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트
스티븐 베이커 지음, 이종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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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미래 예측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면 어떨까? 미국 일간지워싱턴 포스트미래에 살아남을 직업, 10년 후에도 살아남는 직업 고르기 노하우를 공개했는데, 인공지능·로봇 전문가, 빅데이터 분석가, 교사, 목수를 ‘10년 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으로 꼽았다고 한다. 특히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은 공상과학 영화나 디스토피아 소설에서 단골 소재로 정말 어느 정도 시점의 미래가 되면 인간의 두뇌를 넘어서는 컴퓨터가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달에는 MIT의 뇌 과학자들이 원숭이 수준의 사물 시작 능력을 구현하는데 성공했다는 기사도 보았다. 그 동안은 인간이 설계한 컴퓨터가 지각 능력 측면에서 영장류의 뇌를 넘어서지 못했었는데, 그 한계가 처음으로 깨졌다는 얘기다. 이것은 어쩌면 이제 곧 영장류의 뇌가 정복될 시점이 다가왔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정말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미래 예측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2072년 사람들은 머릿속에 두 개의 두뇌를 가지고 산다. 원래 자신의 두뇌인 천연두뇌와 '부스트'라 불리는 인공두뇌가 그것 이다. 간단히 말해 부스트는 컴퓨터를 두뇌 속으로 집어 넣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머릿속에 들어간 슈퍼 컴퓨터는 생각들을 일련의 단어나 명령어로 변환시킬 수 있게 해주고, 사람들은 그 가상 세계를 통해 음식도 먹고, 섹스도 하고, 친구들과 문자도 주고 받을 수 있게 된다. 연애도 가상 세계 속의 아바타를 통해 육체적 접촉 없이 시작하고, 가상세계에서 연인이 된다. 그 속에서 섹스도 하지만 그것 역시 신체 접촉 없는 버추얼 섹스이며, 사랑의 기억을 미세 조정하는 앱으로 가상 세계의 행동을 실제로도 체감할 수는 있다. 먹는 것 또한 맛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정상적인 음식이 아니라, 단백질, 탄수화물 식의 알약을 통해 섭취한다. 알약을 먹은 다음 부스트 속에서 그것을 음식 앱을 통해 기름에 튀긴 조개, 코브 샐러드, 땅콩버터 등을 먹은 것과 같은 가상체험으로 전환시켜 가상적으로 먹은 느낌을 즐긴다. 그러니 이들에게는 가상세계가 곧 현실세계와 같다는 얘기다.

랠프의 기억은 파괴되었다. 그는 평생 동안 디지털 세계의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 시간이 표시된 정밀한 이미지, 비디오, 노트, 링크 등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천연두뇌뿐이었다. 이 두뇌 속에서 기억(그것을 기억이라고 할 수 있다면)은 식욕, 후회, 욕망 등의 물웅덩이에서 불쑥불쑥 솟아나왔다. 그는 대화의 단편적 조각들만 건져 올릴 뿐이었다. 떠올린 흐릿한 그림들은 이리저리 바뀌다가 사라져버렸다. 그것들은 선명한 그림이라기보다는 유령 같은 흐릿한 자취를 가진 생각에 지나지 않았다. 이걸 뭐 두뇌라고 할 수 있을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랠프는 보건복지부의 칩 실험실에서 긴밀하게 협력하며 해마다 실시되는 부스트 업데이트를 감독해왔다. 업데이트 덕분에 매년 3월 중순 약 4 3,000만 명의 미국인이 잠에서 깨어나면, 그들의 두뇌가 전보다 더 총명해지고 활발해졌다는 색다른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올해 업데이트 시행이 예정되어 있던 어느 날, 그는 칩 부서에 새로 부임한 수지로부터 게이트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는 얘길 듣는다. 그는 중국인들이 통신과 데이터를 보호해주는 칩의 감시 게이트를 활짝 열어놓은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니까 이것은 즉 정부와 기업이 개인 사용자의 생각과 꿈, 행동 등 사생활을 낱낱이 살펴보고 감시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회사들이 한 개인의 평생 기억들을 마음대로 검색하고, 감시하고, 엿볼 수 있다니 랠프는 자신이 그 게이트를 폐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신규 업데이트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기려던 기관이 그를 납치해 부스트를 제거해버린다. 태어나던 날 머리에 칩을 삽입했던 그는 이제 허약한 천연두 뇌의 야생 상태로 돌아간다.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나 막막하다. 이 작품은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태어나자마자 부스트를 사용했던 남자, 부스트 업데이트를 감독할 정도로 해킹, 디지털 쪽의 천재로 불리던 이 남자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오로지 천연두뇌만으로 거대한 기업과 싸워야 하는 것이 이 작품의 주요 스토리이다. 그는 멕시코 인접 국경지역에 테크놀로지의 도움을 거부한 채 천연두뇌 상태로 살아가는 야생인간들을 찾아가 아날로그 세계의 사람들과 협력을 하게 되고, 부스트를 통해 전 인류를 통제하려고 하는 기업과의 전쟁은 매우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신기한 건 이들이 보여주는 미래 세계의 모습이 터무니없는 공상과학처럼 허황되게 느껴지지만은 않는 다는 것이다. 그건 아무래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도 인공지능의 발전에 관한 수많은 사례들을 보고,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데이터를 합리적으로 분석해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비즈니스와 연결되는 시대이니 말이다.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애플의 음성인식 서비스 '시리'처럼, 빅데이터로 수집된 정보를 기반으로 음성화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사용자에게 제시하는 것이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의 일종이라는 걸 기억한다면 인간만큼 똑똑해진 컴퓨터를 만나는 것이 근 미래가 아니란 보장도 없고 말이다.

특히나 이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저자의 이력이다. 스티븐 베이커는 지난 10년 동안 비즈니스위크지의 수석 테크놀로지 필자로 활약했다. 데이터 경제, 무선 테크놀로지의 성장, 클라우드 컴퓨팅 등을 취재하여 보도했고, 첫번째 출간한 책으로 '빅데이터로 세상을 지배하는 사람들'이 있다. 소설을 '소설'로 쓴 것이 아니라 미래학자 입장에서 그가 예견하는 미래를 우리에게 알리기 위해서 쓴 것일수도. 그렇다면 이 작품은 픽션이 아니라 예언이 되는 셈이다. 몇몇 미래학자들은 . 2029년이면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지능이 인간 수준으로 진화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마치 영화 '터미네이터'에서처럼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을 지닌 로봇과 마주하게 된다는 말이다. 작품의 표지에 있는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20년 후부터 벌어질 현실이다!>라는 문구를 보고 이건 좀 지나친 억측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왜 이런 문구를 넣었는지 어느 정도는 수긍이 되었다. 그만큼 실재같은 미래를 그려낸 소설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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