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1970
유하 원작, 이언 각색 / 비채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작품은 유하 감독의 10년에 걸친 '거리 3부작'의 완결편이라 해서 개봉 전부터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감독의 말에 의하면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 모두 강남을 무대로 하고 있기에 엄밀하게 말하면 '강남 삼부작'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 김래원, 이민호라는 두 명의 배우가 만나는 작품이라 그 기대치가 더 컸던 것 같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밑바닥 인생부터 시작해서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겁 없는 청춘 '종대'와 조직의 보스가 되기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는 건달 '용기' 두 사람은 고아 출신으로 강남 땅을 둘러싼 이권다툼의 최전선에서 정치권력에 의해 목숨 걸고 싸우게 되는 역할이다. 책을 읽는 내내 각각의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의 이미지가 겹쳐져서 더욱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것 같다. 그만큼 이 책은 마치 시나리오라도 읽는 것처럼 지문의 수식어가 길지 않고, 간결해 주요 사건들이 스피디하게 전개되는 것이 장점이다. 그러니까 배우들이 읽는 책처럼 이어지는 대화들로 상황 전개가 매우 빠르다는 것이다. 시인이기도 한 유하 감독 원작이라 인물의 심리를 보여주는 대목들에서 감정적인 부분도 가끔 있어 영화에서는 만날 수 없는 재미도 있다.

 

 

 

목구멍에서 왈칵 솟는 어떤 기운에 종대는 말문이 막히고 만다. 그 감정이 행여 얼굴에 드러날까 어금니를 악물어본다. 이런 것이 가족인가. 가족의 정이란 이런 것인가. 내게도, 나 같은 놈에게도 이런 것들이 허락된단 말인가.

압구정동, 청담동을 비롯하여 '강남'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부유하고, 현대적이고, 고급스럽다를 넘어서 사치스럽고, 향락적이고, 과시스럽다는 느낌으로 대다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강남도 1970년대에는 허허벌판, 한적한 시골 같은 풍경이었다. 정부는 과밀화되어 가고 있는 구 시가지의 인구를 한강 이남으로 분산하고 서울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 강남개발을 하려고 영동지구 개발계획을 발표했다. 당시에는 강남이라는 지명이 없었고 영동지구라고 불렸다 한다. 강남개발로 인한 부동산 붐 속에서 이 지역은 고소득층들을 위한 소비 공간으로 발전했고, 강북 다수의 소비관련 업종들이 강남 일대로 이전하게 된다. 막 개발이 시작될 즈음의 강남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논현동과 삼성동에 지어진 차관 아파트, 삼성동 경기고등학교 앞쪽 논밭, 멀리 보이는 잠실학생체육관, 압구정 현대 아파트 근처 과수원과 밭에서 소를 몰고 있는 풍경, 강남역 지하철 공사가 한창이던 강남역 사거리 등 개발초기 영동지구의 모습은 매우 이색적이라 기억에 오래 남았다. 유하 감독의 <강남 1970>은 바로 이 강 남땅의 개발이 막 시작되던 즈음의 1970년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아주공갈 백용기, 허풍은 여전하구만."

"진짜야 새끼야. 나 예전의 빽용기 아니라고."

"알았어, 나중에 갈게. 지금은 강 사장님 모시고 있잖아."

"잘 생각해라. 군인하고 건달은 줄을 잘 서야 돼."

이야기는 매우 간단하게 정리되지만, 여러 이권 다툼을 하는 인물들의 관계는 꽤 얽혀 있어 복잡하게 흘러간다. 고아로 자라 형제처럼 지내는 종대와 용기는 넝마주이 생활을 하며 간신히 살아가지만, 그들이 거주하던 무허가 판자촌을 철거하러 온 용역건달들에 맞서다 우연히 조폭이 개입된 야당 전당대회 훼방 작전에 얽히게 된다. 세 개의 파가 연합한 건달들의 집단난투극 속에서 맞고는 못 사는 성격의 종대는 누군가에게 얻어맞고 눈이 뒤집혀 그들과 같이 싸움을 시작하고, 용기는 급하게 먹은 우유에 탈이나 화장실에 갔다 그곳에서 불시에 얻어맞고는 정신을 잃는 바람에 그들을 고용한 파가 아닌 다른 파의 차에 태워지게 된다. 그리고 그 아주 사소한 우연이 그들 두 사람을 엇갈린 운명 속으로 갈라놓게 된다. 이후 종대는 조직에서 나온 길수를 아버지처럼 여기며 그의 딸 선혜와 함께 세탁소에서 살아가며 길수 몰래 조폭 생활을 하고, 용기는 명동파의중간보스가 되어 있다. 종대는 복부인 민 마담의 일을 해결해주며 돈을 빌리다 강남 개발의 이권다툼에 뛰어 들게 되고, 그 와중에 용기와 재회하게 된다. 이들 두 사람은 다른 조직에 있음에도 다시 손을 맞잡게 되고 이후 이야기는 더욱 복잡하고, 치밀하게 전개된다. 강남 개발은 조폭을 넘어 정치권이 연계되어 있던 터라 스케일이 매우 큰 이야기이다.

어떤 영화 리뷰에서는 이 작품이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1972) 한국판을 만들려는 작가의 야심이라고 소개가 되어 있더라. 아직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책으로 읽어봤을 때는 스케일 상 충분히 가능하지 않나 싶었다. 물론 <대부>가 단순히 스토리만으로 따라 잡을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말이다. 영화로 보면 될 이야기를 굳이 책으로 읽을 필요가 있나 싶은 이들이라면, 캐릭터의 심리에 주목해보자. 스크린에서 만나게 될 배우들의 내면은 우리가 직접 볼 수 없으니 말이다. 책에서는 종대와 용기, 두 인물의 속마음, 심리 등이 어느 정도 드러나 있어 그들을 이해하는데 꽤 도움이 된다. 그리고 책의 후반부에 실려 있는 제작발표회 현장 스케치에서도 작품에 대해 직접 소개하는 감독, 배우들의 말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 같다. 그러니 당신이 혹시 이민호, 김래원 배우의 팬이라면, 혹은 유하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면, 이 책도 함께 읽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