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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연기하라
로버트 고다드 지음, 김송현정 옮김 / 검은숲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일요일에 이곳에 도착한 이후로 계속 그런 식이었다. 맨 처음 제니, 그 다음에 데릭, 이제는 이언 메이플. 물론, 거기다가 로저 콜본까지. 모두가 제 나름의 방식으로 내 일정을 좌지우지했다. 그리고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까지 정해주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최악의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12월 어느 날, 한때 잘나갔던 배우 토비 플러드는 일주일 남은 순회공연을 마무리 짓기 위해 영국 남부의 휴양도시 브라이턴에 도착한다. 하지만 별거 중인 아내에게 뜻밖의 연락을 받게 된다. 며칠전부터 수상한 남자가 자신의 주변을 어슬렁대는데, 아무래도 당신의 팬인것 같으니 처리해달라는 것이다. 다른 남자와 살면서 결혼 준비 중인 아내에 대한 미련이 아직 남아있던 토비는 그녀의 부탁으로 스토커처럼 보이는 그 남자를 만나기로 한다. 그리고 그 남자, 데릭을 만난 뒤로 토비에게 엄청난 일주일이 시작 된다.
수상한 남자, 데릭 오스윈은 자신이 토비의 팬이며 그를 만나기 위해서 아내인 제니 주변을 맴돌았던 것이라고 말한다. 데릭의 요구로 그가 쓴 '플라스틱 인간들'이라는 콜보나이트 회사에 관한 책의 출판을 검토해주기로 하고, 앞으로 제니 앞에 나타나지 않기로 약속을 받지만 그는 지키지 않는다. 토비는 데릭을 만나기 위해 그날 저녁 공연에 빠지고, 대신 데니스에게 자신의 대역을 부탁한다. 하지만 데니스는 자신을 토니로 착각한 누군가에게 쫓기다 결국 심장마비로 죽게 된다.
여기까지가 도착해서 화요일까지 벌어진 일들로, 이 작품의 전개에 해당된다. 한물간 배우의 평온한 나날에 갑자기 이렇게 많은 일들이 생겼는데, 이게 겨우 시작이라는 얘기이다. 이 작품은 토비가 브라이턴에 도착한 일요일부터, 요일별로 챕터가 나누어져 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뒤 맞이하게 되는 토요일, 토비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상황은 인간보다 더 교활한 공모자다.
상황은 인간이 상상도 못할 기묘한 방식으로 운명의 날실과 씨실을 얽어놓는다.
마치 그를 둘러싼 모든 상황들이 토비를 나락으로 몰아넣기 위해 작당이라도 한 듯, 얽히고 설켜서 매일같이 새로운 상황이 벌어지고, 누군가는 위험에 처하고, 또 다른 누군가의 숨겨진 비밀들이 속속 드러난다. 스토리는 종횡무진 앞으로 달려가고, 갑자기 사건 속에 휘말리게 된 주인공 토비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마지막에 다다른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후반의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이야기가 정리되는 토요일 즈음이 되면 독자들은 로버트고다드가 엄청난 이야기꾼이라는 걸 공감하게 될 것이다.
잠깐 힌트를 주기 위해, 막판에 로저가 토비에게 한 대사를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다.
내 생각을 알고 싶나, 토비? 이번 주 내내 오스윈이 당신을 꼭두각시 취급한 거라고. 이쪽 줄을 잡아당겼다가, 저쪽 줄을 잡아당겼다가. 그렇게 당신을 조종해서 가능한 나한테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키도록 한 거야.
물론, 여기서 로저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 건지는 직접 이 작품을 읽어 봐야한다. 과연 진짜 모습을 숨긴 채 끝까지 연기를 하는 것은 등장 인물 중에 누구인지 맞춰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고로 이 작품의 리뷰는 가능하면 짤아야 한다. 모든 것은 작품 속에 있다. 과연 누가 누구를 속이는 것이며, 누가 진실을 말하는 것일까? 끝까지 자신의 역할을 위해 연기를 한 것은 누구일까? 가면을 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기는 거의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작가가 치밀하게 설계한 사건의 전개는 누구라도 알아챌 수 없을 만큼 교묘하고 탄탄하다.
덧.
1. 실존했던 작가 조 오턴의 진짜 작품도 궁금하다. <목구멍에 세 든 남자> 라니 제목부터 확 시선을 끌지 않나. 참고로 조 오턴은 날카로운 풍자를 통해 뒤틀린 욕망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난폭한 웃음극을 주로 집필한 작가라고 한다.
2. 이 모든 사건의 시발점, 데릭 오스윈이 집필한 <플라스틱 인간>의 원본도 읽어보고 싶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