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봄
한연진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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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길었던 겨울, 봄이 우리를 잊었나 싶을 정도로 차갑고 시린 날들이 이어지던 어느 날이었다. 봄을 찾아 긴 여행을 하던 중에 작은 새 한 마리가 무리에서 홀로 떨어지게 된다. 한참을 헤매다 새하얀 눈밭에 덩그러니 서 있는 작은 집을 발견하고, 새는 창문을 두드린다. 


똑.똑.똑.똑. "잠시 쉬어 갈 수 있을까?" 




아이는 창문을 열고 얼어붙은 새의 몸에 작은 숨을 불어 넣어준다. 작은 새는 할머니새가 해 준 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 주었고, 새와 아이는 봄을 만나기 위해 함께 남쪽으로 향한다. 그렇게 작은 새와 아이는 구불구불한 언덕 사이에서 고양이를 만나고, 동그라미 숲에서 언 땅을 딛고 서 있는 순록을 만나고, 뽀족 숲에서 부리부리한 눈동자의 올빼미들을 만난다. 


거친 바위 협곡의 눈표범을 만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호수의 검은 거북도 만나고, 높고 높은 곳을 향해 부지런히 걷는다. 그 어느 때보다도 거센 눈바람이 뺨을 할퀴기 시작하다가, 순식간에 아이의 외투가 허공으로 날아가버린다. 과연 작은 새와 아이는 이 힘겨운 여정 끝에 봄을 만날 수 있을까. 




겨울이 되어 햇빛이 약해지면 꽃은 시들고, 나무는 말라붙고, 자연의 활력들은 모두 빠져나가 버린다. 풍경은 색채를 잃어 버리고, 남은 건 그저 무채색의 추위와 차가움 뿐이다. 하지만 길고 길게만 느껴지는 겨울에도 끝이 찾아 온다. 엽록소의 생생한 초록빛으로 온통 세상이 가득해지는 봄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기에, 우리가 겨울을 견뎌낼 수 있는 건 아닐까.


고양이의 포근한 인사, 순록의 믿음직한 용기, 올빼미의 소중한 호의, 눈표범의 한결같은 기다림, 그리고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검은 거북의 친절까지 아이와 작은 새의 여정을 함께하는 것은 봄을 기다리는 동물들의 다정함이다. 




이 작품은 <눈물문어>, <우리 반 문병욱> 등의 작품으로 만났던 한연진 작가의 신작이다. 새하얀 눈으로 가득한 겨울 풍경에서 시작하는 이야기지만, 페이지를 넘길 수록 따뜻한 봄의 빛깔들이 알록달록 펼쳐지는 너무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봄을 기다리는 아이의 하얀 외투가 고양이의 포근한 숨, 순록의 싱그러운 숨, 올빼미의 반짝이는 숨, 눈표범의 고요한 숨들이 모여 점점 예쁜 컬러로 물들기 시작한다. 봄을 기다리는 건 동물들도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그 작고 소중한 마음들을 담아 색색의 숨들이 모여 겨울의 끝, 봄을 향해 달려간다. 


이제 겨울의 중반 정도 지나가고 있다. 아직 두어 달은 지나야 봄이 찾아올 것이다. 그래서 봄의 온기가 가득한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잊고 있었던 봄의 아름다움과 설레임을 다시 느낄 수 있어 너무 좋았다. 끝날 것 같지 않은 긴 겨울을 보내고 있는 당신에게 이 그림책을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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