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 이야기 - 모든 미스터리는 그녀로부터 시작되었다
루시 워즐리 지음, 홍한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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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총잡이'나 '큰언니' 등의 환상은 엄마와 언니가 낯설고 무서운 존재로 바뀌는 애거사의 상상이었다. 이런 어린 시절의 환상은 애거사의 탐정 소설의 특히 현대적인 어떤 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예를 들어 셜록 홈스 소설에서는 범인이 희생자가 직접 아는 사람들의 범위 밖에 있을 때가 많다. 그렇지만 애거사 크리스티 소설에서는 살인범이 믿었던 가족 가운데 한 명으로 밝혀질 때가 많다.               p.46


소설을 20억 부나 판 사람이면서 공문서에 직업을 적어야 할 일이 있으면 늘 '주부'라고 적었던 사람,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늘 외부인이자 구경꾼의 관점을 유지하며 평생 평범한 척하며 살았던 사람, 20세기에 여성에게 요구되던 규범을 깨드리고 세계에 대한 독자의 인식을 조용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었던 사람, 바로 애거사 크리스티이다. 이 책은 셰익스피어와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팔린 추리소설 작가이자 20세기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이지만 끊임없이 폄하되고 지속적으로 오해되어온 애거사 크리스티에 대해 출생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한 인간이자 작가로서의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추적한 정밀한 기록이다. 생존 인물들의 인터뷰와 신문 기사, 크리스티 기록보관소, 내밀하게 주고받은 편지까지 끌어모아 애거사의 세계를 완벽하게 구성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들은 어디에나 있는 시골 마을이나 전원지대다. 크리스티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세계관에서는 과도한 폭력, 잔인함, 노골적인 성적 묘사 등이 일절 등장하지 않으며, 생활감과 유머, 그리고 로맨스가 있다. 이웃과의 트러블은 늘상 있지만 마을 사람들끼리 떠드는 가십 거리에 불과하다. 사회의 어둠을 파헤치는 하드 보일드나 누아르와 정반대되는 세계관이라서, 독자에 따라서는 너무 미지근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평화로운 시골 마을의 평온한 일상이 살인이라는 비일상적 사건의 위협을 받을 때 독자들은 짜릿한 재미를 느끼게 된다. 살인과 의문, 비밀과 거짓말 사이에서 비로소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인간 본성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그때가 크리스티 소설의 묘미이기도 하다. 이 책은 애거사가 어떻게 삶을 흡수해 작품의 재료로 활용했는지, 어떻게 캐릭터를 빚고, 어떤 배경에서 트릭을 떠올리며, 어떤 순간에 살해 수법을 결정했는지 그 모든 과정을 차근차근 삶을 따라가며 보여주고 있어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애거사가 지극히 평범한 주변 환경에서 영감을 얻는 방식이 작품의 특성과 성격을 만들었던 것이다. 




애거사는 일단 노트에 메모를 했다. '느닷없이 플롯이 떠오른다. 길을 걷다가, 모자 가게를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 멋진 아이디어를 노트에 끼적인다. 여기까지는 아주 좋다. 그런데 결국 그 노트를 잃어버리고 만다.' 애거사는 또 '욕조에 누워서 사과를 먹고 차를 마시고 주위에 종이와 연필을 늘어놓고' 플롯을 구상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p.406


추리소설을 모르는 사람도 애거사 크리스티라는 이름은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애거사 크리스티가 추리소설에 끼친 영향력은 엄청난데, 보편적 스토리 구성, 클리셰로 정착된 전개 방식 등 추리소설의 틀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셜록 홈즈를 탄생시킨 코난 도일이 추리소설의 캐릭터를 완성했다면, 크리스티는 추리소설의 구성을 완성했다.. 현대의 미스터리, 스릴러 작가들 중에 이들의 영향 아래 놓여 있지 않은 작가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크리스티는 참으로 많고 다양한 작품을 썼고, 여러 편의 걸작이 존재한다. 영어권에서만 10억 부가 넘게 팔렸고, 103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도 상당히 많다. 크리스티는 50여 년간 70여 편의 장편소설과 수많은 중단편, 희곡, 여행기 등을 집필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니 약 1세기 전의 소설이 지금까지 꾸준히 읽히고 새로운 번역서와 영화,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비밀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꼭 읽어 보길 권해주고 싶다. 


모든 사람이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다르다. 그러니 진짜 모습을 알고 싶다면 그의 삶을 들여다봐야 한다.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거나 전혀 알지 못했던, 비밀스럽고 다층적인 애거사 크리스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저자는 애거사의 소설 속 집이 안전과 반대되는 것을 표상할 때가 많은데 그 이유와 시대적 배경을 짚어보고, 애거사가 소설 속에서 어둡고 불편한 감정을 확고하게 다루게 된 시기와 계기에 대해서도 탐구한다. '오리엔트 특급 열차'를 타고 떠난 이스탄불과 바그다드까지 소설의 배경을 창조해낸 여행의 순간들과 남편을 살인 용의자로 만든 행방불명 소동의 비밀에 대해서, 그리고 조제실에서 일하며 독약을 연구했던 전시 간호사였던 시절도 들여다본다. 그렇게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몰랐던 여왕의 삶과 세계가 드마라처럼 펼쳐지는 책이었다. 게다가 책의 외형도 너무 아름다운데, 일반적인 책 판형보다 훨씬 큰 양장본인데다 표지 이미지가 정말 근사해서 굉장히 고급스럽다. 초판 한정으로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을 연도별로 정리한 콜렉터스 리스트도 받을 수 있으니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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