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진실이라는 거짓을 맹세해
헬레네 플루드 지음, 권도희 옮김 / 푸른숲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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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가 범인일까? 만일 그렇다면 그는 재능이 아주 뛰어난 배우다. 나는 양팔로 내 몸을 감싼 채 생각한다. 당신은 이웃을 위해주는 역할을 연기한다. 그것이 당신이 하는 일이다. 사랑이 가득한 부부, 행복한 배우자. 인내심 많은 부모. 그들이 커튼 뒤에서 몰래 훔쳐보는 것을 막기 위해 당신은 무슨 일이든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완전한 타인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친구는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아주 친밀하다. 우리 모두에게 최선은 서로의 겉모습이 완전하고 진실하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p.184


일요일 늦은 저녁, 외출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집 주변으로 경찰차가 세 대나 서 있는 게 보인다. 주변에 구급차와 정복을 입은 경찰들도 모여 있었다. 무슨 일이 생겼냐는 물음에 한 경찰이 대답한다. "아파트에서 시신이 발견됐습니다."라고. 시신은 맨 위층, 오른쪽 집에서 발견되었다고 했고, 그곳은 요르겐 부부의 집이었다. 리케는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인 다른 이웃들과는 또 다른 이유로 충격에 휩싸인다. 사실 리케는 요르겐과 불륜 관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죽기 전 요르겐은 리케에게 주말 내내 혼자 있을 거라고 문자를 보냈었고, 그를 만나기 위해 집에 들어가보기까지 했었기 때문이다. 이상한 예감에 닫힌 서재 문앞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와버렸지만, 아마도 그날 요르겐이 어떤 상태였었는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그의 죽음이 너무도 끔찍하고 슬펐지만, 문제는 그의 죽음으로 인해 리케는 경찰에게, 그리고 남편에게 요르겐과의 관계를 밝힐 수밖에 없게 되었다. 


리케와 오스먼드는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고, 평생 서로밖에 없었다. 서른아홉이 된 지금 두 사람은 열세 살이 된 딸과 네 살 아들을 두고 있다. 남편 오스먼드는 여전히 자상하고 아내에게 헌신적이다. 얼마 전 혼자가 되신 뒤로 부쩍 아들을 찾는 시어머니에게도 한없이 다정다감한 아들이라는 점만 빼면, 리케는 남편에게 큰 불만이 없다. 최근 동네에 누군가 고양이들을 죽이고 다니는 사건이 있어 시끄럽긴 했고, 사춘기에 들어선 딸이 이유 모를 반항을 시작한 것 외에는 크게 신경 쓸 일이 없는 나날이었다. 그런데 아파트 위층 이웃이 살해된 채 발견되었고, 하필 그는 자신의 내연남이었고,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았던 비밀을 전부 털어놓게 된 것이다. 게다가 경찰은 외부 침입이 아니라 이곳에 사는 주민들 중에 범인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웃들 모두가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의심받게 된 상황에서, 리케는 자신을, 가족들을 지켜낼 수 있을까? 이웃 중 대체 누가 요르겐을 죽였을까? 왜 그를 죽인 것일까? 리케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것인가.   





“사람들은 누구는 벌레 한 마리 못 죽인다고 말을 하죠. 그럼 나는 말합니다. 기회와 강력한 동기만 있으면 우리는 누구나 살인자가 될 수 있다고요. 만일 누군가 자기 아이의 생명을 위협한다면 그들을 죽이지 않을까요? 살인은 우리들 중 몇명과 연관돼 있다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도시의 특정 지역에 사는 사람들, 이를테면 마약과 절도를 이용하는 사람들 그리고 마약과 절도를 이용하는 사람들과 한패인 사람들이 있죠. 그런 부류는 경찰이 지켜보는 사람들, 적어도 지켜봐야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이외의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그들을 가까이 하지 않는 거죠. 그렇지만 나는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p.433


<테라피스트>라는 놀라운 작품을 선보였던 작가 헬레네 플루드의 두 번째 작품이다. 작가인 헬레네 플루드는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심리학자이기도 하다. 전작인 <테라피스트>는 2019년 런던 도서전의 최고 화제작으로 요 네스뵈와 스티그 라르손의 편집자가 '수많은 원고 더미에서 만난 놀라운 선물 상자'라고 극찬하며 자품을 출간했었다. '심리학자가 쓴 심리스릴러'라는 점 때문에 여타의 심리스릴러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매력을 발산하는 작품이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서스펜스로 가득하고,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며, 대단히 우아하고 뛰어난 문장으로 쓰인 작품이었다. 이번에 나온 <나에게 진실이라는 거짓을 맹세해>는 그 후 2년 만에 출간된, 그의 두 번째 작품이다. 국내에는 <테라피스트> 이후 4년 만에 신작이 나온 거라 굉장히 설레이는 마음으로 읽어 보았다. 


이번 작품 역시 탄탄한 구성과 섬세한 심리 묘사로 차곡차곡 긴장감을 쌓아 나가며 매혹적인 서사를 완성시켰다. 헬레네 플루드는 평범한 일상에 욕망이 생기기 시작한 순간부터, 불안과 강박으로 인해 점차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과정, 진실과 거짓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혼란과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하게 되면서 휩싸이게 되는 광기에 이르기까지 인물들의 심리를 세밀하고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인물들이 겪는 죄책감과 수치심에 대해 독자들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내는 솜씨는 두 번째 작품에서 더욱 무르익어 빛이 난다. 누구나 가끔 자기 곁에 있는 사람의 진짜 모습을 의심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게 마련이다.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은, 때로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으니까. 이는 내가 상대에게서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기대하는 바가 상대를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마도 거의 대부분의 스릴러 장르에 적용되는 법칙이 있다면 바로 이것 아닐까. 어쩌면 그는 당신이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 작품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진실이 거짓이 되는 순간, 진실에 관한 모순에 대해 그려내고 있다. 놀랍도록 섬세하게, 고요하면서도 불안하게, 서늘한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하면서. 수준 높은 심리 스릴러 장르의 정수를 만나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놓치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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