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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플 세븐 ㅣ 킬러 시리즈 3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9월
평점 :
"예전엔 어떤 절의 주지스님이 가르쳐줬어. 세상에는 운과 불운이 있는데."
"불운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행운을 붙잡기는 힘들어. 다만 잃기는 쉽지. 은혜를 모르는 인간이 되면 돼. 남에게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는 인간한테서는 운이 달아난대."
"명심할게."
나나오는 뛰어가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느긋해 보이도록 유의하며 방을 나섰다. 나서자마자 걸음이 빨라졌다. p.123
나나오는 중개업자인 마리아의 소개로 호텔에 머물고 있는 투숙객에게 그림을 전달하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을 하려는 중이다. 일명 '무당벌레'로 불리는 나나오는 참극이 벌어졌던 열차 안에서 맨손으로 살아남은 탓에 킬러 업계에서는 매우 유명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운이 없어서 매번 간단한 일을 하는데도 어째선지 말썽에 휘말리곤 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그림을 서둘러 건네주고 가려는데, 그림 속 인물과 다른 사람이 방에 있었고, 어쩌다 보니 그가 제 발로 미끄러져 대리석 탁자에 머리를 부딪치곤 죽어 버리고 만다. 더 이상 이 수상한 일에 엮이지 않도록 서둘러 호텔을 빠져나가려고 하지만, 누군가로부터 쫓기는 여성이 도와달라고 요청하질 않나, 오래 전에 악연이 있었던 업자와 마주치질 않나 계속해서 벌어지는 사건에 휘말리고 만다. 과연 나나오는 오늘 안에 무사히 호텔을 빠져 나갈 수 있을까.
이사카 고타로의 '킬러 시리즈'는 킬러가 등장하는 여타의 추리, 스릴러 장르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르다. 이사카 고타로 특유의 위트와 유머에서 비롯되는 재미와 인간적이고 소심한 킬러가 만들어 내는 좌충우돌 소동이 긴장감 넘치는 드라마를 만들어 낸다. '사람이 죽는 일과는 되도록 엮이고 싶지 않다'는 나나오는 '그러면 끝'인 일을 하는데도 어째선지 늘 말썽에 휘말리곤 한다. 분명 간단한 일이라고 해서 시작한 건데, 이상하게 시체가 등장하고, 목숨의 위협을 받게 되고, 쫓고 쫓기는 난투극이 벌어지곤 하니 말이다. '넌 불운해도 너무 불운해'라던가 '잘 들어, 넌 운이 없어'라는 말을 남에게 듣든, 스스로에게 경고하든 그는 불안과 너무도 가까운 남자다. 어린 시절부터 자잘한 불행이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았고, 커다란 불운도 수없이 겪었으며, 일을 하면 전혀 상관없는 시체가 우르르 나오고 그걸 처리하느라 생고생을 한다. 이번 일도 원래는 선물을 배달하는 일을 하러 왔을 뿐, 호텔방을 찾아가서 전달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일이 생기고, 호텔에서 나가지 못하고 있었으니, 그의 불운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깜짝 놀란 소다가 "부러워하지 않는다고요?" 하고 목소리를 높이자 콜라는 오히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매화나무가 옆에 있는 사과나무를 신경 써서 어쩌자는 거야?" 하고 대꾸했다고 한다. "매화나무는 매화꽃을 피우면 돼. 사과나무는 사과를 맺으면 그만이고. 장미꽃과 비교한들 아무 의미도 없어." 라고.
나나오는 이야기가 엇나갔다고 지적하고 싶은 한편으로 자신이 소다가 들려준 콜라의 말을 곱씹고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p.218
<그래스호퍼>, <마리아비틀>, <악스> 이은 킬러 시리즈 신작이다. <마리아비틀>이 영화 '불릿 트레인'으로 만들어지고 나서 후속작에 대해 오래 고민하던 이사카 고타로는 ‘수직 공간에서 이뤄지는 탈출 살인’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 보기로 한다. 그렇게 탄생한 이번 작품에서 추격은 20층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무당벌레는 과연 1층까지 무사히 다다를 수 있을지에 대한 내용이 중심 서사인데,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냉혹한 살인청부업자들과 아내의 복수를 꿈꾸는 어수룩한 전직 수학 교사 스즈키의 쫓고 쫓기는 하드보일드 느와르를 보여주었던 1편, 생사를 헤매는 아들을 위해 놓았던 총을 다시 잡은 남자와 사사건건 충돌하는 기묘한 킬러 콤비 등 여러 인물이 절묘하게 얽히는 액션 활극을 보여주었던 2편, 청부살인업계에서 은퇴해 떳떳한 가장이 되고자 하는 베테랑 킬러의 꿈과 현실 사이의 딜레마를 그렸던 3편에 이어 이번에 나온 작품에서는 불운으로 가득한 청부업자가 우연히 호텔에서 벌어지는 소동에 휘말려 그곳에서 탈출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여러 인물들이 제각각 다른 층의 호텔 방에서 시작하지만, 결국 이리저리 얽히고설킨 소동이 벌어지면서 차곡차곡 쌓이는 서사가 매력만점인 작품이었다. 킬러 시리즈를 모두 만나왔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구성이 탄탄하고 스릴 넘치는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스피디한 이야기와 위트 있는 대사, 치밀한 구성과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그야말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 호텔, 체크인하면 죽는 거 아니야"라는 소리가 나올 만큼 곳곳에 시체가 등장하는 이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될지, 이사카 고타로만이 그려낼 수 있는 독특한 탈출 스릴러를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