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신
리즈 무어 지음, 소슬기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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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길을 잃으면 앉아서 소리치기.

트레이시는 얼마나 심각하게 길을 잃어야 이 선택지가 옳게 느껴질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녀의 목소리는 태어난 뒤로 계속 작아지는 것 같았고, 그리하여 열두 살 무렵에는 가까스로 들리는 정도에 이르렀다.

'아주 심각할 때'라고 트레이시는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완전히, 돌이킬 수 없이 길을 잃었을 때.             p.28


열두 살 트레이시는 여름 동안 유서 깊은 캠프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에머슨 캠프 참가자가 도착하는 즉시 배우는 규칙은 세 가지였는데, 오두막에 둔 음식을 보관하는 방법과 어떤 상황에서도 수영은 혼자 하면 안된다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세 번째는 '길을 잃으면 앉아서 소리치기'였다. 트레이시는 이 주의사항이 좀 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만 해도 그 바보 같은 말이 트레이시의 남은 평생 내내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게 될 거라는 사실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캠프가 시작되고 두 달 뒤, 한 소녀가 사라진다. 그녀는 캠프와 그 일대 삼림 보호구역을 소유한 반라 가문의 딸이었다. 문제는 14년 전, 소녀의 오빠 또한 숲에서 실종되었다는 점이다. 같은 장소에서 벌어진 두 건의 실종 사건, 대체 이 숲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캠프 지도교사 루이즈는 지난밤 인원수를 파악하고, 보조 교사가 책임을 수행하는 것을 확인하고 자리를 비웠지만, 책임을 피하기 위해 그 사실을 숨겨야 했다. 보조 교사 애너벨 역시 지난밤 아이들을 돌볼 차례였지만, 자리를 비우고 술을 많이 마신 상태로 잠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겨우 열일곱 인 애너벨은 사실이 밝혀져도 크게 곤란해 보이지 않았다. 최악의 일이라고 해봤자 해고당해서 부유한 자신의 부모에게 돌아가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루이즈에게 벌어질 만한 최악의 일은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그녀는 7년째 일을 못 하거나 할 의지가 없는 어머니를 부양해야했고, 잘못 하나 없이 부당하게 주어진 삶을 살아온 11세 남동생을 돌봐야했기에, 남은 평생 다른 일을 구하고, 다시 집을 얻어야 했으니 말이다. 루이즈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그리고 사라진 소녀 바버라는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오래 전 벌어졌던 소녀의 오빠가 사라진 사건은 지금의 사건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대체 숲이 간직하고 있는 진실은 무엇인지 페이지를 넘길 수록 궁금증이 증폭된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무언가가 있다.

게다가 살아 있든 아니든 바바라를 찾지 못하면, 구속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퍼즐 조각들을 살펴보고 또 살펴보면서, 마지막 조각을 맞는 자리에 끼우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안 되고 또 안 된다.

한동안 조용히 운전하는 가운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크게 울리는 바람에 웃음이 터진다.                    p.663


<무게>, <보이지 않는 세계>, <길고 빛나는 강> 등의 작품으로 만나온 리즈 무어의 신작이다. <무게>에서는 십 년이 넘도록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채 살고 있는 은퇴한 대학교수를 통해 체중 250킬로그램이라는 '무게'가 매일같이 전쟁을 치르면서 버텨내야 하는 삶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걸까에 대해 생각해 보게 했었다. 비정상적인 체중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물질적인 몸의 무게보다는 보이지 않는 영혼의 무게를 살찌울 수 있도록 주변 사람들이 그들에게 조금 더 관심과 사랑을 쏟아 부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길고 빛나는 강>에서는 미국이 직면한 마약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었는데, 도시에 만연한 마약중독으로 인해 자신의 가족이 겪은 고통의 내력을 탐색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는 인간과 컴퓨터가 공존하는 시대를 그렸는데, 과학과 암호학, 인공지능의 역사에 이르는 방대한 정보들을 배경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에 대해 이야기했던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자기 안에만 갇혀 있는 캐릭터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인공지능과 가상현실이라는 삭막한 세계를 다루면서 그 속의 인간에 대해 살피는 섬세한 작가였기에 이번 신작 역시 기대하며 읽었다. 


리즈 무어의 그동안 읽어온 작품 중에 <숲의 신>은 가장 두툼한 데 거의, 페이지수가 7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이다. 그럼에도 가독성은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 묵직한 무게만큼의 속도감을 보여준다. 이야기는 반라 가문의 가족들과 캠프 사람들을 화자로 각자의 시점으로 교차 진행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차곡차곡 쌓인 서사들이 감추고 있는 진실에 다가서는 순간의 묵직한 한방이 있는 작품이었다. 패닉(Panic)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팬(Pan)이라는 그리스 신, 숲의 신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팬은 사람들을 골탕 먹이기를, 혼란스럽게 하고 방향감각을 어지럽혀 자기 위치는 물론 사고력마저 잃게 만들기를 좋아하는 신이었다. 극중 캠프 관리인이 패닉에 빠지는 것은 숲을 적으로 돌리는 일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작품 속 이야기가 딱 숲의 신이 좋아하는 상황이 아닌가 싶었다.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한 악명 높은 살인마에 대한 소문, 피투성이 얼굴로 돌아온 용의자, 십여 년의 시간을 두고 사라진 두 아이와 숲을 돌아다니는 신원 미상의 인물, 그리고 평판에 집착하는 가문과 거짓된 삶을 살아가는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 순간 독자들마저 패닉에 휩싸이게 만든다. 자, 이 폭풍같인 이야기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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