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동주 창비교육 성장소설 15
정도상 지음 / 창비교육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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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몽규의 말에 동주는 잠시 고민했다. 같은 학교에 같은 반에다 한방에서 먹고 자는 사촌이자 동무였지만, 몽규는 자꾸만 위험한 길을 향해 가는 것 같았다. 그 위험한 길에 대해 몽규는 동주한테 절대 말하지 않았다. 동주 또한 어렴풋이 위험을 감지할 뿐이었다. 그 위험은 동주를 향한 위험이기도 했다. 주변 사람을 위험과 상처에 빠트리기 때문에 비밀은 위험했다. 비밀의 파편이 언제 심장을 향해 날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p.46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누구나 눈 감고도 외울 수 있는 시가 바로 '서시'일 것이다. 언젠가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를 본 적이 있는데, 일본 유학길에 오른 윤동주와 송몽규 사촌형제가 일제 강점기 느껴야 했던 고민과 울분을 문학과 독립운동, 그리고 일본 경찰에 체포돼 억울하게 죽는 모습을 통해 그린 작품이었다. 식민지 청년들의 고민과 울분과 윤동주의 시 10여 편을 함께 만날 수 있어 더욱 인상깊은 영화였다. 대부분 학창시절 교과서를 통해서 윤동주의 시를 만나왔지만, 정작 그의 생애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 중에서도 청소년 시기라 할 수 있는 중등학교 시절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으니 말이다. 


이 책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 서거 80주기를 맞아 그의 성장기를 그린 소설이다. 만주에서 나고 자라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기까지, 좀처럼 소개되지 않았던 윤동주의 청소년 시절을 소설로 만날수 있어 아주 특별한 시간이었다. 작가는 윤동주의 중등학교 시절을 공부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을 확인해 이 소설을 썼다. 현대의 여고생 ‘새봄’이 꿈에서 윤동주 시인을 만나 시간 여행을 떠난다는 설정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소년 윤동주를 만날 수 있어 더욱 의미가 있다. 독서 모임에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하루에도 몇 편씩 팔이 뻐근해지도록 시를 옮겨 적으며 시에 대해 사색하고, 경쟁이라도 하듯 책을 읽고,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인의 길을 선택하기까지의 과정과 송몽규, 문익환과의 우정과 시대적 고뇌 등 문학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던 시절을 고스란히 들여다볼 수 있는 소설이었다. 




"...... 시인이 되는 건 중요하지 않아. 시는 그 자체로 내 생명과 같으니...... 칠흑의 밤 숲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잇을 때, 별빛 하나가 길을 열어 주듯이, 나한테 시는 그래." 동주가 말했다. 아름답게 살기가 참으로 어려운 세상이고 시대지만, 그래도 아름다워지려고 끊임없이 고뇌하는 것은 시가 있기 때문이었다. 꽃이 필 때도 아름답지만, 꽃이 질 때도 아름답다. 지지 않는 꽃은 아름답지 않다. 새로운 생명의 씨앗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생명의 씨앗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꽃이 질 때, 아름다움은 절정에 이른다.


이 작품은 한국사의 상처를 보듬는 작품을 발표해 온 소설가 정도상이 집필했다. 청소년들이 교과서로 접한 시인에게 느낄 법한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여고생이 시인을 만나 시간 여행을 떠난다는 설정을 만들었다. 윤동주 시인 고유의 차분하고도 서글픈 정서를 산문으로 구현해 시로부터 받은 감상을 해치지 않은 채 그의 인생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애썼다고 한다. 이 작품은 문학과 신앙, 조국애, 그리고 시인의 길을 선택하기까지 품었던 고뇌 등 시인이 겪었던 일들과 그로 인한 내적 갈등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문재린, 김약연 등 1930년대 북간도 조선인 사회를 이끌던 인물들을 비롯해 윤동주와 함께 ‘명동촌 삼총사’로 불리며 일생을 함께했던 송몽규, 문익환 등 윤동주와 그를 둘러싼 주변 인물까지 촘촘히 보여주고 있다. 일제 강점기 자신의 꿈을 조국 독립의 연장선에 두었던 그 시대 젊은이들의 모습까지 엿볼 수 있어 더욱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윤동주 시인이 오늘날 우리 곁에 온다면, 어떤 모습일까?'에서 시작된 이 작품은 서시의 글귀처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면서 짧고 굵은 삶을 살다 간 민족 시인 윤동주의 삶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청소년인 새봄 학생과 대화하는 짧은 장면들도 웃음을 유발시키는데, 정말 과거 속 인물이 현대어로 대화한다면 이러지 않을까 싶어 공감하며 읽었다. 이 작품을 우리 자신에게 한번쯤 되물어 보자. 우리는 스스로의 젊은 날을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에게 부당했던 그 모든 것들을 용서하고 이해하고 사랑하고자 했던 그의 시처럼, 우리도 과연 그럴 수 있을지 말이다. 또한 청소년들이 이 책을 통해 교과서로만 접했던 시인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고, 스스로의 꿈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더욱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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