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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망명 공화국 - 제2회 위즈덤하우스 판타지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ㅣ 파란 이야기 23
노룡 지음, 카인비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0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너는 장래 희망이 뭐야?"
느릿느릿 점심 먹고 교실로 막 들어온 서로에게 물었다.
"음. 장래에 희망해 보려고 생각 중이야."
"그러니까 그 희망하는 게 뭐냐고."
"그러니까 장래에 생각해 본다고. 장래에 생각하라고 장래 희망 아냐?" p.49
마수리 마트는 물건을 산 사람들에게 선물 뽑을 기회를 준다. 75인치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 공기 청정기 등이 계산대 뒤로 늘어서 있어 기대감을 높여 준다. 서로와 아빠는 냉동 피자와 라면을 사고 선물 뽑을 기회가 생겼다. 서로는 꽝을 뽑았고, 아빠는 '창고 3회 이용권'이 걸렸다. 사장 아저씨는 창고에 다른 세상에서 몰래 들여온 물건들이 가득하다는데, 과연 어떤 물건들을 상품으로 받게 될까? 단, 바라는 게 있으면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방에 홀로 앉아 기도를 한 뒤에 오라고 했다. 아빠는 받고 싶었던 75인치 텔레비전을 아쉬운 듯 돌아보며 집으로 왔다. 그리고 다음 날 아빠는 몸이 아프다며 회사에 휴가를 냈고, 5시까지 방에 앉아 기도를 시작한다. 아빠는 과연 갖고 싶은 물건을 받게 될까?
방랑이의 장래 희망은 어릴 때부터 의사였다. 엄마 아빠가 그렇게 가르쳤고, 그래서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방랑이의 생활 통지표에는 '매우 잘함'으로 가득했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방과 후 수업과 번갈아 학원 네 개, 그리고 마지막으로 학습지 수업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방랑이는 과연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있는지 의심스럽다. 어느 날 방랑이는 친구들과 함께 마수리 마트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샀다. 사장 아저씨는 선물 뽑을 기회를 주었고, 서로는 꽝, 탁수는 아이스크림 1개, 그리고 방랑이는 '레알리모콘'을 뽑았다. 사장 아저씨는 텔레비전 리모콘과 독같이 생긴 '레알리모콘'을 주며 "잘 쓰기게. 잘 쓰면 조용해진다네." 라고 말했다. 레알리모콘은 무슨 기능이 있다는 걸까?

사고를 친 건 탁수였다. 나 빼놓고 여기 올 때, 내 손을 놓고 잽싸게 내 뒷주머니에서 뻥튀기 돋보기를 빼간 거였다. 방랑이가 날 데리고 오는 사이 그걸 들고 골짜기를 내려갔다가, 시냇물 옆에서 발견한 도롱뇽에게 돋보기를 비춘 것이다.
"도롱뇽이 공룡이 될 줄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 미안하다 미안해. 응? 그래도 그 덕분에 낙엽 미끄럼 신나게 탔잖아!" p.129
이 작품은 100% 어린이 독자의 선택으로 최종 수상작을 결정하는 제2회 위즈덤하우스 판타지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이다. 마수리 마트의 선물들은 세상의 소리를 차단시킬 수 있는 레알 리모콘, 세상 모든 걸 소화하는 슈퍼 소화제, 시간을 멈추는 스톱워치, 뭐든 순식간에 키워주는 뻥튀기 돋보기 등 기상천외한 물건들이다. 이서로, 장방랑, 은탁수, 소우주 네 명의 아이들은 각자 어른들의 기대와 욕망으로 인해 현실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마수리 마트의 선물들은 그런 아이들을 현실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준다. 그렇게 어린이의, 어린이에 의한, 어린이를 위한 나라 ‘초딩 망명 공화국’이 탄생한다. 무조건 놀 수 있는 그곳에서는 누구도 절대 명령하지 않고, 잔소리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안 할 자유가 있다. 그리고 일 등도 꼴찌도 없다.
실제로 이렇게 어린이들이 망명할 수 있는 나라가 있다면, 우리 어린이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공부 스트레스, 가정 폭력 같은 문제를 비롯해서 학교 내 왕따나 열등감, 친구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등 어린이들의 현실은 결코 쉽지만은 않다. 어른들의 잔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도록 세상의 전원을 꺼 버리고, 위험한 순간이나 피하고 싶은 순간에는 시간을 멈출 수 있다면 정말 든든하지 않을까. 세상은 어린이답게 놀고, 꿈꾸는 일을 어렵게 만들어 버렸지만, 적어도 이 작품 속에서만큼은 어린이들이 아이다움을 놓지 않을 수 있도록 마음껏 자유를 누렸으면 좋겠다. 다소 황당무계하게 느껴질 정도의 자유로운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그들만의 스트레스를 완전히 날려줄 것 같다. 어른들의 욕망으로 인해 자유롭지 못한 아이들은 마수리 마트 마술 선물로 그 현실을 가뿐히 넘어선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더라도, 어린이들도 각자 나름의 고단함이 있게 마련이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자유는 뭘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