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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생존 - 지구상 가장 혹독한 환경에서 피어난 생명의 경이로움
알렉스 라일리 지음, 엄성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12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만함(그리고 인간 중심적 사고) 때문에 우리는 어떤 장소를 감히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곳'이라 불렀지만, 결국 우리 눈앞에 지구상에서 가장 밀도 높은 생태계가 펼쳐지곤 했다. 우리는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온도에 한계를 정해왔지만, 결국 그 한계가 깨지는 걸 목격했다. 우리는 모든 동물은 산소로 호흡한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과학자들이 지중해 바닥에서 산소 없이도 잘 살아가는 동물을 발견했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생명체가 태양에 의존한다고 생각했지만, 사람이 황화수소를 필요로 하지 않듯 산소를 필요로 하지 않는 생태계가 발견됐다. p.20
끓는 물 속에서도 30분간 살아남고 섭씨 영하 200도의 차디찬 액체 헬륨 안에서도 7개월간 살아남으며 1,000기압의 압력과 강한 방사선은 물론 다양한 유독 가스에도 살아남는 동물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심지어 이 생명체는 우주여행을 하고도 살아남았다. 이 생명체는 완보동물로 '미시 세계의 스타'라 불린다.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아주 작고 귀여운 동물인데, 둥근 엉덩이, 납작한 얼굴, 너무 하찮아서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움직임 등 테디베어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다. 완보동물의 초자연적인 능력은 오래 알려져 왔다. 이 동물의 생존력은 정말이지 말 그대로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 2007년 9월에 두툼한 금속 캡슐 안에 담겨 우주로 보내졌고, 우주의 진공 상태, 그러니까 극도의 저기압과 혹한 그리고 여과되지 않은 자외선에 노출되었음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이렇듯 인간이라면 단 몇 초에서 몇 분 만에 죽고 말 상상 불가능한 극한 상황에서도 살아남는 생명체들이 있다. 절대 영도(섭씨 영하 273.15도)에 가까운 혹한이나 펄펄 끓는 열기, 모든 것을 파괴하는 방사선, 진공 상태의 우주에서도 살아남는 슈퍼 히어로 같은 능력을 가진 생명체는 대체 어떻게 극한의 환경에서 버티는 것일까. 이 책은 물, 산소, 음식, 추위, 압력, 열, 어둠, 방사선 등 생명에 꼭 필요한 요소가 전혀 없거나 지나치게 많은 극한 환경을 극복해온 세계 극한 생명체의 실존을 탐구한 것이다. 상상도 못 할 만큼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는 생명체들을 찾아본 일이,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시기를 헤쳐 나오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저자의 말처럼 그들의 전략과 적응 과정은 지구의 여섯 번째 대멸종 한가운데 서 있는 우리에게도 커다란 통찰을 건넨다.

이제 지표면으로 되돌아가 보자. 당신의 상상력을 지구 맨틀 깊은 곳에 놓인 지층에서, 그러니까 수백만 년에 걸친 지질 역사 속에 쌓인 암석층에서 위로 끌어올려 보라. 만일 당신의 생각이 아직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광산 안에, 즉 머리에 매단 플래시 빛밖에 없는 좁은 터널 안에 머물러 있다면, 천천히 지상으로 올라오라. 다시 탁트인 공기 속으로 나오면, 햇빛이 당신의 망막을 간지럽히고, 몇 시간 동안 햇빛을 못 본 뒤라 삶이 더 풍요롭게 느껴질 것이다. 식물들은 더 푸르고, 새소리는 더 달콤하다. 간질이고 장난치는 느낌까지 주며 산들바람이 피부를 스쳐 지나간다. p.285~286
이 책은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생존의 당연한 조건이라고 여겨지는 요소들이 없는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생명의 신비한 세계를 보여준다. 물, 산소, 먹이 없이 생존하기, 극저온, 극고압과 극저압, 극고온이라는 극한 환경에서 진화하는 생물들, 그리고 빛이 없거나 방사선이라는 독이 가득한 환경에서 살아남는 생명체들의 사례를 각기 구분해 정리했다. 흥미로운 것은 생존과 지속성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자신만의 고유한 '다름'이라는 점이다. 고유한 생존 방식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극한 환경을 향한 끝없는 진화의 원동력이 되어 주었으니 말이다. 태곳적 바다 깊은 데서 진화한 최초의 미생물부터 시작해, 생명체는 태양의 힘을 사용해 육지로 올라왔고, 하늘로 날아오르거나, 깊은 해구 속으로 들어갔다. 그 어떤 포식자도 따라올 수 없고, 그 어떤 경쟁자도 겨룰 수 없는 장소들을 찾아 모든 빈 공간과 틈새로 퍼져 나가게 된 것이다.
산소 없이 생존하는 멋쟁이거북, 먹이 없이 생존하는 셰다오 살무사, 극저압 고도를 견디는 큰뒷부리도요, 극저온 북극에 사는 북극곰, 극고온 사막에서도 전력질주가 가능한 사하라은개미, 겨울에 몸을 얼렸다가 부활하는 송장개구리, 체르노빌 출입금지 구역에서 방사선을 먹고 사는 미생물 등 지구에서 가장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는 동물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너무나 놀라웠다. 불가능해 보이는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생명체들의 이야기는 웬만한 소설보다 더 극적이고, 드라마틱하다. 정말 잘 읽히는, 쉽고 재미있는 과학책을 찾고 있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