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우주에서 우리 만나더라도
마크 구겐하임 지음, 이나경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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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형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분명하다. 저명한 과학자를 심문하는 줄 알았던 그는 조너스에게 모종의 정신질환이 있을 가능성을 고려하기 시작한다. "컬런 박사님......" 지야드는 적절한 말을 찾느라 잠시 멈춘다. "부인은 돌아가셨습니다." 

조너스는 차분하다. 누구나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임은 알고 있다. "이 세계에서는 죽었죠. 하지만 다른 세계가 있습니다. 거의 무한한 수로." 지야드가 여전히 혼란스러운 모양이라서 조너스는 이렇게 덧붙인다. "그 세계, 그 사람이 살아있는 평행우주로 가려는 거였어요. 그 사람이 아직 살아있는 현실로."               p.43


양자이론을 이용해 '다중우주'의 존재를 수학적으로 증명해낸 입자물리학자 조너스 컬런은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다. 하지만 시상식이 끝나고 벌어진 교통사고로 인해 아내 어맨다와 어렵게 가진 배 속의 아이를 잃게 된다. 절망에 빠진 그는 아내가 살아있는 평행우주를 찾기 위해 다른 현실 사이를 이동할 방법을 고안해 낸다. 그리고 2년, 용병을 고용해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 침입한다. 그리고 대형 강입자 충돌기를 가동시켜 자신이 속한 우주의 현실에서 벗어나 다른 우주를 찾아 나선다. 이야기는 조너스가 평행우주들 사이를 이동하는 현재와 아내와 처음 만났던 과거가 교차되면서 진행된다. 무한에 가까운 수의 평행우주들 중에서 그는 과연 아내가 살아있는 세계를 찾을 수 있을까. 만약 그녀가 살아있는 세계를 찾아냈는데 그곳에 또 다른 자신도 있다면 어떻게 될까. 


5년전 조너스는 동료 교수이자 학과장인 빅터와 친구 사이였다. 여섯 살 연상의 빅터는 스스로를 조너스의 멘토라고 소개할 정도였다. 빅터는 다중우주 혹은 평행현실의 존재를 증명할 수단을 찾기 위해 오랜 세월 노력했다. 하지만 14년의 연구 끝에 그는 연구가 실패했다고 선언하고, 노트와 연구 내용을 전부 업애버렸다. 그게 3년 전이었다. 하지만 빅터는 자신이 양자 결어긋남 문제를 풀 방법론에 다가간 것 같다고, 자신의 연구 결과를 빅터에게 주며 의견을 달라고 말한다. 그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14년 동안 붙들고 있었던 문제를 퍼뜩 영감이 떠올라서 풀었다는 조너스의 말에 대해 그는 화를 낸다. 그 뒤로 두 사람의 사이는 손 쓸 수 없이 멀어져버렸고, 급기야 빅터는 조너스가 자신의 이론을 표절했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심사를 받은 결과 표절이 아니라고 나오지만, 그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조너스를 교수직에서 내쫓아 버렸다. 두 사람의 악연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조너스가 아내를 잃고 평행우주를 이동하기 시작했을 때, 빅터가 자신의 복수심을 이용해 그것을 막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조너스는 도시 안, 망망대해처럼 펼쳐진 불빛과 강철, 유리, 네온사인을 향해 뛰어든다. 수많은 인파가 주위에 넘실댄다. 조너스도 그 흐름에 들어서 익명의 바다에서 헤엄치듯 걷는다...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접어 넣은 종이가 잡힌다. 도플갱어의 연구 내용. 실험의 핵심 해답. 그를 구원할 방법이다. 만약 이 아주를 떠나서 양자물리학 연구소가 있는 다른 우주로 이동할 수 있다면. 만약 강입자 충돌기 혹은 그 비슷한 기계를 쓸 수 있다면. 만약 다른 조너스의 계산이 유효하고 세 번째, 마지막 어맨다가 아직 살아있는 우주를 제대로 계산했다면. 만약. 만약. 만약. 게다가 그 모든 일을 도움도 돈도 없이 해야 한다.             p.205~206


이야기는 5년 전 조너스와 어맨다가 처음 만난 순간부터 연애하던 시기와 결혼해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시기를 거쳐 빅터의 방해로 사면초가에 처했을 시간을 모두 보여준다. 차곡차곡 교차로 진행되는 이야기 덕분에 우리는 조너스와 어맨다가 서로에게 어떤 의미인지 점차 깨닫게 된다. 그리고 현재 시점에서 조너스가 어맨다를 찾아 여러 우주를 다니는 이야기가 펼쳐지니, 목숨을 걸고 그녀를 찾기 위해 애쓰는 그의 심정을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맨다를 찾아 내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교통사고가 아니라 비행기 사고로 그녀가 이미 죽고 없는 우주도 있었고, 천신만고 끝에 만났을 때는 빅터의 방해로 다 망쳐 버린다. 희망은 양날의 칼같은 것이어서 생명을 이어나가게 하지만, 엄청나게 잔인한 잠재력도 갖고 있었다. 그러다 자신의 도플갱어를 만난 우주에서 시간이 지나면 양자에너지가 소멸되고 말거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게 사라지만, 특정 우주에 갇히게 된다는 거였다. 과연 조너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내에 아내를 찾아낼 수 있을까. 


이 작품은 다양한 영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에미상을 수상하기도 한 작가 마크 구겐하임이 쓴 이 평행우주 SF이다. 그동안 평행우주를 소재로 한 꽤 많은 작품을 읽어 왔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과학적으로 디테일하고, 로맨틱한 서사를 가지고 있는 이야기였다. 조너선이 자신의 이론을 훔쳐갔다는 생각에 복수심에 불타 그가 아내를 만나는 것을 막으려는 또 다른 물리학자 빅터의 존재는 이야기를 더욱 긴박감넘치고 스펙터클하게 확장시킨다. 마치 잘 만들어진 할리우드 영화 한편 본 것처럼 군더더기 없는 재미와 감동을 모두 갖춘 작품이었다. 만약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이 일어나는, 상상할 수 없으리만큼 무수히 많은 세계', 즉 다중 우주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어떨까, 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이 책을 꼭 읽어 보길 권해주고 싶다. 이 책은 과학적인 사실을 토대로 만들어진 구체성으로 단번에 당신을 사로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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