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억을 되살리는 남자 ㅣ 스토리콜렉터 120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5년 3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타일러가 묘한 표정으로 데커를 보았다. "아저씨도 가까운 사람을 잃어보신 적이 있는 것 같아요."
데커는 그 젊은 아이에게서 자신의 젊을 적 모습을 보았다. 운동 능력만큼은 자신감이 있었지만 그 나머지는 아무것도 확신하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우린 모두 가까운 사람을 잃어봤단다, 타일러. 중요한 건 거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야. 왜냐하면 그걸 망쳐버리면 다른 모든 건 정말이지 의미를 잃고 말거든." p.88
에이머스 데커는 새벽 3시경 전화를 한 통 받는다. 오래전 오하이오주 경찰서에서 일하던 시절 파트너였던 메리였다. 그녀는 조기 치매 진단을 받고, 계속해서 악화일로를 걷고 있던 참이었다. 매일 자신이 점점 더 사라져가는 듯한 기분이 절망스러워하는 그녀는 급기야 자신이 딸마저 잊어버렸다고 고백한다. 얼마 동안 자신의 머릿속에서 딸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도 끔찍했다고 괴로워하던 그녀는 데커와 통화 중에 총으로 자살을 결행하고 만다. 친구의 자살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 속에 메리의 장례식에 참석한 데커에게 새로운 사건 소식이 전해진다.
연방 법원 판사와 그녀의 경호원이 살해된 채 발견된다. 장소는 부유한 해변 도시에 있는 판사의 집 안이었고, 판사의 시신에는 구멍이 뚫린 검은 안대가 씌워져 있었고, 그 위로 ‘레스 입사 로키토트(Res ipsa loquitor)’라 쓰인 카드가 놓여 있었다. 범인이 카드를 가져왔다면 확실히 계획범죄라는 증거였지만, 경호원이 총탄 두 발을 맞은 것에 비해 판사는 여러 차례 칼에 찔렸으니 무척 모순적인 범죄현장이었다. 판사의 판결에 불만은 품은 누군가가 살인을 저지르고 메시지를 남겨놓은 것처럼 보였던 이 사건은 수사가 시작되면서 점점 더 복잡해진다. 실마리는 되는 대로 흩어져서 제각기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고, 누군가를 용의자로 체포하지만 범인은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는 증거가 나오고, 모든 길이 막다른 골목으로 향하고 있었다. 에이머스 데커의 탁월한 기억력으로도 사건의 퍼즐들을 하나로 짜맞추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게 닥친 최대의 위기, 과연 그는 겹겹이 숨겨진 진실을 풀어내고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데커는 이 조사 과정에서 보고 들은 모든 걸 떠올리고, 그것들을 다른 모든 것들과 나란히 늘어놓았다. 겹겹이 쌓인 대화의 층들, 겉보기엔 무고한 발언들, 특정한 관찰들, 그리고 온갖 다른 증거들이 데커의 개인 클라우드에서 추출되어 서로 대조 분석됐다. 그리고 그 모든 것으로부터, 깜짝 놀랄 만큼 선명한 진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이지 모든 것은 가장 사소한 세부사항에 있었다. 얼핏 보기엔 전혀 중요하지 않았던 것들이 가장 마지막 순간에 유일하게 중요한 것으로 변했다...' p.558
데이비드 발다치의 '데커' 시리즈 일곱 번째 작품이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괴물이라 불린 남자>, <죽음을 선택한 남자>, <폴른:저주받은 자들의 도시>, <진실에 갇힌 남자>, <사선을 걷는 남자>에 이어 이번에는 <기억을 되살리는 남자>로 돌아왔다.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 그 다섯 번째 작품이다. 에이머스 데커, 195센티키터, 몸무게는 135킬로그램에서 180킬로그램 사이를 오가는 거한. 대학 4년 내내 미식축구 선수였고 내셔널 풋볼 리그에 진출했으나, 첫번째 출전한 경기에서 사고로 선수로서의 경력은 끝났다. 경찰로서 20년 근무했지만, 어느 날 오랜 잠복근무 끝에 귀가했다가 아내, 처남, 그리고 딸이 잔혹하게 살해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후 노숙자 보호소를 거쳐 사설 탐정으로 잡다한 일을 하며 밑바닥으로 추락한 삶을 살았지만, 결국 사건 해결에 활약을 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FBI 미제 수사 팀에서 일하게 된다. 데커는 미식축구 경기 중에 사고를 당했고, 잠깐 동안 죽었다 살아난 댓가로 과잉기억증후군이라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게 됐다. 거기에 더해 숫자와 색깔이 연결됐고, 시간도 그림처럼 눈에 보이는 공감각 능력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그가 하는 수사란 일반적인 범죄 수사의 패턴과는 조금 다를 수밖에 없고, 그것이 이 시리즈 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매력이다.
출간되는 족족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고, 80개국 45개 언어로 출간되어 전 세계적으로 1억 1천만 부가 팔린 작가. 출간 수익을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범죄 소설 작가'인 데이비드 발다치의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는 거듭되는 반전과 탄탄한 구성, 그리고 특별한 능력을 가진 매력적인 캐릭터까지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재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시리즈가 여러 권 출간되었을 경우 선뜻 시작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시리즈를 시작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첫 번째 이야기가 아니라 가장 완성도 높고 재미있는 작품에서부터 출발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를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작품은 바로 이번 작품 <기억을 되살리는 남자>이다. 데커는 이번 작품에서 오래 함께했던 파트너가 아니라 새로운 파트너와 함께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 기존에 계속 등장하던 인물이 거의 나오지 않는 다는 것 또한 시리즈를 처음 시작하기에 더할나위없이 좋다. 게다가 거의 6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이 말해주듯이 사건 자체도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복잡하고, 정교하게 진행되고 있어 구성과 플롯에 거의 빈틈이 없다. 스릴러 장르를 좋아한다면 시리즈를 처음 접하더라도 만족할 수밖에 없는 완성도를 가지고 있는데다, '아무 것도 잊지 못하는, 완벽한 기억력'을 가진 캐릭터의 매력도 충분히 보여지고 있으니 시리즈를 시작하기엔 딱 좋은 작품이 아닐까 싶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매끈하게 잘 빠진 스릴러를 만나 보고 싶다면, 대중성과 작품의 완성도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범죄 소설이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적극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