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데 가끔 뭘 몰라
정원 지음 / 미디어창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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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는 드디어 새학년이 되었다. 엄마 손을 잡고 입학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4학년이다. 새 담임선생님은 좋은 분인 것 같다. 마음에 안 드는 건 여자와 남자를 짝꿍으로 앉힌 것이다. 왜냐하면 정훈이는 친한 친구인 윤석진과 앉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일기장에 쓰면 선생님이 읽어 볼 거라고 생각했고, 그 결과 짝을 다시 정하게 된다. 같이 앉고 싶은 사람 이름을 적어 내고 자리가 바뀌지만, 정훈이는 역시나 석진이와 짝꿍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친한 친구와 짝꿍이 되지 않아도 좋다는 걸 알게 된다. 왜냐하면 새로운 친구와 친해지면 되니 말이다. 




<올해의 미숙>, <뒤늦은 답장>으로 만났던 정원 작가의 신작이다. <올해의 미숙>에서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까지 한국의 익숙한 풍경을 바탕으로 의지할 데 없이 외롭고 쓸쓸하게 성장하는 주인공 미숙의 십대 시절을 그렸다면, <뒤늦은 답장>에서는 200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관계와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며 성장하는 주인공 남우의 마음을 찬찬히 보여주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열한 살 정훈이와 친구들의 일상을 통해 결코 만만하지 않은 어린이들의 세계를 다정하고 사랑스럽게 그려냈다. 




표지에 있는 잔뜩 불만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어린이의 표정부터 인상적이다. 점점 더 자아가 생기고, 주변 관계에 대한 생각이 늘어나는 시기에 아이들은 불만도 많고, 걱정도 많고, 고민도 많아진다.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앉지 못해 화가 나고, 분식집에서 떡볶이 국물을 매번 많이 안 주셔서 아쉽고, 친구가 내 몫의 만두까지 먹어 버려서 짜증나고, 자신보다 키가 큰 친구에게 약이 오르기도 하고, 엄마가 스마트폰을 사주지 않아서 방학 동안 친구들과 연락하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저학년 동생에게 고학년다운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우산을 빌려주고는 비를 홀딱 맞기도 하고, 길에 홀로 있는 강아지를 병원에 데려다 주기도 하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얼굴이 반쪽이 된 친구네 집에 찾아가 위로를 해주는 의젓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어린이들의 세계는 어른들의 세상 못지 않게 진지하다. 어린이들은 작은 일에 투덜대고, 사소한 일로 다투더라도, 잘못을 인정하면 제대로 사과할 줄 알고, 필요할 때 요구사항을 말할 수 있으며, 부당한 일에 화를 낼 줄 안다. 살면서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는 갈등과 낯선 감정들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결해나가는 열한 살 어린이들의 모습에서 때묻지 않는 순수함이 느껴졌다. 어느 정도 무모해 보이거나 지나치게 용기 있어 보이는 행동도 그 시절이기에 할 수 있는 기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점점 어른이 되면서 불편함에 익숙해지고, 차별을 모른 척하며, 부당함을 참아야 하는 것으로 만드는 세상 속에서 이들의 반짝거리는 순수함이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원의 작품들은 매번 드라마틱한 전개 없이 담백하고 잔잔하게 펼쳐지는 서사를 통해 누구나 한때 겪었던 시절을 돌아보게 만드는 잔상을 남겨주곤 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잊어 버리고 살았던 그 시절을 돌아보게 만들어 주고, 이제는 아득하게 느껴지는 지난 날의 나에게 안부를 물어보고 싶어지게 하며, 나에게 소중한 것들을 더 소중하게 대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 어린이라서 안 되는 것 투성이인 세상이지만, 그 작고 여린 존재들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좋은 어른들이 많아져서 조금씩 달라질 수 있기를 바래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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