은 통팥에 얇은 밀가루 피를 입혀 구운 화과자와 보라색 꽃도라지 다발, 파란색 용담 다발, 그리고 코스모스... 마치 페이지마다 맛있는 냄새가 나고 달콤한 향기가 나는 것만 같은 이야기이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안고 사는 세 여자의 이야기는 일본에서 드라마라도 만들어졌다. 미나토 가나에의 작품은 영화, 드라마등의 영상매체로도 자주 선보이고 있는데, 이 작품 역시 의문의 남자 K를 중심으로 한 미스터리와 세 명의 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사연이 감정적으로 소용돌이를 만들어내어 감동을 주었을 것 같다. 따뜻하지만 평범하지 않고, 잔잔하지만 지루하지 않으니 그동안 미나토 가나에의 다소 쎈 작품을 사랑했던 이들이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완전히 달라진 그녀의 새로운 작품 세계! 다음 작품이 더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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