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신 연못의 작은 시체
가지 다쓰오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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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살해당했다고요?"

"네."

혼조는 놀란 듯이 얼떨떨한 얼굴로 한동안 침묵했다. 그러다 조금 빠르게 다시 입을 열었다. 어딘가 조급해 보이기도 했다.

"모르겠네요...... 도무지 무슨 말인지......"

"조금 전 혼조 씨는 동생의 죽음에 뭔가 거짓이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고 하셨습니다만."    

"아, 그건 전혀 다른 의미로 한 말이었습니다."             p.73


간토 대학 공학부 건축 학과 교수인 도모이치는 최근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뤘다. 그런데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동생이 살해당했다'는 말을 남겼다. 23년 전 초등학교 3학년이던 동생은 전쟁 중 학동 소개로 지바현의 깊은 산골 마을에 보내졌었다. 그곳에 간 지 석 달쯤 됐을 무렵, 갑자기 학교에서 동생이 익사했다는 연락을 받았고 여태 그렇게 사고사로만 알고 있었다. 당시 소개지 아동을 불러다가 대접해 주는 행사가 있었는데, 그 초대를 받아 간 집 근처 연못에서 발을 헛디뎌 빠졌다고만 들었을 뿐 구체적인 정황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남기신 말 때문에 의문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돌아가시기 직전에 정신이 혼미해져서 하신 말씀일 수도 있었지만, 동생의 죽음을 조사하는 행위 자체가 죽은 동생을 위한 작은 위령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진실을 찾아 보기로 한다. 


그렇게 도모이치는 강의 일정을 바꿔 가면서 동생의 소개지였던 지바 쪽으로 조사를 위해 떠난다. 전쟁 후 지방의 부잣집들은 대부분 몰락의 길을 걸었던 것처럼 동생이 초대를 받았던 다에미 가도 지금은 마을에서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당주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일어났고, 결국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어머니라는 분도 도망치듯 마을을 떠나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하니 말이다. 다에미가를 둘러싼 기묘하고 복잡한 이야기도 많이 있었다. 선조들의 약탈로 목숨을 잃은 자들의 저주라든가, 쉽게 지워지지 않는 도적의 피, 그리고 근친혼이 잦았던 점 등이 얽혀 대대로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태어난다거나 으스스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다에미 가에 있던 연못에도 찝찝한 전설 같은 것이 전해 내려왔다고 한다. 용신 연못이라는 이름부터 사당에 용이 산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것이었다. 그리고 용이 산 제물을 원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과연 도모이치는 이십 년도 지난 동생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까. 




"그렇다고 살인까지 한다는 건 좀 비약 아닌가? 사람이 그렇게 쉽게 살의를 품을 수 있어?"

“살면서 단 한 번도 살의를 느끼지 못한 사람은 없다고 봐.

오히려 때때로 살의를 품는 인간이 정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왜 대부분 실제로 사람을 죽이지 않는 거지?”

“살의를 품는 것과 실제 행동에 옮기는 건 분명한 경계가 있으니까. 대부분 그 선까지 가면 거의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서게 돼.”            p.272


깊은 산골 마을에서 조사를 하는 과정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도모이치는 등 뒤에서 인기척을 느끼거나, 자신이 남긴 발자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또 다른 발자국을 발견한다. 그리고 어디를 가든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감각을 끊임없이 받게 된다. 작고 폐쇄된 마을이라 사람들의 은밀한 눈과 귀, 입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듯했다. 누군가 자신을 감시하고 미행을 한다면, 동생의 죽음에 그토록 들키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는 뜻이 아닐까 도모이치는 생각한다. 급기야 자신이 머물고 있던 방을 누군가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여행 가방을 뒤지며 찾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러다 도모이치는 누군가의 습격으로 인해 머리에 타격을 입고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만다. 대체 도모이치의 동생의 죽음에는 어떠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걸까?


이 작품은 마니아들 사이에서 '복선의 신'이자 '전설'로 끊임없이 회자되며 40여 년 만에 부활한 본격 미스터리이다. 가지 다쓰오의 작품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것인데, 이 작품은 1979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일본 현지에서도 한동안 절판 상태였다가 2022년에 복간되었고, 이번에 국내에도 출간된 것이다. 작품이 복간되면서 범인 설정, 메인 트릭, 대담한 미스디렉션, 치밀한 복선까지 본격 미스터리로서 완벽한 작품이라며 극찬한 미쓰다 신조가 해설을 썼다.  미스다 신조는 해설을 쓰기 위해 이 작품을 43년 만에 다시 읽었다고 하는데, 여전히 가지 다쓰오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고 말한다. 동생의 죽음에 얽힌 전반부의 미스터리만 하더라도 상당히 흡입력있는 전개를 보여주고 있는데, 중반 이후로 넘어서면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서 벌어지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건들이 시작된다. 곳곳에 치밀한 복선과 트릭이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한 작품이라,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부터 복선이 될 만한 부분에 별도로 표시를 하면서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후반부에 드러나는 진실은 그야말로 놀라웠다. 추리, 미스터리 분야의 책들을 꽤 읽어 왔기에 반전도, 범인도 쉽게 짐작하는 편이라고 자부했는데, 이 작품만은 예외로 둬야 할 것 같다. 그만큼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전개가 탄탄한 서사로 진행되기에,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이 결말에 이르렀을 때 비슷한 표정을 짓게 되지 않을까. 작가에게 제대로 당했구나, 싶을 테니 말이다. 폭풍 같은 복선 회수에 전율하게 되는, 전설의 미스터리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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