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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철학 - 고대 철학가 12인에게 배우는 인생 기술
권석천 지음 / 창비교육 / 2025년 10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가 이토록 '뼈 때리는' 문장으로 설득하려는 독자는 누구일까요? 바로 아우렐리우스 자신입니다. 이렇듯 자기 자신과의 대화에 진심일 때 타인과의 대화에도 진심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대화, 자기 성찰을 하는 사람은 다른 이들과의 만남 같은 건 피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나 자신과 갈고 닦은 진심은 남들과 대화할 때도 우러나오기 마련입니다. 자기에게 성실한 사람은 남에게도 성실합니다. 그는 "인간의 낙은 인간다운 일을 하는 것"이라며, 가장 첫 번째 인간다운 일로 "동족을 호의로 대하는 것"을 꼽습니다. p.103~104
<사람에 대한 예의>로 만났던 권석천 작가가 5년 만에 신작으로 돌아왔다. 그는 ‘중앙일보의 송곳’으로 불렸을 만큼 유명한 저널리스트이자 JTBC 보도총괄이었던 당시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 속 이야기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희비극을 읽어 냈던 것이 전작이었다. 이번에는 고대 철학가 12명에세 배우는 삶의 지혜와 인생에 대한 해답이다. 2500년 전 고대 철학가들의 딱딱한 철학 이론이 아니라 삶의 불확실성 앞에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충실히 살아내는 '최선의 삶'을 위한 철학이다. 그리스 로마 고전을 연구한 전공자도, 철학자도 아니기에 저자의 고전 읽기는 조금 더 친숙해서 와 닿고, 엉뚱해서 재미있다.

사회생활을 하며 겪게 되는 동료와의 관계, 신념을 지키며 일하는 법, 타인을 이해하는 법에 대한 통찰로 누구나 철학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소크라테스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질문의 힘을, 소포클레스를 통해 신념을 위해 침묵하지 않는 용기를, 아리스토텔레스의 반드시 성공하는 설득의 법칙과 플루타르코스의 사람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호메로스의 철학을 다루고 있는 챕터가 특히 흥미로웠는데, 저자는 고대 그리스 고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서사시인 <일리아스>가 공감의 중요성을 잘 알려주는 최고의 참고서라고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며 '호메로스의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공감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도구'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약 2500년 전 인생 선배인 고대 철학가들에게 듣는 삶의 지혜와 인생 해답들은 그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전혀 고리타분하거나 식상하지 않았다. 이천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삶과 고민 등이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공감이 위안처럼 다가오는 시간이었다. 이는 우리가 여전히 고대 철학가들의 고민과 사유로부터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배워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선택을 보면서도 우리는 '아, 저렇게 하면 안 되는데', '아, 저때 저것을 했어야 하는데' 하는 가상 체험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러한 일종의 시뮬레이션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실제 상황에서 겪기 전에 간접 체험을 하고 나면 보다 나은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책을 늘 곁에 두는 사람의 판단이 남다른 것은 그 때문입니다. 여러분, AI에게 책 내용을 요약하라고, 책 읽는 것까지 맡기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책은 꼭 자신의 눈으로 읽으십시오. 그래야 사람을 익히고 배울 수 있습니다. P.205
뉴스의 유통기간이 갈수록 짧아지고 있는 요즘이다. 이는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세계적으로 가속화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덕분에 현재 상황이나 시기에 딱 맞는다는 뜻의 '시의성'은 더 중요해졌다. 저자도 기자를 할 당시에 시의성이 전부인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시의성보다 더 중요한 개념이 바로 '맥락'이라는 것을 어느 날 깨달았다고 한다. 맥락이란 어떤 일이 발생한 배경이나 전후 관계를 뜻하는 말로 이야기의 전체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맥락을 모르면 상황을 잘못 판단하기 쉽기 때문에, 같은 팩트를 다루더라도 어떤 맥락을 갖고 글을 쓰느냐에서 차이가 날 수 있다. 저자는 맥락과 시의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가져온다. <역사>는 양질의 팩트가 넘쳐나는 서술임에도, 팩트 너머에 있는 맥락을 볼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 헤로도토스는 <역사>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이 어떤 맥락 안에 있는지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고, 좀 더 자신감 있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렇게 이 책은 인간과 삶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던지며, 철학들의 사유를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지식으로 읽어 낸다. 또한 책의 커버를 벗기면 12인의 철학가 마을 지도가 있어 포스터로 활용해도 좋을 것 같다. ‘철학가 마을 지도’는 철학가에게서 뽑은 인생 기술을 공간으로 시각화한 것으로 양면 표지로 만들어져 책과 함께 펼쳐보면 더 흥미진진할 것이다. 혹시 지금 삶의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막막하다면, 이 책 속 철학가들로부터 해결책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가장 오래된 지혜에서 오늘날 필요한 삶의 태도를 발견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