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잔혹사 - 약탈, 살인, 고문으로 얼룩진 과학과 의학의 역사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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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이야기 때문에 해부학에 역겨움을 느낀다면, 여러분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해부학자들도 서로 다른 관행의 윤리에 대해 계속 논쟁을 벌이고 있고, 심지어 해부학이 정말로 좋은 일을 하는 사례들(예컨대 법의학 분석을 통해 살인 사건의 범인을 밝혀내는 경우처럼)에서도 연구의 밑바탕에는 늘 섬뜩한 측면이 자리잡고 있다. 사실, 법으ㅢ해부학 중 상당 부분은 1849년에 하버드의학대학원에서 일어난 엽기적인 사건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많은 점에서 이 사건은 이 분야의 과거와 미래 사이에 벌어진 대결이었다.            p.125


역사상 최초의 비윤리적 과학 실험을 설계한 사람은 클레오파트라였다고 한다. 태어나기 전 아기의 성별을 구별하기 위해 사형 선고를 받는 여종이 나올 때마다 끔찍한 실험을 했다고 하는데, 집착에 사로잡혀 무언가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사람의 광기를 보여주는 클레오파트라의 사례는 시작에 불과하다. 이 책은 사람들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선을 넘어 범죄와 비행을 저지르는 원인에 대해서, 위대한 과학적 성취의 어두운 이면을 조명하고 있다. 


미국 최초의 해부 폭동은 터무니없는 농담에서 시작되었다. 1788년 어느 날 오후, 뉴욕종합병원에서 한 의과대학생이 한 여자의 시신을 해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거리에서 놀던 꼬마들이 창밖에 서서 그 모습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해부에 집중할 수 없어 신경이 쓰였던 학생은 아이들에게 겁을 준다. "이건 네 엄마 팔이야! 내가 방금 파낸 거야!"라고 소리친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중에 실제로 얼마 전에 어머니를 잃은 소년이 있었고, 집으로 달려가 아버지에게 울어내며 그 이야기를 전한다. 그는 삽을 들고 아내의 무덤으로 갔고, 예상대로 무덤은 텅 비어 있었다. 사실 당시만 해도 가난한 사람의 무덤에서 시신 도굴은 자주 일어나는 일이었다. 소년의 아버지는 격노해 이웃들과 함께 뉴욕종합병원으로 쳐들어가자고 제안했고, 수백 명의 군중이 폭도가 되어 병원으로 향한다. 그걸 계기로 폭도 수는 수천 명으로 늘어났고, 또 다른 병원 건물로 이어지게 된다. 오늘날에도 의과대학교들이 시신을 충분히 확보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고 하는데, 과거에 벌어졌던 시신 발굴과 매매, 살인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고 있자니 더욱 오싹해지는 느낌이다. 





아인슈타인은 “많은 사람은 위대한 과학자를 만드는 것이 지성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위대한 과학자를 만드는 것은 인성이다.”라고 말했다. 오래전에 이 인용문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코웃음쳤다. 과학자가 착하건 말건 누가 신경 쓴단 말인가? 중요한 것은 오로지 발견이 아닌가! 하지만 이 책을 쓰고 나서 나는 그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과학은 세계에 대한 사실들의 집합체이며, 그 집합체에 뭔가를 추가하려면 발견이 필요하다. 하지만 과학은 그것을 뛰어넘어 더 큰 것이기도 하다. 과학은 세계에 대해 추론하는 사고방식이자 과정이자 방법으로, 우리의 희망 사항과 편견을 드러내고 그것을 더 심오하고 신뢰할 만한 진실로 대체하도록 도와준다.                 p.436


과학과 스토리텔링, 두 가지 관심사를 결합해 현재 과학 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 샘 킨은 이 책에서 과학적 성취와 얽혀 있는 잔인하고 섬찟한 범죄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찰스 다윈이 존경한 당대 최고의 박물학자였던 윌리엄 댐피어는 약탈을 일삼은 해적으로 유죄를 선고받았으며, 흰개미집 연구자 헨리 스미스먼은 연구 자금 조달을 위해 노예 거래를 했으며, 해부용 시신이 부족했던 해부학자들은 무덤에서 시신을 훔치거나 도굴꾼과 거래를 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영웅으로 칭송받던 토머스 에디슨은 개와 말에게 전기 실험을 감행했고, 나치 의사들은 끔찍한 실험을 강제 수용소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행했으며, 명성에 눈이 멀어 얼음송곳으로 뇌 수술을 감행한 의사도 있었다. 


지식에 대한 집착과 광기 어린 야망으로 타락한 의사와 과학자들의 사악한 행위들, 그리고 그 위에 세워진 과학의 잔인한 역사는 웬만한 범죄 소설 못지 않게 오싹하고 스릴 넘친다. 한때 세상을 들끓게 했던 과학 범죄 사건들은 실화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잔인하고, 엽기적이고, 끔찍한 부분이 많았다. 대체 과학자들은 왜 악행을 저지른 것일까? 범죄자가 아니라 과학자들이, 과학적 목적으로 비열한 범죄를 저지르거나 책임을 져야 할 행동을 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게다가 이러한 짓을 저지른 이들이 미치광이가 되는 이유가 논리나 이성이나 과학적 안목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과학을 너무 철저히 하려고 하다가 도가 지나쳐 자신의 인간성을 잃어 버린다는 점이 아이러니했다. 이 책에 수록된 자극적인 사건 사고들은 과학과 의학 분야에서의 도덕성과 윤리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만들어 준다. 위대한 과학자를 만드는 것이 지성이 아니라, 인성이라고 한 아인슈타인의 말이 긴 여운을 남겨준다. 과학과 의학의 어두운 역사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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