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도 동정탑 - 2024년 제170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구단 리에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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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도 않은 것을 멋대로 설명하기 시작하는 맨스플레인 기질이 AI-built의 싫은 점이다. 똑똑하고 공손한 양식을 잘 꾸미는 건 실제로는 치명적인 문맹이라는 결점을 감추기 위함이다. 아무리 학습 능력이 뛰어나도 AI는 자신의 약점을 직시할 힘이 없다. 언어를 무상으로 훔치는 것에 익숙해져 그 무지를 의심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인간이 ‘차별’이라는 단어를 구사하기까지 어디에 사는 누가 어떤 종류의 고통을 겪어왔는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호기심을 가질 수 없다. '알고 싶다'라는 욕망을 품지 않는다.                p.24~25


‘심퍼시 타워 도쿄’, 일명 ‘도쿄도 동정탑’으로 불리는 건물이 세워질 예정이다. 소외와 차별없는 이상적인 사회를 위해 범죄자들에게도 안락한 생활을 제공하고자, 도심 한가운데에 최첨단 교도소를 짓기로 한 것이다. 이 책은 범죄자, 수감자, 비행청소년 등을 가리켜 '동정받아야 할 사람들'이라는 뜻의 ‘호모 미세라빌리스’, 죄를 짓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서 살아온 비범죄자들을 '축복받은 사람들'이라는 뜻의 ‘호모 펠릭스’로 정의한다. 한편 타워 건설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연일 항의 시위를 하는 중이다. 


범죄자가 되는 이유를 개인의 인격과 의지박약 등에서 찾는 건 말과 현실이 크게 괴리되어 있다는 쪽도 이해가 되고, 범죄자는 범죄자일뿐, 동정은 피해자에게 해야 한다, 범죄자에게 세금을 쓰지 마라는 쪽도 공감이 된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을 만큼 불행한 성장 과정을 겪었다고 하더라도 모두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므로, 범죄자들을 동정해야한다는 의견에 완전히 동의하기는 어려웠지만 말이다. 이야기는 타워의 설계를 맡은 건축가와 그녀의 어린 연인, 범죄자 동정론을 주도하는 사회학자, 새 교도소를 취재하러 온 미국인 기자 각각의 시선을 통해 다각도로 진행된다. 분량에 비해 가독성이 높은 작품은 아니었지만, 과감한 상상력으로 그려진 근미래 도시의 풍경을 통해 우리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름 얘기잖아. 이름은 물질이 아니니까 건물의 구조랑은 상관없지 않아?"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그녀는 신기하다는 듯 나를 쳐다본다. "이름은 물질이 아니지만, 이름은 언어이고 현실은 언제나 언어로부터 시작돼. 정말이야. 이 육상 세계를 움직이는 건 수학이나 물리를 잘하는 인간이 아니라 말을 잘하는 인간이라고. 그래서 나도 꽤 쓰라린 경험을 해왔고. 너는 안 그래? 이건 말이지, 보기보다 훨씬 중대한 문제야..."                 p.83~84


이 작품은 2024년 제170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인 구단 리에는 ‘작품 일부에 생성형 AI로 만든 문장을 사용’했다고 밝혔는데, 작중 인물들의 질문에 AI가 답변하는 부분이 해당된다. AI를 활용해 집필한 소설이 문학상을 수상한 것도 이례적인데, 그만큼 독특한 작품이었다. 


찬성파와 반대파의 극심한 대립이 이어지는 가운데, 관계자들에게는 살해 협박까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상 71층짜리 거대한 원기둥 형태의 건물이 신주쿠 도심 한복판에 완공된다. 그리고 타워를 설계한 마키나 사라는 돌연 잠적해버린다. '심퍼시 타워 도쿄'는 도쿄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었는데, 연민해야 할 현대의 장 발장들을 피상적인 언어만이 아니라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형태로 동정하고 지원하기 위해 지어졌다고 보도된다. 호화로운 내부 시설에서 마약중독자, 연쇄 살인범, 강간범 등이 행복하고, 편안하게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이상해진다. 게다가 탑 안에는 정해진 유니폼이나 죄수복이 없으며, 각자 지급되는 지원금을 사용해 취향에 맞는 옷을 자유롭게 사 입을 수 있다고 하니... 교도소라기보다 호텔같은 느낌이다. 탑 밖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의 세금으로 지불되는 비용을 범죄자들의 행복을 위해 사용해도 되는 걸까 의문도 든다. 인간의 행복에 대해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누리는 세상에 대한 기준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어준 작품이었다. 독자들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지면서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사유하게 해주는 이 작품을 만나보자. 새로운 소설의 가능성을 만나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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