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방화 TURN 8
조영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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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아주 조금씩 좋아진다. 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죄책감은 그대로지만 버티다 보면 아주 조금씩 나아진다. 그냥 그렇게. 그게 삶이란 거다."

"차라리 그냥 죽으면 안 돼요?"

"살인자에겐 자기 멋대로 죽을 자유 따위 없다."

형사의 말은 무거웠다. 그의 말에는 반박할 수 없는 강한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p.49


오피스텔 7층에서 한 여성이 추락했다. 여성은 층간 소음으로 괴로워하다가 자기 집에서 뛰어내렸다고 한다. 죽은 여성의 회사 동료이자 같은 오피스텔에서 살았던 20대 여성이 말하길, 매일 밤 자정이 되면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넌 못생겼어. 넌 못생겼어. 넌 못생겼어.... 기계음으로 된 목소리가 몇 분 간격으로 같은 말을 반복해 속삭였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자신의 귀에만 들리는 환청이 아닐까 고민하다가, 결국 소리에 시달리다가 방을 빼기로 했다고. 하지만 워낙 층간 소음으로 유명한 오피스텔이라 집은 좀처럼 나가지 않았고, 그렇게 점점 지쳐가다가 자신의 집에서 뛰어내렸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 사건이 타살이라는 확신을 갖지 못했다. 누군가 고의로 그녀에게 소음을 흘려 보냈다면 스토킹 범죄 처벌법 위반은 적용될 수 있겠으나 살인미수라고 볼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소음충이라는 괴담의 희생자인지, 혹은 귀신에라도 홀린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소음으로 복수를 하려고 했었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사건을 담당하게 된 강력1팀 팀장 함민은 그녀의 과거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평택으로 이사를 오고 3개월이나 지났지만 전입 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주소는 남양주로 되어 있는 데다 세대주는 남성으로 되어 있었다. 게다가 그녀의 남편은 한 달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대체 누가 그녀에게 한 달간 악담을 퍼부은 것일까. 남편이 귀신이라도 된 걸까. 함민은 소음충의 정체가 귀신이어도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설득시킬 자신은 없었기에 굳이 말로 하진 않았다. 과연 기이한 소음의 정체는 뭐였을까. 




작년 8월 마지막 날 일어났던 소음충 사건 이후 1년이 지나 8월 말이 되도록 관내에서는 살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 강도나 절도 등 강력 사건은 끊이지 않았고 굵직한 소탕 작전도 있었지만 그것들은 살인 사건과는 달랐다. 살인 사건은 마음 한구석에 켕기는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그때마다 함민은 저도 모르게 라이터를 켜고 싶다는 강한 충동에 시달렸다. 충동은 사건을 무사히 해결하고 나서야 사라졌다.              p.96


‘셜록 함스’ 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강력계 형사 함민은 어린 시절 겪었던 화재 사건 이후로 끊임없이 방화 충동에 시달린다. 그가 형사가 된 것도 화마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사건을 해결하는 순간의 카타르시스가 불을 지르고 싶다는 욕망을 잦아들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건을 해결해야 충동이 사라진다면, 사건을 해결하지 못할 땐 어떻게 되는 걸까. 그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해낼 수 있을까. 


지금 가장 새로운 이야기로의 가뿐한 귀환, 턴(TURN) 시리즈 여덟 번째 작품이다. 조영주 작가는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붉은 소파> 이후로 <반전이 없다>, <당신의 떡볶이로부터>, <십자가의 괴이> 등 다양한 작품으로 만나왔다. 참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는 성실한 작가인데, 최근에는 주로 앤솔러지에 참여했던 작품으로 만나오다 오랜만에 장편이라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다. 이 작품은 방화 충동에 시달리는 강력계 형사를 중심으로 여섯 개의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평택이라는 실제 도시를 배경으로 촉법소년, 층간 소음, 전세 사기, 신종 마약 등 실제 사회적으로 이슈였던 소재들로 미스터리를 풀어내고 있어 굉장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섯 개의 사건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각 사건의 단서를 찾아 논리와 직관으로 해결해나가는 과정도 흥미진진하고, 그 중심에서 치명적인 단점을 가진 한 남자의 오랜 트라우마에 얽힌 미스터리도 이야기에 재미를 더해준다. 자, 한계 없는 턴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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