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애에 이름을 붙인다면
시요일 엮음 / 미디어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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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잊지 마세요/꽃말을 만든 첫 마음을 생각한다/꽃 속에 말을 넣어 건네는 마음/꽃말은 못 보고 꽃만 보는 마음도 생각한다/나를 잊지 마세요/아예 꽃을 못 보는 마음/마음 안에 꽃이 살지 않아/꽃을 못 보는 그 마음도 생각한다              - 이문재, '꽃말' 중에서, p.65

 

시요일 앱을 처음 만났던 것이 5년도 더 넘었는데, 어느새 다섯 번째 시선집이 나왔다. 하루 한편씩 그날에 어울리는 시를 손안에 배달해준다니,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국내 최초의 시(詩) 큐레이션 앱 ‘시요일’은 시를 자유롭게 감상하고, 원하는 시를 검색할 수 있고 추천도 받고, 공유해서 나누기도 할 수 있는데, 24년 1월 기준으로 누적 회원 수가 54만 명에 달한다. 이번에 나온 책은 시요일 기획위원인 안희연, 최현우 시인이 사랑의 시작을 테마로 엄선한 시 67편을 엮은 것이다. 시의 편수만 많은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매력과 컬러를 가진 시인 67인을 한 권으로 만날 수 있어 아주 버라이어티한 시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사랑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므로, 상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가 사랑에 관해 읽었거나 배운 것은 대부분 실전에선 적용되지 않는다. 그건 우리가 열아홉에 사랑을 경험하든, 서른에 사랑을 하든, 마흔이 넘어서 사랑을 만나든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누구나 자신만의 사랑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여전히 잊지 못할 첫사랑이든, 고백도 못해본 짝사랑이든, 처참하게 배신당한 지독한 사랑이든 간에.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런 이유로 우리는 타인의 연애 경험에 대해 궁금해한다. 사랑의 시작과 끝이 모두 다른, 그 과정은 우주만큼 경우의 수가 많은 각자의 이야기말이다.

 

 

 

면을 불리면 공간이 되고, 그 공간에는 면을 불려 먹는 것을 좋아하던 네가 있었고, 면을 덜 익혀 먹는 것을 좋아하던 내가 있었고, 덜 익히는 것과 불리는 것 사이에는 시간이 좀 필요했고, 그 시간이 끝났을 때, 버릇처럼 문밖을 나가는 네가 있고, 습관처럼 "올 때 메로나"라고 말하는 내가 있고, 냉장고 속에는 서로 다른 공간들이 있고, 들어온 시점이 다른 시간들이 있고, 앞으로 그 공간 속에서 견딜 수 있는 시간들이 있고, 원 플러스 원으로 샀던, 메로나가 있고,             - 권창섭, '완벽한 사랑' 중에서, p.169~170

 

'열렬히 사랑하다 부서져 흰 가루가 될 때까지 당신 속의 나를 사랑했다(p.112)'는 시의 문장처럼 지독한 사랑은 상대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로 향하기도 한다. '땅이 꺼져도 하늘이 무너져도 내게 두고는 끝까지 모두 다 당신 때문(p.115)'이라는 문구처럼 사랑에 빠져 있는 순간에는 오로지 상대밖에 보이지 않는다. 부글거리는 시간들이 지나가고 나면 사랑이 끝이 나기도 하고, 함께 하는 잔잔한 일상으로 다음 단계가 시작되기도 한다. 서로에게 영혼을 보여준 날부터 싸우는 경우도 있고, 앞면과 뒷면처럼 한 몸이 된듯한 일체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고, 갈피를 잡지 못해 허우적거리기도 하고, 권태와 고독으로 점철되기도 한다.

 

사랑에 빠져서 정말 좋았던 건 세상 모든 순간들이 무언가 되고 있는 중이었다는 것이고, 새의 노래를 함께 들을 때면 우리는 마치 한명인 것 같았고, 가장 아름다운 꿈은, 그 애와 함께 있는 꿈이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내 눈동자 속의 당신과 당신 눈동자 속의 내가 있고, 마음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듯한 감정과 한 사람이 아무도 모르게 잠들 수 있도록 이마를 쓰다듬어주는 순간이 있으며, 서로 같은 아침을 바라보며 미래를 사랑이라 믿는 시간들이 펼쳐진다. 누구나 하는 사랑, 흔하고 익숙한 만큼 또 어렵고 복잡한 사랑, 누군가에게는 숨쉬는 것처럼 쉬운 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일생 최대의 난제이기도 한 것이 사랑이다. 우리가 사랑 때문에 겪었던 그 모든 설렘과 열정, 고통과 기쁨, 후회와 오해, 열정과 고독의 순간들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책 속에 수록된 시들을 한 편씩 천천히 읽으며 다양한 사랑의 모습들을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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