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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관찰 - 곤충학자이길 거부했던 자연주의자 장 앙리 파브르의 말과 삶
조르주 빅토르 르그로 지음, 김숲 옮김, 장 앙리 파브르 서문 / 휴머니스트 / 2024년 9월
평점 :
이곳의 그 어떤 것도 사소하지 않았다. 세상이 비웃거나 조롱하는 것도
현자에게는 사색과 성찰의 양식이 될 수 있다. "자연의 커다란 문제에서 사소한 것은 없다. 실험실의 수족관은 비가 웅덩이를 가득 채우고 생명체가 그곳을 경이로움으로 가득 채웠을 때 노새의 발굽이 진흙에
남긴 자국보다도 가치가 없다." 그리고 완전히 짓밟힌 길에서 우연히 발견한 작은 사실 하나가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광활한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다. 자연의 모든 것은 난해한 암호의 표본 같은 상징이며, 모든 문자는 어떤 의미를 숨기고 있음을 기억하자... 파브르는 이
놀라운 박물관의 문을 여는 황금열쇠를 우리 손에 쥐어준다. p.150
대부분 어린 시절에 파브르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것이다. 나
역시 어린이 버전으로 출간된 <파브르 곤충기>를
통해서 알게 되었고 말이다. 그런데 최근에 출간되었던 <파브르
식물기>를 통해서 파브르가 곤충에 관련된 책을 출간하기 전에 식물에 관한 책을 먼저 썼으며, 식물학 박사 학위를 받고 식물에 대해서도 깊이 연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파브르 곤충기> 역시 전체 10권으로 저술된 방대한 분량의 책이었다고 하니, 내가 알고 있던
파브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구나 싶었다. 그래서 이번에 파브르의 말과 삶을 담은 평전이자 회고록이
나온다고 해서 읽어 보게 되었다. 저자인 조르주 빅토르 르그로는 1년에
두 번 이상 아르마스를 방문해 파브르의 말년을 함께 보냈으며, 이 책은 파브르가 모든 문장을 검토한
생애 마지막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의 표지 이미지이기도 한 검은색 펠트 모자는 파브르가 항상 착용하던 거였다고 한다. 그는 일관된 복장을 입고 다녔는데, 곤충을 연구할 때 특유의 옷차림으로
종종 길가에 엎드려 있느라 주위 사람들로부터 광인 취급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강한 턱과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깔끔한 얼굴을 면도하고 검은색 펠트 모자를 쓴 정장 차림은 외출할 때 뿐 아니라 집 안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한다. 이 책에는 그의 삶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사진과 편지, 연보가
수록되어 있다. 그의 집이자 연구실인 아르마스에서 흉상 제작에 참여 중인 사진에서는 파브르와 이 책의
저자인 르그로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고, 파브르가 풍요로운 자연에 결정적으로 푹 빠질 수 있게
한 운명의 장소였던 코르시카섬의 모습도 만날 수 있었다. 오늘날까지 보존된 파브르의 작업실 사진도 수록되어
있다. 그의 집 아르마스는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방
중앙의 탁자 위에는 다양한 도구가 놓여 있고, 뒤로 보이는 대형 진열장에는 1,300여 점의 특별한 물건과 표본이 전시되어 있다. 그가 나방을
부화시킬 때 사용했던 종 모양의 철망 덮개를 비롯해, 그가 그린 화경버섯의 놀랍도록 정교한 수채화 그림도
만날 수 있었다.
파브르의 초상화나 그를 묘사한 글에서 파브르는 단순하고 정확하며 타고난 다정함으로 가득했다. 파브르는 자신이 관찰한 작은 생명체를 살아 움직이는 그림으로 재현할 수 있을 만큼 적절하게 말을 다뤘다. 작은 생명체들의 사랑과 싸움, 교활한 책략, 먹이를 쫓는 행동 등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감정을, 모든 곳에서
창조의 고통을 동반하는 그 어마어마한 드라마를 해석할 방법을 찾을 때 파브르의 표현법은 더 높은 수준에 닿아 색채를 띠고 상상력은 풍부해졌다. 특히 파브르는 과학이 시에 제공할 수 있는 심오하고 무궁무진한 자원이 무엇인지, 아직 탐험이 이루어지지 않은 심오한 지평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p.275
파브르에 대한 가장 심도 있고 생생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이 책은 파브르 저작의 핵심적인 부분을 충실하게
인용한 덕에 그의 아름다운 문장 또한 엿볼 수 있었다. 1851년 8월 11일, 파브르는 만년설이 잔뜩 쌓인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서 서리
내린 에델바이스 이파리 몇 장을 떼어다 동생에게 편지와 함께 보낸다. 파브르의 동생은 그가 사랑했던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했다. 그 편지에는 "이 이파리를 책 속에 끼워두면 책장을 넘기며
불멸의 존재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에델바이스가 자생하는 장소의 아름다운 장관을 꿈꿀 수 있는 구실을 네게 선사할 거야."라는 섬세하고 낭만적인 문장이 쓰여 있었다. 너무도 근사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파브르를 예술가, 혹은 시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파브르는 곤충, 동물에 대해 묘사할 때 매우 생생하고도 아름다운
표현들을 사용했다고 한다. 작고 연약한 곤충의 알을 설명하기 위해 반짝이는 작은 진주, 호박이나 니켈로 만든 멋진 상자, "요정의 찬장에서 훔친
것만 같은" 반투명의 설화석고로 만들어진 자그마한 화분 등 온갖 표현을 찾아내 사용했다고 하니
말이다. 저자는 '파브르의 세심한 기록은 마음의 눈을 얼마나
생생하게 감동시키는지, 기억 속에 얼마나 확고하게 자리 잡게 하는지!'라고
표현했는데, 이 책에 수록된 몇몇 사례들만 보더라도 파브르의 문장과 묘사는 정말 시적이고, 근사했다.
파브르는 늘 자신은 곤충학자가 아니라고 적극적으로 부인했다고 한다. 그는
스스로를 박물학자, 혹은 생물학자라고 지칭했다. 곤충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를 전체적으로 연구했고, 관찰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파브르의 책에는 현대물리학의 모든 발상이 담겨 있었다. 호랑거미의
거미줄을 놀라운 방식으로 설명하며 최고의 수학적 지식을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작은 생명체들의
사랑과 싸움, 교활한 책략, 먹이를 쫓는 행동 등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감정을, 모든 곳에서 창조의 고통을 동반하는 그 어마어마한 드라마를 해석할 방법을 찾을
때 파브르의 표현법은 선명한 색채를 띠고 상상력은 더 풍부해졌다. 모든 면에서 검소했고, 모든 말에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집에서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던 파브르이지만, 그의 천재성은 가족 모두에게 영감을 불어넣었고, 주변의 거의 모든
사람이 그만큼이나 흥미를 갖게 만들었다. 이 책은 섬세하고도 사려 깊게 자연을 관찰해온 파브르의 삶을
정확하고도 섬세하게 고스란히 펼쳐 보이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누구나 생명의 경이를 느끼게 되고, 동물과 식물을 비롯해 세상의 모든 생물들에 대해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파브르의 정신을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놓치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