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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찢남의 인생 정식
조광효 지음 / 책깃 / 2025년 7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운명의 그날, 우리는 특별한 메뉴를 고민하다가 때마침 출출해져서 떡볶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곁들여 먹던 밥버거가 우연찮게 떡볶이 접시 안에 툭 떨어졌는데 그게 생각보다 너무 맛있었다. '이거다!' 싶었다. 만화책 <요리왕 비룡>에서 영감을 받아 접시 한가운데에 볶음밥을 놓고 주변을 떡볶이로 둘렀다... 우리는 이걸 '비룡 떡볶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만화책에 나온 요리를 우리 식으로 재해석해 만든 음식이 만화방을 찾은 손님을 즐겁게 해주었고, 그 덕분에 장만동 책장을 만화책으로 가득 채울 수 있게 되었다. 만화와 음식, 역시 떼려야 뗄 수 없는 ‘꿀조합’인 것이다. p.115~116
전 세계적으로 요리 서바이벌 신드롬을 일으켰던 '흑백요리사'를 재미있게 보면서 눈에 띄는 셰프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단연코 독특한 개성을 보여주었던 캐릭터가 바로 '만찢남' 조광효 셰프였다. 실제로 긴장감 넘치는 경연 중에 찢어온 만화책 낱장을 들고 요리를 하기도 했었는데, 만화책을 찢어서 요리하는 남자라는는 컨셉부터 정말 신기하면서도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가 만든 요리 이름이 ‘<맛의 달인> 2권 25페이지 동파육’, ‘<철냄비 짱!> 8권 23페이지 게살 춘권’ 이었을 정도이니 시선을 사로잡는게 당연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가 만드는 음식들의 맛이 궁금해졌다. 정통 셰프들 사이에서 꿋꿋하게 자신만의 요리 철학과 레시피로 당당하게 대결하는 모습이 멋져 보였기 때문이다.
정식으로 요리를 배워본 적이 한 번도 없고, 오직 만화책으로 요리를 배웠다는 평범한 청년이 어떻게 셰프가 되었는지 궁금했다면 그의 첫 책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만화방을 운영하며 만화책에 등장하는 요리를 따라 만들고 재해석해 음식을 만들고, 마라샹궈에 반해 쓰촨요리 전문점을 열기도 하는 등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앞뒤 재지 않고 일단 시작하는 사람의 인생 여정은 정말 만화처럼 재미있는 일들로 가득했다. 요리 만화를 덕질하다 레스토랑 오너 셰프가 되기까지 무수한 실패와 좌절이 있었지만, 좋아하는 일 앞에서 망설이지 않고 도전하는 그의 열정 덕분에 모든 순간이 즐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맛의 고장 전라도에서 재야의 고수에게 1년 9개월 동안 하루도 빼먹지 않고 매일매일 특식 레시피들을 전수받았던 취사병 시절 덕분에 요리의 재미에 아주 살짝 눈을 뜨게 되었고, 마라샹궈를 처음 먹고는 '맛있다'라는 감탄과 '팔아야겠다'라는 각오가 한데 뒤섞여 쓰촨으로 가는 중국행 비행기표를 끊고는 일주일간의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 쓰촨 음식을 파는 장쓰동을 연다. 그야말로 스펙터클한 요리 인생이다.

독학으로 요리를 하나하나 터득해나갈 수밖에 없었던 건 따로 공부할 시간이 없었고 레스토랑 막내로 들어가 기초부터 익힐 여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20대 때 어쩌다 시작하게 된 장사였기에 도중에 멈출 수는 없었고, 갑자기 가게 문을 닫고 요리사의 첫걸음을 떼기에는 생계 유지라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나를 믿고 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책을 보고 열심히 연습해서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의 음식을 손님들에게 내놓고, 손님이 음식을 남기고 가면 접시에 남은 요리를 먹어보고 뭐가 부족한지 분석해 날마다 조리법을 보완해가는 과정을 되풀이했다. p.198
전형적인 요리사의 길을 걷지 않은 비전공자가 셰프가 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만화책을 통해 요리를 배우다니, 이 무슨 만화같은 이야기란 말인가. 게다가 미술을 전공한 조광효 셰프 또한 자신이 요리사가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자전거 디자이너로 일하다, 돌연 만화방을 차린다. 그리고 자본금이 부족해 만화책을 사들이지 못해서 신메뉴를 개발하기로 하는데, 만화책에 등장하는 음식을 만화방 손님에게 대접하다 그게 입소문이 나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만화방보다 떡볶이 맛집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을 정도라고 하는데, 그 덕분에 책장을 만화책으로 가득 채울 수 있게 되었다니 인생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는 것이 새삼 느껴지는 에피소드였다.
그는 끊임없이 연구하고 새로운 요리를 개발하며 다양한 테스트를 해왔다. 만화책에서 영감을 얻은 메뉴,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메뉴를 구현하는 데 오랜 시간을 썼는데, 그 모든 과정이 너무나 즐거웠다고 말한다. 그건 특정한 분야에 정통한 셰프는 아니어도 나만의 길을 끊임없이 개척해나간다면 어느 때고 요리가 나에게 ‘맛’으로 보답하는 날이 오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만화 속 주인공이 우여곡절 끝에 놀라운 성장을 거듭하는 것처럼, 그도 타고난 근성과 특유의 성실함으로 크고 작은 위기와 어려움을 통과해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다. 이 책에는 20편의 에세이, 8편의 특별 만화, 22개의 레시피, 그리고 초판 한정 '만화방 떡볶이' 레시피가 삽입되어 있다. 요리 레시피 평범한 것이 하나도 없고, 요리 에피소드를 그린 만화 또한 너무도 유쾌하고 재미있었다. <흑백요리사> 만찢남 셰프의 달고 맵고 짜고 맛있는 인생 모험기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