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옷의 어둠 모토로이 하야타 시리즈
미쓰다 신조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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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찾았다!

오늘 밤은 정말 무시무시하게 운이 좋구나. 아케요는 그렇게 기뻐하는 한편 곧 그 반동이 찾아오지 않을까, 이 행운 대신 어떤 불행에 직면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러면 어쩔 수 없지……

핵심은 균형이다. 그걸로 인생의 장부를 맞출 수 있다면 잠자코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정말 반동이 있다면 갑자기 찾아올 게 분명하다. 피하려 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닐 것이다.                 p.135


미쓰다 신조가 선보이는 방랑하는 청년 ‘모토로이 하야타’ 시리즈 의 세 번째 작품이다. 이 시리즈는 태평양전쟁 직후라는 역사적 배경 위에 미쓰다 신조의 장기인 호러미스터리적 요소와 추리를 섞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첫 번째 작품인 <검은 얼굴의 여우>에서는 마물인지 귀신인지 모를 ‘검은 얼굴의 여우’가 신출귀몰하는 가운데 탄광이라는 미지의 공간에 대한 두려움이 만들어낸 불길한 존재와 실제 현실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그렸었다면, 두 번째 작품 <하얀 마물의 탑>에서는 바닷가 마을의 등대지기가 되어 민간신앙 속 하얀 마물이라는 존재를 만나게 되면서 인간의 이성을 뛰어넘는 두려움과 무시무시한 공포, 그리고 20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수수께끼를 그려냈다. 


이번 세 번째 작품 <붉은 옷의 어둠>에서는 도쿄의 암시장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모토로이 하야타는 만주 건국대학의 동창 구마가이 신이치에게서 불가해한 현상을 규명해달라는 제의를 받고 도쿄로 온다. ‘붉은 미로’라 불리는 비좁고 복잡한 암시장에서 여성들을 뒤쫓는 ‘붉은 옷’이라는 정체불명의 괴인이 존재한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었던 것이다. 신이치의 삼촌은 암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상인 조합 보스였고, 그는 하야타를 명탐정 소개받는다. 얼마 뒤 붉은 미로의 골목길에서 끔찍한 밀실 살인사건이 벌어지는데, 과연 하야타는 이번에도 붉은 옷의 괴이와 밀실을 풀어내고 범인을 찾아낼 수 있을까. 





……다른 차원의 세계.

북적이는 암시장 구석에 나타난, 정적으로 가득한 어두운 세계.

이승이라기보다 저세상에 가깝다고 여겨질 정도의, 느낌이 드는 좁은 공간.

인간이 아닌 존재가 수없이 방황하고 있는, 결코 인간은 들어가서는 안 되는 장소.

이곳은 원래부터 그런 곳이 아니었을까…….          p.351


모토로이 하야타는 패전 후 혼란기의 일본, 청운의 꿈을 품고 만주 건국대학에 들어갔지만 조국의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학교를 나온다. 이후 신문사나 출판사에서 일거리를 찾아 다니며 입에 풀칠을 하다 그마저도 그만두고 방랑여행을 떠난 결과, 노동자의 밑바닥이라고 불리는 탄광부가 되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국가 부흥에 기여하고 싶다는 결의를 다지게 된다. 탄광에서 일하며 마물인지 귀신인지 모를 정체를 만나게 되는 것이 이 시리즈의 시작이었다. 도쿄의 암시장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번 작품은 전작에서 잠시 언급했던 이야기인데, 시간상으로 보면 두 번째 작품인 등대로 가기 전에 들렀던 곳이라고 보면 된다. 시리즈로는 세 번째 작품이니 스핀오프 같은 작품이라도 봐도 좋을 것 같다. 비좁고 복잡해서 길을 잃기 쉬운 암시장에서 여성들의 뒤를 쫓는 정체불명의 괴인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나서는 이 작품은 일본 근현대사를 압축한 듯한 풍경 묘사도 압권이다. 극심한 식량난과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서민들의 생활상이 극에 밀도를 높여주어 더욱 몰입감있는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미쓰다 신조가 그려내는 호러 미스터리는 오싹하고 기분 나쁜 기운 자체는 굉장히 비현실적으로 그려져 있는데, 사실 그 악의 기원을 따지고 보면 극도로 현실적인 배경에서 시작한 거라 그만큼 등줄기가 서늘해지고 공포감에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동일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시리즈이지만, 전작을 읽지 않았더라도 내용이 연결되는 것은 아니므로 각각 별개의 이야기로 읽어도 좋다. 미쓰다 신조는 ‘도조 겐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기 위해 ‘모토로이 하야타’를 탄생시켰다고 하니, 도조 겐야 시리즈 만큼이나 길게 이어질 것 같은 이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이 될 새로운 무대를 벌써 낙점했다고 하니 어서 빨리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미쓰다 신조의 작품들은 아무도 없는 조용한 장소에서, 시계 초침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밤에 읽으면 몰입도가 배가 된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밤에 시작하기 딱 좋은, 혹은 오늘처럼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씨에 읽기 딱 좋은 작품이다. 싶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참혹한 역사적 배경, 붉게 물든 미로같은 거리의 밀실 수수께끼까지... 오싹하고 서늘한 호러 미스터리를 좋아한다면 적극 추천해주고 싶은 작품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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