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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푸른 벚나무
시메노 나기 지음, 김지연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꽃은 피면 지기 마련이고 꽃이 져야 다음 계절이 찾아온다. 이러한 순환 덕분에 생명을 계속 이어갈 수 있다. 사람은 사라져가는 눈앞의 현실에만 관심을 보이지만 과거가 있었기에 미래도 있는 법이다. 과연 알기나 할까. 오늘이라는 하루는 면면히 이어지는 시간의 한 조각이라는 사실을. 삶은 그렇게 이루어지고 있다. p.21~22
서른 살인 히오는 3년째 카페 '체리 블라썸'을 운영하고 있다. 지은 지 족히 70년은 넘은 가게는 가족의 역사가 담긴 곳으로 외할머니가 운영하던 아담한 호텔에서, 엄마가 운영했던 양식 레스토랑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계절에 맞는 화과자와 차를 제공하는 카페가 되었다. 마당에는 커다란 몸집의 오래된 산벚나무가 자리하고 있는데, 봄이면 흰색에 가까운 연분홍색 꽃과 적갈색 새잎이 어우러져 눈부시게 밝고 화사한 풍경을 자아낸다. 3대째 이곳을 이어온 외할머니 야에와 어머니 사쿠라코 그리고 지금의 카페 주인 히오를 지켜주는 수호신같은 존재로 등장하는 100년이 넘은 벚나무가 화자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카페 도도 시리즈에서도 카페의 부엌 기둥에 걸려 있는 작은 액자 속 도도가 화자로 등장했었다. 도도는 한때 이 세상에서 숨 쉬며 살았지만 지금은 절멸해버린 새의 이름인데, 액자 속 그림이 되어 카페 도도의 부엌에서 주인장과 손님들을 지켜보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도도라는 이름의 유래가 '바보'였기에, 도도의 시점으로 들려지는 이야기는 조금 귀엽고, 유쾌한 톤이기도 했었다면, 이번에 등장하는 벚나무는 오랜 세월만큼의 무게감과 통찰력을 가지고 있어 도도의 업그레이드 버전같은 느낌도 들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 히오는 매사에 서툴지만 카페를 운영하는 데 진심이다. '만개한 꽃이 아니라 서서히 지기 시작한 꽃잎, 겉으로 드러난 사랑스러움이 아니라 고상하게 잎사귀에 싸여 있는 흰색 떡' 같은 것들이 삶을 여유롭게 해주고 아름답게 해준다는 것을 손님들에게 전하고자 노력 중이다. 꽃집을 운영하는 미야코가 시기에 맞춰 꽃을 장식해주고, 히오는 비에 젖은 벚나무를 표현한 과자, 은은한 복숭아색 유약을 바른 찻잔 등으로 계절감을 고스란히 살려서 손님들에게 내준다.

화과자 가게의 소에다 모녀도 그러기를 바라며 과자를 만들었다. 손으로 집자 하나비라모찌의 부드러운 감촉이 손끝에 전해지면서 기분도 저절로 풀린다. 살며시 깨물어 먹으니 매화꽃 한복판에 자리한 우엉의 단맛과 안에 든 소의 풍미가 입안에 가득 퍼진다. 흰색과 분홍색을 겹쳐서 만든 규히 반죽에서는 쫀득쫀득한 찰기가 느껴진다.
"행복한 맛이 나는데요." 가나가 감상을 말한다.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서 만들었대요." p.184
카페 도도 시리즈는 주인장 소로리가 개발한 ‘오늘의 추천 메뉴’에 따라 각 장이 구성되며, 음식 한 접시로 위로 받고 행복을 느끼게 되는데 초점을 맞추었었는데, 이번 작품의 주요 소재는 다르지만음식 메뉴에서 만나게 되는 즐거움 또한 놓치지 않고 있다. 카페 '체리 블라썸'은 계절에 맞는 화과자와 차를 제공한다. 오래전 호텔을 운영하던 시절처럼 손님이 신발을 벗고 들어와 슬리퍼로 갈아 신도록 했더. 조금이라도 더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서양식 방이 둘, 일본식 다다미방이 하나 있는데, 각각 벚나무, 범주채, 삼잎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 팀밖에 못 들어가는 작은 방도 있고, 두세 팀이 동시에 들어가도 될 만큼 넓은 방도 있다. 손님이 방을 골라 차와 시즌 디저트를 고르는 식으로 운영이 된다. 손님들은 차와 과자, 그릇까지 계절감이 살아 있어서 근사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히오가 나름의 방식으로 카페를 운영하는 동안 100살 벚나무 또한 꽃을 피우고, 단풍을 물들이고, 휴면기에 들어갔다가 다시 새봄을 기다린다. 꽃이 피면 지기 마련이고 꽃이 져야 다음 계절이 찾아온다. 이러한 순환 덕분에 생명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라져가는 눈앞의 현실에만 관심을 보이지만 과거가 있었기에 미래도 있는 법이다. 오늘이라는 하루 또한 면면히 이어지는 시간의 한 조각인 것이다. 사람들은 만재한 벚꽃을 아끼고 사랑하지만, 벚꽃의 아름다움은 꽃이 전부가 아니다. 꽃이 질 때만 느낄 수 있는 멋과 맛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장점만 보지 말고 내면에 감춰진 장점까지 찾아낼 수 있다면 인생이 훨씬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실제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저자가 잎이 없는 겨울 벚나무를 보며 봄에 꽃을 피우기 위한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고 이 소설이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사계절의 자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이야기라 더욱 흥미롭게 읽었다. 시메노 나기의 작품은 카페 도도 시리즈로 만나게 되었는데, 이번 작품이야말로 힐링 소설의 최고점에 있는게 아닌가 싶다는 생각도 든다. 누군가에게는 이 책이 '인생소설'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