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코스 창작론
미우라 시온 지음, 김다미 옮김 / 비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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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는 사소한 계기로 회상 장면이 반복해 끼어들어도, 열다섯 쪽에 걸쳐 주인공이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해도(그러는 동안 작중 시간은 일 초밖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_, 특별히 위화감이 들지 않습니다. 소설에서 시간은 꼭 앞으로만 나아가지 않으며, 소설의 표현은 현실과는 완전히 다른 시간 감각에 지배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에 관한 표현이 조금만 어색해도 독자는 '응? 뭔가 이상한데?' 하고 퍼뜩 정신을 차려버립니다. 소설 세계를 지탱하던 시간의 마법이 풀리는 거죠.            p.78

 

<배를 엮다>, <마사&겐>, <사랑 없는 세계> 등의 작품으로 만났던 미우라 시온이 자신의 창작 비결을 집대성한 작법서이다. 십사 년 동안 단편소설 공모전 심사를 해오면서 '소설 쓰는 법'에 대해 글을 연재하게 되었고, 그 글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책의 구성은 프렌치 코스 요리의 풀코스 메뉴로 되어 있다. 아뮤즈 부쉬부터 수프, 생선 요리 등을 거쳐 디저트와 식후 술까지 스물네 가지 접시에 작품을 완성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담았다. 퇴고, 구성, 시점, 표현, 취재, 글감, 소설 쓰는 자세, 등장인물, 작가 데뷔 이후까지 소설, 시나리오, 웹소설 등 모든 형식의 창작물에 필요한 내용들을 만날 수 있다.

 

'소설 쓰기를 위한 소소한 조언'이라는 제목으로 가볍게 시작한 인터넷 연재였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책으로 출간되며 '매너는 필요 없어: 소설 쓰기 강좌'라는 제목이었는데, 국내 버전은 '풀코스 창작론'이라는 새로운 제목을 달았다. 두 제목 모두 이 책의 구성과 아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소설 쓰기는 자유로운 행위이므로 세세한 작법 같은 건 신경 안 써도 된다'는 작가의 생각에서 출발한 내용들이라 여타의 작법서에서는 볼 수 없는 현실적이고, 속 시원한 이야기 법칙들을 만날 수 있다. 그 동안 수없이 살펴 본 공모전 투고작들을 토대로 하는 충고이기에 창작을 위해 꼭 필요한 내용들이기도 하다. 다른 생각 말고 독자를 위해, 객관성 확보를 위해 퇴고하라, 분량, 즉 매수를 의식하면서 집필에 임해야 비극을 막을 수 있다, 대사나 묘사에 관해서는 스스로 약점을 깨닫고, 해결하기 위해 궁리를 거듭하는 수밖에 없다, 대사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마음속으로 어느 정도 법칙을 정해놓는 것도 중요하다 등 미우라 시온이 들려주는 스물네 가지 핵심 전략만 알아도 누구나 소설을 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종종 창작물을 보고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실에서 이런 말 하는 사람 본 적이 없다" 하는 분들이 있는데, 들을 때마다 참 이상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현실만 운운할 거면 평생 어떤 창작물도 보지 말고 그냥 먹고 싸고 주무세요!" 라고 폭언까지 내뱉고 싶은 심정입니다. 창작물은 때에 따라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을 당당히 펼쳐 보입니다. 이때다 싶은 지점에서 작렬하는 유치함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에 창작물만의 재미가 담보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창작은 필연적으로 현실의 일부입니다.               p.137

 

소설에서 묘사란 세세히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상상력을 부채질하는 재료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읽기는 적극성이 요구되는 행위이고, 독자는 소설의 문장에서 뭔가를 이해해보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로 책을 읽기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지 문장으로 설명하지 말고 독자의 상상력을 믿고 내맡겨보라고 말이다. 충실하게 설명하지 말고 사진이나 영상처럼 머릿속에 떠오르게 하는 것이 좋은 묘사라는 말은 많이 들어 봤지만, 묘사를 이런 방식으로도 설명할 수 있구나 감탄하며 읽었다. 그 와중에 소설 쓰기에 관한 조언이라니 자신에게는 무리라고, 사실 산통 깨는 소리를 하자면 소설 쓰기에 요구되는 것은 딱 하나, 센스라고 하는 대목도 시선을 사로잡았다. 게다가 센스를 전적으로 재능의 영역이라 단정 짓는 건 너무 성급한 생각이라니 말이다. 이런 식으로 매 장마다 일타 강사의 강의를 듣는 것처럼 정말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책이었다. 유쾌하고, 위트있고, 빵빵 터지는 유머와 작가로서의 현실적인 문제들도 가감없이 보여주며 지루할 틈없이 페이지가 넘어가는데, 그 와중에 정말 중요한 부분들은 놓치지 않고 밑줄 좍 그으면서 알려주는 그런 작법 가이드였다.

 

미우라 시온이 문학성을 대표하는 나오키상과 대중성을 대표하는 서점대상을 모두 수상한 이력이 있는 작가인데다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화 등 다양한 매체와 협업했던 경력이 모두 담긴 작법서라 매우 실용적이고 훌륭한 지침서로 손색이 없다. 게다가 자필로 쓴 실제 소설 구성안과 작가 지망생과의 일문일답도 수록되어 있어 갈피를 잃은 창작자들에게도 도움이 되어줄 것 같다. '문장을 쓴다'와 '소설을 쓴다'의 간격이 궁금하다면, 지금 당장 실전에 활용할 수 있는 글쓰기 비결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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