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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컨시어지
쓰무라 기쿠코 지음, 이정민 옮김 / 리드비 / 2026년 2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거짓말을 간파하지는 못해도 거짓말을 들킨 적도 없다... 거짓말을 들키지 않는 첫 번째 비결은, 자신이 한 거짓말을 기억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충분히 있을 법한 내용의 거짓말을 할 것. 그리고 거짓말을 했다는 증거를 그 거짓말이 끝날 때까지는 모든 공적인 매체에 남기지 않을 것. 가능하면 거짓말의 목적이 완료된 후에도 남들 눈에 띄는 곳에서는 입 밖에 내지 않을 것. 대체로 그렇게만 하면 내가 할 만한 거짓말은 성립된다. p.87
누구나 나름의 고민 거리들을 안고 살아간다. 회사 업무가 힘들 때도 있고 먹고사는 문제로 머리가 아플 때도 있다. 하지만 가끔은 별 것 아닌 사소한 일 때문에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기도 한다. 직장 동료의 행동을 참을 수 없다거나 친구의 시시콜콜한 하소연을 들어 주는 게 한도에 달했다거나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와사키 역시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인 마나미와 딱 그런 문제에 처해 있다. 자신이 힘든 시절에 마나미로부터 큰 위로를 받았던 적이 있어 항상 최대한 이야기를 들어 주려고 하지만, 쉽게 긍정할 수 없는 이야기만 털어놓는데 더 이상은 무리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속 시원히 말할 수도 없는 것이, 그러면 인간관계가 깨지고 만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던 참에 이와사키는 회사에서 독특한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여직원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공장 담벼락에 서서 쓰레기봉투 입구를 단단히 쥔 채 마치 사슬낫인 양 휘두르고 있었다. 쓰레기 봉투가 담벼락에 부딪칠 때마다 뭔가가 깨지는 쨍그랑쨍그랑 소리가 났다. 알고 보니 그녀는 어머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데, 그릇을 잔뜩 수집하는 어머니 집에 가서 몰래 몇 개씩 가져와서 깨고 있었던 거다. 더 이상 어머니와 말싸움할 기운도 없고, 대신 접시를 훔쳐 와 깨면서 스트레스를 발산하고 있었다. 어머니한테 한바탕 퍼붓고 싶어질 때마다 그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 이런 저런 고약한 짓을 한다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참으로 괴상하고 지독한 일처럼 보였지만 함께 해보니 의외로 속이 후련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이와사키는 그녀와 함께 그릇을 깨부수기 시작한다. 이 책에는 다양한 등장 인물들이 나오는데, 각자의 상황과 고민이 다른 만큼 자신만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있었다. 무사히 하루를 버텨내기 위한 현실적인 처방인 셈이다.

"의외로군. 하야시모토, 자네가 그리 대번에 좋은 핑계를 생각해 낼 줄은 몰랐네."
"핑계가 아니라 이건 거짓말이에요."
"허허, 누가 들으면 오해할까 봐 말하고 싶지는 않네만 자네는 거짓말을 하는 데 재주가 있군?"
"재주가 있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과 사실을 말해야 하는 상황은 항상 잘 구분하고 있어요." p.128
누군가를 만나기로 한 날 갑자기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나거나, 그 약속을 나가기가 도저히 내키지가 않고 몸도 잘 따라주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보통 상대가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거짓말을 하게 된다. 몸 상태가 안 좋다거나, 취소할 수 없는 급한 일이 생겼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관계를 이어 나가는 것이 나을까, 거짓말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고 사실대로 말해 상대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나을까. 물론 정답은 없다. 그저 각자의 방식으로 어떻게든 하루하루를 버텨낼 뿐이다. 그럭저럭 살아 내야 하니까. 세상을 혼자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 저자의 실제 경험이 살아 있는 '직장 소설' 답게, 잔잔하지만 공감되는 대목들이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었다.
이 작품에는 어쩌다 보니 그런 상황에서 곤란한 사람들을 도와주다 거짓말 능력자가 되어버린 회사원이 등장한다. 탈퇴하고 싶은 동아리 여행에서 빠질 방법이 없을까? 축구부 모임에 가고 싶은데 회사 골프 모임에 가지 않을 핑계 없을까? 모임에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등등 다양한 고민들이 작은 거짓말을 통해 해결이 되는 과정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안겨 준다. 거창하고 치밀한 것이 아니라 딱 하루 분량의 '거짓말'과 그것을 실행으로 옮길 자그마한 '용기'만 있으면 된다. 이 책에 수록된 11편의 이야기들은 우리가 회사에서, 일상에서 자주 마주하게 되는 귀찮은 인간관계와 사소한 스트레스들이 주요 고민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고, 기분 좋은 따스함이 여운처럼 남았다. 귀여운 표지 일러스트 속에서 각각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었다. 딱히 누군가에게 해가 되지도 않고 나쁠 것도 없는 별것 아닌 사소한 거짓말들이 그만큼의 무게로 지친 하루를 견디게 해주고, 내일로 나아가게 해준다는 것이 어딘가 위로가 되는 듯한 기분도 들게 하는 사랑스러운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