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없는 나의 세계
마이클 톰프슨 지음, 심연희 옮김 / 문학수첩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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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토미는 자신이 어딘가 다르다는 걸, 무언가 독특하게......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평범한 아이들은 살아가면서 매년 낯선 존재가 되어 깨어나는 법이 없다. 마치 매일 아침 학교에 가면 어제 교실 칠판에 써놨던 내용이 싹 지워진 것처럼, 자신의 존재가 이 세상에서 깨끗이 지워지는 법이 없단 말이다... 그가 '재시작'을 거치면, 마치 자신이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다른 이들의 삶에 그가 남긴 구멍이 벽지로 덮이거나 다른 사람의 존재로 깔끔하게 채워져 있었다.           p.109~110


매년, 독같은 날에, 온 세상 사람이 다 나를 잊어 버린다면 어떨까. 마치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존재하며 누군가의 가족이고, 친구였는데, 다음 날이 되면 그들에게 생판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는 그대로고 다른 사람도 다 그대로인데, 다만 다들 내가 누군지 모르게 되는 상황. 그래서 매년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재시작'의 원인이 되는 게 우주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인지는 알 수 없다. 이 작품은 그렇게 해마다 자신을 지워버리는 세계 속에서, 해마다 되풀이되는 운명에 맞서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내일은 토미의 첫 번째 생일이다. 레오와 엘리스 부부는 아들이 한 살이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웃집 모리스 부인을 초대한다. 하지만 다음 날 오후의 차 모임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1월 5일, 토미의 생일이 되면 세상 모두가 그를 잊어 버릴 테니까. 평소와 같은 아침을 맞이한 레오와 엘리스는 거실 한복판에 누워있는 낯선 아기를 발견하고 경찰을 부른다. 대체 누가 아기 침대와 함께 아이를 남의 집에 무단 침입해서 두고 온단 말인가. 출동한 경찰도 이상하게 여겼지만, 더 이상한 건 그 집 어디에서도 아이 용품이 보이지 않았고, 아이가 살았다는 증거가 없었다는 거다. 결국 토미는 위탁 시설인 밀크우드 하우스로 가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토미가 두 살이 되던 날 밤, 시곗바늘이 자정을 넘어가자마자 더할 나위 없이 비정상적인 일이 벌어진다. 토미에 대한 모든 지식과 기억, 인식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지고, 그 애가 이 세상에 있었다는 증거들마저 전부 지워져 버린 것이다. 토미는 그렇게 또 자신을 알았던 모든 이들에게 낯선 사람이 되고 만다. 




세상에는 서로 친구가 될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이 있다. 이건 토미가 스스로 만들어 믿는 이론이었다. 조시 손더스는 그날 밤 더홀의 주방에서 토미를 처음 만났다. 스물네 시간 전, 토미가 자신을 배신했다며 화를 냈던 바로 그 자리에서. 토미는 조시와의 사이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 정말 걱정이 많았다. 둘의 우정이 땅속 깊은 곳에 묻힌 금덩어리 같기를, 지구를 돌더라도 변하지 않을 단단한 덩어리 같기를, 그래서 언젠가 발견될 날을 기다리는 것이기를 그는 바라고, 아니 그렇다고 믿고 있었다.              p.267


토미는 매년 1월 5일마다 다시 친구를 사귀어야 했다. 토미가 친구를 쉽게 사귀는 성격이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처음에는 다른 아이들에게 자신을 알지 않느냐고 물어보고, 애써 설득하기도 했지만 열 살쯤에는 그냥 자기소개만 한 뒤 조용히 자리를 찾아갔다. 아주 어릴 때부터 해마다 모든 관계를 다시 쌓아 올리는 법을 배워야 했던 토미의 '기억되지 아 ㄶ는 삶'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왜 사람들은 날 기억하지 못할까에 대한 의문을 풀어줄 수 있는 방법이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주어진 운명대로, 어떻게든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토미는 자신이 어딘가 다르다는 걸, 무언가 독특하게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걸 피하거나 바꿀 방법을 알지 못해 좌절감만 커져 갔다. 그러다 열일곱 번째 생일이 다가올 즈음, '재시작'을 속일 허점에 대해 깨닫게 되고, 자신을 지워내는 가혹한 규칙에 맞서보기로 결심한다. 


어제가 없는 세계에서 내일을 살아내야 하는 삶이란 어떤 걸까. 해마다 모든 관계가 원점으로 되돌아간다면, 누군가와 친밀함을 쌓거나 뭔가 업적을 이루는 것이 다 무의미한 일이 아닐까. 삶이란 무엇으로 기억되어야 하는 걸까. 매일 쌓아온 시간과 관계를 매년 잃어 버리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로 지난번보다 더 나은 선택을 고민하면서 토미는 조금씩 성장하고, 단단해져 간다. 하지만 지켜내고 싶은 존재가 생겼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사람에게는 더 이상 잊히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그녀의 기억 속에 남기 위해 토미는 해마다 되풀이되는 자신의 운명을 시험해 보기로 한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태어날 때마다 정해진 이상한 운명에 맞서 버텨내야 하는 한 인물의 이야기는 페이지가 넘어갈 수록 더 응원하고 싶어지는 몰입감을 안겨 주었다. 토미가 소중한 것을 지켜내고, 운명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해주고 싶은 그런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나를 기억하는 수많은 소중한 존재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만약 그들로부터 잊혀진다면 내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기억이란 무엇이며 관계란 어떤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판타지적인 설정으로 시작해 뭉클한 로맨스 드라마로 이어지는 이 특별한 이야기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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