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 다듬기
이상교 지음, 밤코 그림 / 문학동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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볶기도 하고, 무쳐 먹기도 하고, 국물을 내는 데도 사용하는 멸치. 우리의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식재료 중 하나다. 짭쪼름한 멸치 볶음, 매콤한 멸치 고추장 볶음, 달콤한 견과류 멸치 볶음, 그리고 시원하고 깊은 국물을 내는 데 사용하는 다시팩과 멸치 김밥, 멸치 튀김, 멸치 무 조림... 많기도 하다.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멸치 요리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한번쯤 멸치를 다듬어 보거나, 멸치를 다듬는 것을 구경해 본 적도 있을 것이다. 대가리 떼고, 똥 빼고, 대가리 떼고, 똥 빼고... 반복되는 손놀림으로 어느새 수북이 쌓인 멸치들은 깔끔하고, 맑은 국물 요리를 위한 훌륭한 재료가 되어 준다.


 

 

이번에 만난 귀여운 그림책은 바로 그 멸치 다듬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이상교 작가의 동시에 밤코 화가가 그림을 그렸다. 멸치를 다듬을 때 부스러기를 받쳐 주는 신문지를 다채롭게 재구성해 재미를 더해준다. '멸치'를 주인공으로 도심 한가운데서 멸치 떼 목격, 마른 하늘에 멸치 떼, 멸치란 무엇인가, 토막상식, 멸치네컷, 메루치의 꿈 등등 오늘의 특종과 기상 예보, 구인 구직 공고 등 아기자기하고 유쾌하게 신문지 속 세상을 멸치의 세계로 색다르게 만들었다. 멸치들은 철새 대이동의 계절에 철새 떼를 따라 이동하기도 하고, 발레리나가 되어 무대 위를 종횡무진 활약하고, 미술관에서 명화의 모티브가 되어 관객들을 만나기도 한다.

 

 

가끔 멸치 조림을 먹다 보면 수북한 멸치들 사이에 정말 손톱만큼 작은 게나 꼴뚜기 등을 만날 때가 있다. 그제야 내가 먹고 있는 것이 바다에 사는 물고기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어쩐지 마른 멸치를 많이 접하다 보니, 멸치가 물고기라는 사실을 자꾸 잊어 버리게 되는데 말이다.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신문지에 누워 차례를 기다리던 멸치들이 조금씩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세상 속으로 향하는 여정이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마른 멸치들만 보다가, 비로소 생생하게 살아 있는 멸치들의 움직임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늘을 날고, 무대 위와 명화 속을 거쳐, 우주 공간을 통과해 휴가철 해변까지 정말 세상 곳곳을 종횡무진하는 멸치들의 여정은 귀엽기도 하고, 웃음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멸치의 존재를 피부로 와닿게 만들어 준다.

 

 

아빠와 아들이 사이좋게 앉아서 대가리 떼고 똥 빼고 반복 작업을 하는 과정도 만화처럼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다. 고양이가 와서 방해를 하기도 하고, 끝난 줄 알았는데 한 번 더 한 가득 담겨서 일거리가 오기도 하고, 기지개도 켜고, 몸도 풀면서 부지런히 반복 작업을 한다. 대가리와 똥을 모은 곳과 몸통을 모은 곳을 구분해야 하는데, 반복 작업을 하다 보면 헷갈리기 일쑤다. 그럴 때 짜증도 나지만, 서둘러 다시 옮겨 놓는다. 그렇게 열심히 다듬은 멸치 한 가득은 과연 어떤 요리로 재탄생하게 될까. 엄마는 멸치들을 가지고 어떤 맛있는 한 상 차림을 만들어 줄까. 기대가 되는 시간들이다.

 

읽고 나면 누군가와 함께 멸치를 다듬고 싶어 지는 이 그림책은 우리가 무심코 먹는 식탁 위 맛있는 한 끼를 위한 과정을 사랑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함께하면 두 배로 즐거운 멸치 다듬기의 세계를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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