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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삼국지 기행 : 위나라, 촉나라 편 - 기행장군 양양이의 다시 보는 삼국지 이야기
기행장군 양양이(박창훈) 지음 / 더퀘스트 / 2025년 9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보통 유명인의 생가나 역사 유적지는 관광지로 화려하게 조성하는 경우가 많지만, 누상촌은 달랐다. 입구는 소박하고 조용해서 초라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곳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유비가 자랐던 땅은 인위적 개발 없이 자연스럽게 변하며 그 자리를 지켜온 것이다. 덕분에 유비의 삶이 단순히 책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현실이라는 사실을 더욱 선명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p.198
삼국지 역사 현장을 찾아다니는 유튜브 채널 '기행장군 양양이'는 2019년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약 80여 곳의 유적지를 누비며 기록해왔다. 저자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게임과 소설을 통해 삼국지에 푹 빠져 있었던 '삼국지 덕후'이다. 언젠가 꼭 삼국지에 등장하는 전장과 영웅들이 머물렀던 도시들을 직접 가보겠다는 다짐은 자연스럽게 한문과 중국어 공부로 이어졌고, 결국 <삼국지>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는 지금에 이른 것이다. 이 책은 유튜브 영상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영상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이야기와 부족했던 설명을 보완했고, 새롭게 알게 된 최신 정보들도 수록한 것이다. 그러니 영상을 재미있게 보아왔던 구독자들에게도, 삼국지를 좋아했던 독자들에게도 훌륭한 선물이 되어줄 것이다.
이 책은 위나라와 촉나라의 이야기를 1, 2부로 나누어 구성하고 있다. 1부 위나라 이야기에서는 조조의 고향부터 시작해 그의 정치적 야망이 구체적으로 어디서 실현되었는지를 만날 수 있다. 2부 촉나라 이야기에서는 유비의 고향에서 시작해 그가 다스렸던 지역과 적벽대전이 벌어진 실제 무대 등을 만나볼 수 있다. 기대를 품고 찾은 장소가 예상과 조금 다르기도 하고, 치열했던 전투 현장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한 장소도 있었다. 군사적으로도 행정적으로도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했던 장소가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던 경우도 있었으며, 그저 발을 디디는 순간 왜 수많은 세력이 그곳을 차지하고자 했는지 그 절실함이 체감되는 곳도 있었다. 현재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 한때는 <삼국지>의 중심이었다고 생각하니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새삼 부러워지기도 했고, 후대의 문학과 전설 속에서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재탄생한 장소를 목격하기도 한다. 이 책의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그야말로 영화처럼 흥미진진한 역사 기행이 펼쳐졌다.

이 장면은 소설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허구다. 하지만 소화고성의 서문인 임청문 아래에서 만난 한 노점 주인은 "바로 앞에 보이는 이 임청문 아래가 마초와 장비가 싸운 그 자리요!"라며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말했고, 소설의 장면이 실제 역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이곳에서 삶을 이어가는 이들에게는 그런 이야기가 현재를 지탱해 주리라는 생각에, 굳이 진실을 바로잡지는 않았다. 중요한 것은 허구든 아니든 아직도 이곳에 전설이 살아 숨 쉬고 있으며, 덕분에 수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아온다는 사실이었다. p.309
삼국지는 정말 다양한 버전으로 출간되어 있는데, 나도 아주 오래 전에 열 권짜리 시리즈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등장 인물만도 무려 1,000명이 넘게 나오는데다 중국의 지명들 또한 헷갈리고, 그 분량도 만만치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꽤 지난 지금은 제대로 내용도 생각나지 않고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삼국지의 그 현장들을 실제 모습으로 만나게 되니, 하나둘씩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삼국지가 얼마나 재미있었는지도 말이다. 100년의 역사가 펼쳐진 바로 그 현장을 직접 밟고, 현지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한 것이기에 뭉클한 부분도 있었다. 사진 자료들도 아주 많이 수록되어 있어 현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이 책은 단순히 유적지를 방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적 사건의 흐름을 공간적으로 재구성해 위나라와 촉나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각 장의 서두에 배경지식과 함께 보면 좋은 기행 영상이 QR코드로 수록되어 있고, 기행 루트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지도가 첨부되어 있어 삼국지를 잘 모르는 이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장비가 오랫동안 다스렸던 도시 낭중에서 장비소고기와를 맛보고 수제 맥주 장비정양을 곁들이고, 모진도의 가파르고 험한 절벽에서 헌제의 드라마틱한 탈출 과정을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리고 조조가 시를 읊던 장소와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 현장을 비롯해서 백마전투의 평야, 적벽대전의 장강 하구 등 삼국지의 결정적 장면들이 실제 어떤 공간에서 이루어졌는지 만날 수 있어 흥미진진한 시간이었다. 방구석에서 편하게 <삼국지>의 무대를 만나보고 싶다면, 쉽고 재미있게 <삼국지>를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