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나라 정벌 - 은주 혁명과 역경의 비밀
리숴 지음, 홍상훈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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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나라는 중국 역사에서 가장 기이한 시대였을지도 모른다. 그 시기를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눈다면 사람들이 가장 잘 아는 것은 후기의 은허 시대일 것이다. 은허에서는 시기적으로 가장 이르고 정교하고 아름다운 청동기와 대규모 인신공양제사 장소가 발굴되었다. 그런데 사실 초기 상나라의 기이한 흔적은 더 많다. 그들이 200년 전후의 기간에 창조한 성취는 그 후 1000여 년 동안에도 재현되기 어려웠다. 이것은 거의 진, 한 대통일 왕조의 기상에 접근할 정도였다... 초기 청동기, 말하자면 초기 상나라는 가히 '현대화'라는 기적을 이룬 시대였다.          p.169

 

1959년 어느 날, 상나라 백성의 거주지로 알려진 곳에서 기괴한 '무덤' 하나가 발굴된다. 정상적인 상나라 때의 무덤과는 아주 다르게 직사각형이 아니라 우물처럼 둥근 모양이고, 구덩이 안에는 그저 25구의 해골만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그 후 1960년에 고고학 작업자들은 제1차 발굴에서 드러난 바닥 밑으로 50센티미터 깊이의 토층 아래에 모두 29구나 되는 제2층의 유골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어 1977년 제3차 발굴에서 19구를 더 발굴하고, 이 무덤이 총 3층으로 되어 있으며 모두 73구의 유골이 매장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발굴자들인 응당 이것이 무덤이 아니라 인신공양 제사갱이라고 여겼다. 제사의 전체 과정을 시간 순서에 따라 재현하고, 세부 절차에 대한 분석을 통해 당시 제사 현장에서 발생했던 장면을 복원하는 걸로 이 책은 시작된다.

 

저자의 묘사는 무시무시하고 끔찍하다. 발굴된 시체를 통해 머리와 몸뚱이가 온전한 것은 얼마 되지 않고, 모두 시신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시체의 얼굴이 위를 향하지 못하도록 구덩이 안으로 던져 넣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자는 꽤 긴 페이지를 할애하면서 무덤의 평면도와 디테일한 묘사를 통해 독자들을 수천 년 전 그 날로 데려간다.  게다가 끝내는 제사를 바치는 이들과 요리한 이들이 시신을 나누어 먹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대목에 이르면 입을 틀어막게 된다. 역사서에서 상나라 주왕은 잔악하고 포악하며 살육을 즐긴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러한 제사갱의 잔인한 행위가 기록된 적은 없었다. 그러니 이러한 고고학적 발견이 없었다면, 후세의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을 전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 책은 상나라의 잔혹한 종교문화뿐만 아니라 그들의 기원부터 제국에 버금가는 규모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다양한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짚어내고 있다.

 

 

 

다스쿵촌의 발굴 보고서는 상나라 인신공양제사의 피비린내만 보여주는 게 아니다. 인간 희생을 도륙하고 가죽을 벗기는 행위는 당연히 제사하는 이가 신에게 바칠 음식물을 가공하는 과정이지만, 제사를 바치는 이는 인간 희생이 사지가 잘려 나간 뒤에 몸부림치고 절망하며 항쟁하는 모습을 감상하며 즐겼던 듯하다. 제사 지내는 것은 일종의 공공 의식이자 전례였는데, 이런 피비린내 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만족감을 얻는 것은 칼과 도끼를 휘두른 사람뿐만 아니라 다스쿵촌의 귀족에서 평민에 이르는 많은 관객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p.630

 

중국 상고시대 문명의 기원에 관해 이야기하는 이 책은 신석기시대 말기에서 시작해 상주 교체기 즉, 은주혁명까지 1000여년의 시간을 담고 있다. 900페이지에 달하는 묵직한 두께의 이 책은 충격적인 장면으로 포문을 연다. 사람을 죽여서 귀신에게 바치는 제사인 상고시대의 인신공양제사에 대한 잔인하고 피비린내 묘사부터 이야기가 시작이 되기 때문이다. 인신공양제사에 관련해서 후세 사람들은 이러한 풍속에 대한 기억을 진즉 잊었고, 역사서에는 어떤 기록도 보존되어 있지 않기에, 고고학의 발견이 없었다면 우리가 이런 상고시대의 잔혹함에 대해 영원히 알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저자는 '상나라'가 인신공양제사가 종교적 수준에까지 이른 광적인 카니발리즘 국가였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신석기시대부터 부족국가와 초기 국가 단계를 거쳐 하•상•주 단계에 이르기까지 약 1000년에 걸친 중국 초기 문명에 대해 완전히 다시 써내려간다.

 

한국 출판역사상, 중국 고대사에 대하여 이만큼 충격적인 진실을 담고 있는 책은 나온 적이 없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것이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었던 상나라 주왕, 주나라 문왕과 무왕, 강태공, 주공 단, 공자는 조작된 허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육과 인신공양제사, 식인 카니발리즘을 떠받친 거대 제국에 대한 스토리는 웬만한 소설 못지 않게 스펙터클하고 드라마틱하게 읽힌다. 천 년이나 지난 유골들의 사진과 발굴 스케치, 짧은 글에 드러난 묘사만을 근거로 당시의 시대에 대해 상상하는 것은 마치 시체로 가득 덮인 황야를 홀러 걸어 지나는 공포의 여행과도 같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중국 고대사에 대한 충격적인 진실이 궁금하다면, 3000년 동안 공백으로 덮여있던 역사의 비밀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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