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만 년을 사랑하다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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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도갓타는 놀라운 마음에 무심코 감탄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거기에 실린 사진은 루비 펜던트였다.

정교한 백금 세공으로 장식된 커다란 루비 펜던트.

그 빛깔은 마치 핏물이 밴 것처럼 짙었다.

아름답다기보다 왠지 모를 두려움이 느껴지는 보석이었다.           p.18~19


사립 탐정 도갓타 란페이는 우메다마루 백화점 창업자의 손자로부터 특별한 보석을 찾아 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최근 들어 그의 할아버지인 소고가 밤마다 있지도 않은 보석을 찾아 헤매는 기이한 행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 년을 사랑하다'라는 이름이 붙은 정체불명의 보석을 찾기 위해 도갓타는 군도에 있는 노라시마섬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할아버지의 88세 생신 축하 파티가 열릴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개인이 소유한 프라이빗 아일랜드에 가족들과 손님들이 모여든다. 


45년 실종 사건으로 인해 인연을 맺게 된 전직 형사 사카마키와 손자가 데려온 사립 탐정까지 함께 모이고 보니... 뭔가 미스터리한 사건이 벌어질 것만 같은 무대였다. 실제로 소고는 전직 경위와 탐정이 초대손님으로 왔으니, 살인 사건이 벌어지지 말란 법도 없지 않냐고 농담을 하며 아주 기분이 좋았다. 물론 살인 사건이 일어날 기미는 털끝만큼도 없었고, 애초에 탐정이 받은 의뢰도 보석을 찾는 일이지 살인 사건 같은 끔찍한 일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마침 고립된 섬에는 태풍이 몰려오고 있었고, 다음 날 할아버지가 섬에서 돌연 사라진다. 베개 밑에서 발견된 것은 '유언장'이라고 적힌 봉투였고, 거기에는 "내 유언장은 어젯밤의 내가 가지고 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그렇게 폭풍우가 몰아치는 와중에 전직 경찰과 의뢰를 받은 탐정, 섬의 고용인들과 가족들이 함께 할아버지가 남긴 단서를 쫓아 수수께끼를 풀어 나간다. '만 년을 사랑하다'라는 보석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할아버지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건지... 과거 속 비밀을 추적하는 미스터리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억측일지 모르지만 분명 지금 우리가 느낀 감정은 같을 겁니다."

...... 만약 그 세편의 영화와 이번 우메다 어르신의 실종에 어떤 연결 고리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우메다 어르신이 우리에게 하려는 고백은 한 가지뿐이죠.

45년 전 실제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어르신은 우리에게 그 얘기를 전하고 싶은 겁니다.             p.178


'내 유언장은 어젯밤의 내가 가지고 있다'에 이어 발견된 편지지에는 '만 년을 사랑하다'는 내 과거에 있다, 는 문구였다. 그렇다면 아마도 '만 년을 사랑하다'라는 보석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고 다들 생각한다. 하지만 가족들은 이러한 소고의 행동이 평소 할아버지의 모습과 같지 않다고 의아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사카마키는 가족이 아닌 자신이 축하 파티에 초청을 받은 데는 과거의 사건과 뭔가 연관이 있찌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으로부터 45년 전, 한 사십대 주부가 근처 슈퍼마켓에 장을 보러 갔다가 실종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사카마키가 담당 형사였고,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소고가 용의자가 되었다. 사라진 여성과 그가 어느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었다는 제보가 들어온 것이다. 당시 소고는 젊은 백화점 사장이라는 주목받는 위치에 있어 화제가 되었는데, 결국 사건 당일에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었고, 별다른 동기도 보이지 않아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그 사건이 현재 소고가 사라진 것과 연관이 있는 걸까. 


요시다 슈이치는 일반적인 미스터리 서사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간다. '인간을 쓰고 싶다'고 말했던 것처럼 한 사람의 삶 전체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며 묵직한 이야기를 들려 준다. 일본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아이들의 문제를 현실감있게 그려낸다.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전개되는 서사의 매력과 반전에서 비롯되는 먹먹한 감정까지 요시다 슈이치다운 휴먼 미스터리가 만들어졌다. 살인죄에 반대되는 죄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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