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학자의 세계 - 인체의 지식을 향한 위대한 5000년 여정
콜린 솔터 지음, 조은영 옮김 / 해나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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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에 대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열정은 실로 대단했다. 하지만 그토록 많은 분야에서 초인의 능력을 보여준 사람이 인생의 끝자락에 다다라서 해부학에 관심이 생겼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필멸을 감지했거나 아니면 그저 시대의 분위기에 휩쓸렸던 건지도 모른다. 그가 자신의 연구와 관찰의 결과를 책으로 쓰지 않았다는 것은 해부학에 엄청난 손실로, 사람들은 수백 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해부학자의 서재에 다빈치의 책이 있다면 그건 모두 최근에 추가된 것이다. 그의 소묘는 1900년이 되어서야 마침내 인쇄되었다.                   p.132


해부학은 수천 년 전 기록이 남아 있는 아주 오래된 과학이다. 해부학의 역사 초기에 학자들은 머리와 심장의 상대적 기능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영혼은 어디에 머무는가? 이성의 자리는 어디인가? 해부학적 서열을 따진다면 심장이 머리를 지배하는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그리고 해부학은 바깥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과도 무관하지 않다. 인체를 향한 호기심의 첫 번째 원천은 바로 문명 간의 전쟁이었다. 서유럽에서 야만의 시대가 도래할 무렵, 동방에서는 해부학에 막대한 기여를 한 이슬람 황금시대가 시작되었다. 20세기에는 제2차 세계대전의 공포와 함께 역사상 최고의 해부학 삽화집이라고 일컬어진 출판물들이 제작되기도 했다. 




초기의 해부학자들은 동물과 인간을 직접 해부해 피부 아래 세상을 탐구하고 그 결과를 책으로 기록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형성된 근거 없는 믿음이 참으로 오랫동안 지속되기도 했다. 해부학 이론에 대한 종교의 입김도 있었는데, 과학이 교회와 국가에서 서서히 분리되면서 16세기 초에 근대 해부학이 탄생했다. 인체에 관심을 보인 것은 외과의사만이 아니라 조각가와 화가도 인간의 형태를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해 해부 구조를 배워야 했다. 해부용 시신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해부학 역사 내내 많은 사건과 사고가 벌어지기도 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도 연구 목적으로 신선한 시신을 확보하기 위해 지역 병원과 뒷거래를 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로는 미술학교에서도 해부학을 가르쳤다고 하는데, 그만큼 예술과 해부학은 서로 공생 관계였다고 한다. 17세기의 현미경부터 19세기 초의 내시경까지 인체의 내부 구조를 들여다보는 기술의 발전은 해부학의 시각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20세기부터 해부학의 수준이 크게 도약해 새로운 미시적 단계에 들어섰고, 21세기에 MRI 장비로 촬영된 평면 해부 이미지는 온라인에서 3차원 시각으로 구현할 수 있게 된다. 





해부학법은 영국의 악명 높은 계급 체계를 부각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부유하고 권력 있고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은 과학의 발전을 내세우며 해부를 지지했다. 자신의 몸이 난도질당할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작업장에서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시신은 가족이 장례조차 치러줄 수 없는 빈곤한 사람의 것이었다. 해부학법의 예기치 않은 결과는 망자의 주검에 대한 굴욕스럽고 경멸적인 공개 해부를 가난한 사람들의 몫으로 만든 데 있었다. 해부는 더 이상 범죄에 대한 형벌이 아닌 가난한 죄에 대한 형벌이 되었다.              p.326


이 작품을 읽다 보면 한 권의 책은 타임캡슐과도 같다는 말에 저절로 수긍하게 된다. 그 책이 쓰인 시대의 지식과 사고방식을 보존하는 장치이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5000년 동안 해부학자의 서재를 채워온 150여 권의 책을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이야말로 수천 년 전의 기록들을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는 해부학의 타임캡슐일 것이다. 유럽을 비롯해 중동, 중국, 일본에서 출판된, 역사상 중요한 해부학 책들을 모두 만나볼 수 있는 <해부학자의 세계>에는 희귀 도판 240여 컷이 풀컬러로 수록되어 있어 더욱 의미가 있다. 놀라울 만큼 세밀하고 적나라하며 아름다운 해부 삽화들은 해당 분야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까지도 매혹시키기에 충분하다. 




19세기 말 인체 해부학에 대한 거시적 이해가 어느 정도 완성이 된다.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부위에 이름이 불여졌고, 각각의 기능과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20세기 초, 18세기 현미경 선구자들에 의해 시작된 조용한 혁명이 의학 연구의 새로운 원동력이 된다. 평범한 사람이 눈으로 확인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인체를 구성하는 세포와 아세포 수준의 요소에 점차 초점을 맞추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지속적인 기술 발전의 결과, 21세기에는 모든 사람이 이전 세대보다 훨씬 풍부한 과학 지식을 갖추게 되었고,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 책은 고대 이집트부터 르네상스 시대와 근대를 지나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예술적,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해부학 기록물들이 총정리되어 있어 의학과 미술,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몸의 내부 작용은 어떻게 밝혀졌을까? 각 장기의 이름은 어떻게 붙여졌을까? 인체의 지도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해부학이 처음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언제이며, 해부용 시신은 어떻게 구할 수 있었을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예술과 해부학이 서로 공생 관계였다는 놀라운 사실부터 해부학의 역사가 인류가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극복한 역사이기도 하다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5000년의 여정을 드라마틱하게 경험해볼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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