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 연애 블루스
한상운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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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 다니는 성욱은 7년을 사귄 검사 여자친구 인영에게 차였다. 원고 마감이 늦어져 야근을 하느라 무려 3주 만의 데이트였다. 대체 뭐가 문제인지 이유라도 알자는 그에게, 인영은 "재미가 없어."라고 말한다. 7년 하고도 5개월 이틀을 만났는데, 그 동안 한 일이라고는 밥 먹고 가끔 잠자고 그게 전부였다고. 이제는 달라지고 싶다고 말이다. 차가운 봄비를 맞으며 바깥으로 나온 그는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늘씬한 미녀를 만나 홀리듯 그녀를 따라 영화관에 들어간다. 그녀와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영화를 같이 보고, 함께 버스를 탔지만 말 한마디 건네보지 못하는 소심한 우리의 주인공. 그런데 버스정류장에 검정색 벤츠가 급하게 세워지더니, 30대 초반의 남자가 내려 다짜고짜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뺨을 갈기며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였냐며 소리친다. 정류장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남자의 난폭함에 누구 하나 나서질 못하고, 다른 때라면 도망쳤을 성욱은 그날 여자친구에게 차인 충격 때문인지 그 동안 꾹꾹 누르기만 해온 감정들과 분노가 한꺼번에 치밀어 그에게 덤벼들고 만다. 벤츠에 타고 있던 운전사가 내리면서 트럭에 치여 죽으면서 상황은 일단락이 되지만, 그는 이미 엉망이 되도록 맞은 상태이다. 여자 친구에게 차인 날, 생전 처음 보는 남자에게 얻어맞고 아무도 없는 뒷골목 구석에서 비를 쫄딱 맞고 있는 신세라니, 왜 이렇게 재수가 없는 걸까 생각했지만, 그렇게 인연이 되어 그는 아리따운 그녀, 수정과 하룻밤을 함께 보내게 된다. 하지만 우연히 휘말린 이 사건으로 인해 그의 앞날은 평탄치 못하게 흘러간다.

성욱은 침을 삼켰다. 괜찮을까? 그가 하려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일까? 입술을 깨물었다. 옳냐, 올지 않느냐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행동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전직 경찰로 해결사인 일도는 대한민국 제일의 사채업자인 방성환의 의뢰를 받는다. 그의 아들 방태수가 바로 버스 정류장에서 수정을 난폭하게 폭행했던 벤츠의 그 남자였던 것이다. 그는 아들과 잠깐 사귀었다가 돈을 가지고 도망쳤던 여자를 찾아달라고 일도에게 의뢰를 한다. 아들이 뒤통수를 맞은 것이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그는 수정을 찾아내기 위해 뒷조사를 시작하고, 성욱과 수정 모두 쫓기는 신세가 된다. 수정이 근무하던 다이어트 회사의 사장이 방태수였고, 불법적인 운영을 하는 것을 수정이 알게 되어 회사를 나와 협박 받는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성욱은 위험한 일이라는 걸 알지만, 수정을 도와 증거물과 돈을 거래하는 것을 돕기로 하지만, 거래 장소에서 수정은 방태수를 차로 치여 죽이고 혼자 사라져버린다. 방태수의 비서인 석구는 그녀가 사실은 꽃뱀에 사기 전과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성욱은 그녀의 정체에 대해 알 수 없지만 어쩐지 그녀를 믿어주고 싶다. 그렇게 이리저리 얽히고 설켜 인물들이 엮이고, 사건은 점점 막바지로 치달아간다.

지금껏 목적 없이 그럭저럭 살았던 성욱의 인생에 '단 하나의 동기' 같은 게 생겨버린 이후, 그는 갑자기 평범하고 소심한 남자에서 용기 있고 정의로운 인물이 되어 간다. 수정과 함께라면 뭐든 해낼 수 있을 거란 믿음이 그에게 그런 무모한 용기를 심어 주었던 것이다. 매번 시험에 낙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자심 감이 넘치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렇게 몇 년을 허탕 친 후에 간신히 출판사에 취직한 이후로는 대충대충 시간을 때우면서 늘 성공한 친구들의 험담으로 시간을 보냈던 그였다. 그런데 이 사건을 계기로 자신도 달라져야 할 때라는 걸 스스로 깨닫게 된 것이다.

'여기 이 비열한 거리를 지나가야만 하는 한 남자가 있다. 그 자신은 비열하지도 않으며 세속에 물들지 않았으며 두려워하지도 않으면서.'

작가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이 구절을 읽으며 어둡고 을씨년스러운 거리를 꿋꿋하게 걷는 한 남자의 뒷모습을 떠올렸다고 한다. 어쩌면 비열한 거리를 걷는 그 남자는 그냥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하고 소심한 남자일지도 모른다고, 단지 지켜야 할 무언가가 있기에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게 아닐까 하고. 그것이 이 작품의 시발점이다. '비주류 연애 블루스'라는 말랑말랑한 제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말이다. 그렇다. 사실 제목과 표지의 분위기만 보고는 가벼운 멜로 인줄 알았는데, 웬걸 진행되는 스토리는 다소 어둡고, 긴박감 있고, 흡사 스릴러 영화라도 한 편 본 것 같은 느낌마저 준다. 영화 '비열한 거리' 처럼 변해가면서 성숙해져 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던 거라면, 왜 이런 의문스러운 제목을 달아놓았는지 의아할 정도로 말이다. 무엇이 평범한 남자를 비열한 거리에서 버틸 수 있게 만드는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라면, 그에 맞는 제목을 달아두었다면 훨씬 더 많은 낫지 않았을까. 이야기는 재미있었는데, 제목 때문에 어쩐지 스파게티를 뚝배기 그릇에 담은 듯한 어색함이 남아 아쉬웠다.

하지만 스피디하게 진행되는 스토리는 흥미로웠고,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평범한 플롯이었지만 우리의 주인공이 스스로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은 공감할만했다. 게다가 지루하지 않아 킬링 타임 용으로는 나쁘지 않은 작품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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