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강 세븐
A. J. 라이언 지음, 전행선 옮김 / 나무옆의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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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기억이라는 직물로 짜여 있으므로 그들은 꿈을 꾸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그는 꿈을 꾸었다. 색깔이 변하는 모호하고 덧없는 꿈이었다. 파란색과 금색이 중첩된 안개, 그의 시야를 가로질러 움직이는 흰색의 유령 같은 형상. 그는 바닷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선체에 철썩이며 부딪히는 물소리가 아닌, 바다에서 부서지는 파도 소리였다. 그리고 더 가까이서 더 생생하게 들리는 목소리,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p.50~51

 

한 남자가 낯선 공간에서 깨어난다. 그곳은 바다 한 가운데였다. 그를 깨운 것은 총소리 혹은 누군가의 비명 소리였다. 주변을 둘러보다 발견한 것은 평범한 군복에 군화 차림의 죽은 남자 시체였다. 시체를 관찰하던 그는 팔에 쥐고 있던 권총의 기종과 성능을 바로 떠올린다. 자신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면서, 권총의 이름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름도, 집과 직업도, 가족도 전혀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자신의 얼굴에는 긴 흉터가 있었고, 팔에는 헉슬리라는 이름이 문신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배에는 그 혼자 타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삭발한 머리에 군복 차림의 그들은 모두 일곱 명이었고, 모두 자신이 누군지 기억이 없었다. 왜 이 배 위에 있는 건지, 이 배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 건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헉슬리를 제외한 나머지 이들의 이름은 콘래드, 리스, 골딩, 플라스, 디킨슨, 핀천으로 각자 형사, 산악인, 물리학자, 의사, 군인, 역사가라는 점을 알아낸다. 그들은 함께 협력해서 이 상황을 헤쳐나가기로 협의하고, 주변을 살펴본다. 그들이 타고 있는 배는 원격으로 조종되고 있어 직접 통제할 수 없으며, 많은 양의 총기들을 싣고 있었다. 각기 다른 능력을 지닌 전문가들로 구성된 한 팀이라면, 그들에게 뭔가 임무가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혹은 어떤 이상한 실험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걷히지 않고 점점 짙어지는 분홍빛 안개의 정체도 수상했다. 그러던 가운데 그들은 위성 전화를 발견하고,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무엇이든 사적인 기억을 떠올리는 구성원은 위험요소이기 때문에 사살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그때 마침 배에서 총소리와 함께 비명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데, 과연 그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대상은 누구이며, 목적은 무엇일까.

 

 

"모든 곳은 지옥이 되리라."
"뭐라고?"
골딩이 어깨를 으쓱했다. "말로의 작품 어딘가에서 나왔던 대사 중 하나야. '온 세상이 용해되고 모든 피조물이 정화될 때 천국이 아닌 모든 곳은 지옥이 되리라.'"
"이게 그거라고 생각해? 지옥이 현실이 된 거라고?"            p.158

 

자신에 관해 무언가를 기억하게 된 사람은 곧 생리학적으로 변화를 일으키며 광기에 사로잡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위성 전화 속 목소리가 지시한 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그 존재를 사살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대체 어떤 질병이 이런 증상을 일으키는 것일까. 기억을 떠올리게 되면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되고, 공격적으로 변화게 되는 증상이라니.. 그들은 자신들이 일종의 실험 대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여정에서 다른 존재들을 만나게 되는데, 모두들 폭력적인 망상과 심각한 신체적 기형을 일으키는 병원균에 감연된 상태였다. 기억을 통해 감염되는 신종 박테리아가 집어삼킨 도시 속에서 그들 일곱 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이 작품은 출간되기 전부터 이미 메이저 영화사들의 치열한 경쟁 끝에 영상화 판권 계약이 체결될 만큼 압도적인 서사를 인정받았다. 세계의 종말을 그리고 있는 아포칼립스 스릴러이자 오싹한 호러물이기도 하다. 특히나 전염병을 기억과 연결한 부분은 팬데믹을 겪은 우리에게 보다 현실적인 미래를 느끼게 해준다. '다가올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시대를 그려'냈다고 하는 소개 문구처럼, 이 작품 속 멸망 직전의 세계가 근 미래의 지구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기억을 잃은 채 오로지 생존을 위해 낯선 이들이 함께 하는 이 여정은 긴장감 넘치는 서사를 보여주며 페이지 넘기는 속도를 빠르게 만들어 준다. 글로 표현된 소설이지만, 시각적 이미지가 넘쳐나는 작품이라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훨씬 더 오싹하고 스펙터클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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