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CSI - 치밀한 범죄자를 추적하는 한국형 과학수사의 모든 것
표창원.유제설 지음 / 북라이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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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추리물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폴리스 라인으로 보호되는 살인 사건 현장에서 일하는 과학수사 요원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오로지 스릴러물만 주구장창 읽어대는 긴 역사를 자랑하는 독자 중의 하나로서, 그들이 수사하는 과정에 무한한 흥미를 가지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과학수사 요원, 검시관, 법의관 등 모두 실제 현장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비춰지는 것과 다르다.고 말하지만 말이다. 물론 피비린내나고 험한 현장을 직접 겪어본다면 또 달라지겠지만, 범죄 현장을 조사하고 연구해서 범죄를 재구성하는 작업은 더할나위없이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 부부가 각방을 쓴 지는 오래되었다고 했다. 남편은 아내의 방문이 잠겨 있어 베란다 쪽 창문으로 들어가 봤더니 옷장 손잡이에 넥타이로 목을 매어 자살한 상태였다고 진술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넥타이는 이미 남편이 가위로 잘라 낸 상태였고 현장은 다소 변형되어 있었다. 신고자인 남편의 진술을 그대로 믿어야 할까? 현장을 어지럽힌 것이 매우 의심스러웠지만 아내의 시신 옆에서 슬퍼하는 남편을 집요하게 추궁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홍 형사는 남편의 팔뚝을 주시했다. 긁힌 상처로 보이는 흔적이 뚜렷했다. 그는 반사적으로 시신의 손을 증거물 봉투로 감싸고 테이프를 감아 봉인했다. 그리고 남편이 입었던 옷에서 섬유 샘플을 채취했다. 홍 형사는 이 사건이 정말 자살이기를 바랐다. 여자의 손톱에서 아무런 섬유도 나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너무 슬픈 결말을 맞이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특히 실제 과학수사의 실패 사례도 있고, 과학 수사에 대해 항목 별로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어, 초보자가 읽기에도 지루함없이 술술 읽히는 게 장점이다. 현장 감식부터, 지문 감식, DNA 수사기법, 혈흔 분석, 미세 증거의 종류, 그리고 검시관의 정확한 역할까지... 이 책 한권만 마스터해도 웬만한 수사물 한 편 본것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미드《CSI》가 한때 엄청난 인기를 몰고 왔고, 그 이후 국내에서도 전문적인 드라마가 방영이 되고 있다. 영화에서는 '스릴러'라는 장르가 시기에 상관없이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뉴스, 기사만 보아도 매일 같이 장식하는 것이 범죄, 사고에 대한 것이니 뭐.. 우리가 익숙해지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현실적인 대목이기도 하고 말이다.

 

야구 경기에서 기습 번트를 대고 1루로 달린 주자와 빠르고 침착하게 대처한 수비진의 대결. 똑같은 장면인데도 공격팀을 응원하는 관중은 '명백한 세이프'로, 수비팀을 응원하는 관중은 '아웃'으로 본다. 시간이 지나 그 장면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그 차이는 더 현격히 벌어져 있고, 심판의 위치나 다른 주자가 있었는지 등 세부 상황에 대한 이견은 더 심각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급한 상황에서 자동차 열쇠를 찾는데 '분명히 두었던 자리'에 없다. 당황해하는데 아내가 엉뚱한 장소에서 열쇠를 찾아 '이거 아냐?' 한다. '어, 그게 왜 거기 있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범죄 사건에서도 똑같은 일이 발생한다.


세상에 그냥 일어나는 일은 없다. 무슨 일이든 다 인과관계가 있다는 말이다. 하물며 목적이 있는 범죄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범죄 행위 전후 현장의 모든 변화는 전체 스토리와 관련된 것이라고 한다. 혈흔은 현장을 재구성하는 스토리텔러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 뭐, 현장의 모든 것들이 다 범죄를 재구성할 수 있는 요소가 된다는 말이 되겠다. 게다가 용의자의 말은 당연히 전부 믿을 수가 없고, 사건의 목격자나 생존한 피해자도 당시의 충격으로 인해 잘못 기억하고 있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인간의 기억은 여러 가지 요인으로 왜곡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결국 과거에 있었던 일, 즉 범죄가 벌어졌던 당시의 사실을 완전히 재구성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일선에 있는 과학수사 요원들은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갈 수 있도록' 현장을 분석하고 조사해서 범죄 현장을 재연하려고 노력중일 것이다. 과학과 논리라는 매력적인 수단을 통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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