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수인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김주원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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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릴적 꿈은 책방 주인이었다. 책들로 잔뜩 둘러쌓인 공간에서, 읽고 싶은 만큼의 책들을 실컷 보는 게 어린 나의 로망이었으니까. 그렇게 상상 속의 서점이 완전한 실체의 모습을 가지고 나타난 것이 바로 '바람의 그림자'였다. 그래서 나는 그 책을 닳도록 읽고, 또 읽었었다. '잊힌 책들의 묘지'는 그렇게 내 머릿속에서 진짜로 존재하는 장소였다.

 

내 개인적 경험에 비춰보자면, 그곳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매혹되어 경탄을 금치 못한다. 아름답고 신비로운 경내가 말을 멈추고 사색과 몽상에 잠기게 하는 것이다. 물론 페르민은 남달랐다. 처음 삼십 분 동안은 최면에 걸린 듯 있더니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미로 같은 그 거대한 퍼즐의 구석구석을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때론 멈춰 서서 마치 그 견고함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손가락 관절로 부벽과 기둥들을 톡톡 두르렸다. 그리고 모퉁이마다 멈춰 서서 손차양으로 먼 곳까지 바라보면서 규모를 가늠해보려고 했다. 책들이 나선형으로 자리잡고 있는 도서관을 거닐면서 끝없이 늘어선 무수한 책들의 등에 코를 바싹 들이댄 채 제목을 살폈고 도중에 발견하는 모든 것을 조목조목 구분 지었다.

 

 
'바람의 그림자'로 부터 무려 11년만이다. 당시에 내가 이 책을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지금도 어제처럼 생생한데 말이다. 도서관과 책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잊힌 책들의 묘지'는 정말로 실제한다면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꿈의 장소였다. 작가의 생생한 묘사가 얼마나 섬세하던지..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이 장소가 정말 실제하는 것만같은 착각에 빠졌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천사의 게임에 이어서 굉장히 오랜만에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신작이다. '바람의 그림자', 그리고 '천사의 게임'이 너무나 오래전부터 내 기억속에 있는 작품이라.... 어쩌면 잊고 있었던 시리즈인셈이다. 처음 신작 소식을 듣고는, 내가 잘못 봤나 싶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간의 두 작품에서 훌리안 카락스와 다비드 마르틴... 그리고 다니엘 샘페레의 이야기에 비해서 사실 페르민은 주변 인물에 불과했었다. 이번 '천국의 수인'은 바로 페르민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와 동시에 전작이었던 두 작품과 이번 작품을 하나의 연결고리로 묶어버리는 작품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 작품만으로는 어딘가 조금 아쉽긴 하다. 전작들에 비해 분량이 짧아서 일수도 있겠지만, 전작을 읽어보지 않았던 사람이 사폰의 작품을 처음 만나게 되는 거라면, 별로 권유하고 싶지 않을 만큼.

 

하지만... 반드시 '바람의 그림자'와 '천사의 게임'을 읽은 사람들에게는 꼭 봐야한다고 추천하고 싶은 책이며, 그들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아름다운 선물이 될거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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