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영감노트 - 읽고 쓰는 모든 사람을 위한 고전 수업
기무라 류노스케 지음, 김소영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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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셰익스피어의 가장 대단한 점은, 말로 표현되지 않는 순간을 어떻게든 말로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사랑, 증오, 분노, 후회, 인생에서 인간이 경험하는 감동이나 감정은 종종 너무 커서 말로 담아내기 어렵습니다. 특히 시대의 전환점에 서 있거나 곤경에 처했을 때는 더 그렇지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나란히 서서 혼연일체로 우리 앞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사랑을 뒤집으면 증오가 있고, 분노 바로 곁에는 용서가 있습니다. 매우 재미있기도 한 반면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이 삶입니다.             p.67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지만, 그럼에도 셰익스피어는 400년이라는 시간을 넘어서 여전히 동시대에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오 로미오, 로미오. 당신은 왜 로미오인가요?" 같은 대사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작품 제목은 물론 스토리나 대사까지 아마도 가장 사람들에게 많이 회자되고, 재창조되는 것이 바로 셰익스피어의 작품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여전히 셰익스피어가 사랑받는 것일까. 이 책은 그에 대한 답을 제시해준다. 


평생 셰익스피어를 해석해온 연출가이자 ‘진심인 덕후’인 저자가 대중을 위해 셰익스피어 작품 세계의 정수를 담았다. 저자는 대학에서 영미문학 전공으로 셰익스피어를 연구했고, 셰익스피어 전문 창작집단을 설립해 전 작품의 무대 연출을 맡아왔다. 이 책은 말, 이야기, 낭독, 연출, 시대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를 통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살펴본다. 애초에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무대에 올리기 위한 극작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연출가의 시선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들이 매우 흥미로웠다. 실제 무대 연출 사례와 대사 분석 등을 통해 쉽고 재미있게 셰익스피어에 입문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당시의 질퍽거리는 인간관계를 그린 것도 있고, 인간이란 정말 위대하다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이야기도 있으며, 지금 세상에는 차마 방송되기 어려운 막장드라마 같은 가십, 그리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감동 스토리도 담겨 있다. 이렇게 워낙 작품들이 다채롭다 보니 별별 음모론이 다 있는데, 실존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셰익스피어란 인물은 존재하지 않고 팀이 공동 집필해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했다는 설까지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지금까지 이 책에서 봐왔듯 셰익스피어는 비비드한 감각으로 시대와 함께 호흡했고, 사람들에게 실시간으로 임팩트를 주는 연극이라는 수법을 활용해 '인간과 세상'을 표현했습니다. 문학가로 유명하지만 그것은 셰익스피어의 일면에 지나지 않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문학'이라는 틀 안에 다 들어가지 못할 정도의 정보량과 리얼리티를 지닙니다.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까지 울려올 만큼의 강도로 현실 그 자체를 전해주지요... 그 관점으로 보면 400년도 더 전이라는 시간적인 거리 같은 건 전혀 상관이 없어집니다.                 p.221


원문을 읽지 않았더라도, 셰익스피어의 작품만은 대부분의 내용을 다 알고 있고, 심지어 읽지 않았음에도 읽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유명하고, 대중적이고, 여러 버전으로 우리를 찾아오는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진가는 명문장들에 있다. 시처럼 압축된 표현들과 수많은 은유들이 시대를 초월하는 통찰과 지혜를 담고 있으니 말이다. 변화하는 당대의 사회 상황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흥미로운 극 <햄릿>, '악인' 자체보다 '악'의 작용방식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어 주는 <오셀로>, 셰익스피어의 비극 가운데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분노와 슬픔으로 가득 찬 <리어 왕>, 인간의 양심과 영혼의 절대적 붕괴라는 명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맥베스>까지 나는 4대 비극을 비롯해, 5대 희극, 그리고 후반부에 발표되었던 작품들까지 거의 다 읽었다. 영화, 뮤지컬, 연극 버전으로 변주된 이야기로도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만나왔다. 그럼에도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는 것처럼 흥미진진했으니, 그게 바로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가진 힘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셰익스피어가 그린 이야기는 허황된 공상이 아니라, 사실적이면서도 납득이 되는, 우리가 피부로 느끼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진짜 삶이 반영된 스토리이다. 이 책의 저자는 연출가다운 시선으로 그러한 셰익스피어의 이야기가 '미완성'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지문'이라 불리는 보충 설명도 거의 없고, 읽다 보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싶은 이야기의 빈틈도 많이 나오며 배경 설정도 알 수 없고, 구체적인 감정 지시도 없다고 한다. 그 덕분에 오히려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고, 그래서 셰익스피어가 일부러 작품에 여백을 남긴 면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이다. 그렇게 이 책은 셰익스피어의 대표작들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대사와 구성도 짚어 보며 어떻게 시대를 넘어 현대를 사는 우리 마음까지도 울리는 작품들이 되었는지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고 하나의 작품을 연출하는 구체적인 과정까지 체험해볼 수 있도록 해준다. 후반부에는 37편에 이르는 셰익스피어의 전 작품을 혼자서 20년에 걸쳐 완역한 번역가와의 대담을 수록해 작품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한다. 그 외에도 성격 유형별 추천 작품, 주요 캐릭터 도감 등 다양한 읽을 거리들이 있으니 셰익스피어가 어렵게 느껴졌던 이들에게 적극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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