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포 투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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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평생 처음으로 부러움이 푸시킨의 가슴을 찔렀다. 부러운 것은 이 젊은 커플의 부유함이 아니었다. 뉴욕이라는 전설적인 도시에 있는 것 같은 이 우아한 테라스에서 두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매력적이고 평온한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 아름답고 젊은 여성이 함께 있는 남자를 향해 보여주는 미소가 부러웠다. 푸시킨은 평생을 통틀어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이런 식으로 자신에게 미소를 지어주는 일을 상상조차 한 적이 없었다.               - '줄 서기'중에서, p.35


에이미 토울스는 한 작품의 완성에 4년의 집필과 1년의 독서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힌 적이 있다. 4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발표한 데뷔작 <우아한 연인>이 2011년, 두 번째 작품인 <모스크바의 신사>는 2016년, 세 번째 작품 <링컨 하이웨이>는 2021년 작품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그의 첫 소설집이 나왔다. 단편소설 여섯 편과 중편소설 한 편을 엮은 <테이블 포 투>는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두 도시를 무대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뉴욕 편에 수록된 여섯 편의 단편소설은 작가가 '직접 목격한 시대와 장소'를 통해 그려졌기에 기존의 장편소설들과는 굉장히 분위기가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장편의 호흡을 능수능란하게 끌고 가는 작가이지만, 짧은 이야기에 담긴 반짝거리는 삶에 대한 통찰과 우아한 위트는 여전히 매혹적이다. 


모스크바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마을에 살던 농부와 아내는 처지에 걸맞은 인내와 끈기로 땅을 경작하고, 씨앗을 심고, 곡식을 수확하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모스크바에서 온 청년의 열정적인 연설에 동화된 아내가 모스크바로 이사를 가겠다고 선언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도시의 중심부에 도달한 뒤 비스킷 집단공장에서 일자리를 구한다. 제빵사의 조수로 들어간 아내 이리나는 뛰어난 솜씨로 점점 자리를 잡아가지만, 남편 푸시킨은 밀가루 포대 창고에서, 청소반에서 계속 일을 못해 결국 해고당하고 만다. 그렇게 부부는 같은 길 위에서 점차 다른 생각을 품게 되는데, 공산주의 사회 속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고군분투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유쾌한 서사 이면에 많은 여운을 남겨 준다. 이 작품 외에도 우연히 대문호의 서명을 위조하게 된 작가 지망생, 카네기홀에서 연주를 불법 녹음한 노인, 르네상스 작품의 마지막 조각을 쫓는 전직 경매사 등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뉴욕은 별로 나쁘지 않았어요. 거기서 평생 처음으로 진정한 친구를 사귀었는데, 둘이서 정말 원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죠. 하지만 결국 나는 동화 같은 환상에 완전히 지쳐버렸어요."

"여기에도 그런 환상은 아주 많아." 찰리가 지적했다.

"당연히 그렇죠. 하지만 저기 동쪽의 동화는 천년 전의 것이에요. 세대에서 세대로 계속 내려온 거죠.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어쩌고 하는 헛소리들. 여기에도 동화는 있지만, 사람들이 모두 살아가면서 만들어내는 이야기처럼 보여요."                      - '할리우드의 이브' 중에서, p.465~466


로스앤젤리스를 배경으로 쓰인 중편소설은 작가의 데뷔작인 <우아한 연인>의 등장인물 이블린 로스를 주인공으로 뉴욕을 떠나 할리우드로 간 그녀의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개인적으로 에이모 토울스의 작품 중에 <우아한 연인>을 가장 사랑하기에, 이브의 등장이 너무도 반가웠다. 당시에는 케이티와 팅커의 이야기에 더 마음을 빼았겼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이브라는 캐릭터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하게 된 것 같다. <우아한 연인>은 이민자의 딸이자 노동 계층인 케이티와 할리우드 드림을 꿈꿨던 이브, 그리고 젊고 유망한 은행가 팅커, 세 사람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들 세 사람의 운명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와 팅거의 충동적인 결정으로 인해 완전히 달라졌는데, 이번에 만난 <할리우드의 이브>는 그 이후의 이야기이기도 해서 더 설레이며 읽었던 것 같다. 극중 이브는 은퇴한 경찰관 찰리와 이야기를 나누다 그가 뉴욕에서는 무슨 일을 했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상당히 여유롭게 살았어요, 찰리. 센트럴파크를 굽어보는 커다란 아파트에서 잘생긴 남자랑 함께." 하지만 고개를 저으며, 대체로 별로였다고 말한다. 그래서 마음이 아팠다. 사실 나는 케이트와 팅거에게 더 몰입하면서 그 작품을 읽었던 터라, 이번에 다시 <우아한 연인>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번에는 이브의 편에서 말이다. 


"그럼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건 관심 없어?"

"전혀 없어요. 오해하지는 마세요. 가끔 행복해지는 건 좋아요.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아요. 넌더리가 나는 건 '영원히' 라는 말이에요."


은퇴한 경찰관, 한물간 노배우, 스턴트맨 지망생, 영화사의 법률자문, 사진작가 등 여러 인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브의 이야기는 에이모 토울스 특유의 고전적인 분위기와 우아한 문장이 어우러져 우리를 이 작품과 사랑에 빠지도록 만든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 속에서 가슴이 시리도록 매우 사랑하는 장면이 하나쯤 있을 것이다. 지금도 내 가슴을 쿵 내려앉게 만드는 장면은 <우아한 연인> 속에 있다. 그래서 이번 신작이 더 특별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에이모 토울스의 작품들을 차근차근 읽어 왔던 독자들이라면, 이번 신작도 반드시 챙겨보겠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은 에이모 토울스의 작품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왜냐하면 이 책을 시작으로 다른 작품들도 찾아서 읽게 될 수밖에 없으니까. 누구나 이 작품을 통해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에이모 토울스의 매력을 발견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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