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가 전해 준 것
오가와 이토 지음, 권영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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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에 씨는 밤이 되어 주위에 사람이 없어지면

종종 옛날이야기를 해 주었다.

새들끼리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인간에게는 비밀인 듯했다.

인간은 자신들만 말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야에 씨는 내가 모르는 것을 많이 가르쳐 주었다.

나는 매일 얼른 밤이 오길 기다렸다.             p.23


이 작품의 주인공은 작은 왕관앵무 새 '리본'이다. 어느 날 회색앵무 할머니 '야에 씨'를 만나 새로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 전에는 자신이 말을 걸어도 상대방은 어리둥절해하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처음으로 서로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을 만나게 된 것이다. 야에 씨에게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그들은 날개를 잃었기에 하늘을 날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 새라는 동물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리본은 야에 씨와의 소통을 통해 말이 통한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된다. 아예 씨는 착한 인간이 있으면 나쁜 인간도 있다고, 자신이 겪은 전쟁의 참상에 대해, 그리고 세상의 여러 가지에 대해 알려 준다.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도 야에 씨를 통해서였다. 하지만 리본은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 대신 노래를 기억하고 있었다. 듣기만 하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는 그 노래를 평생 잊으면 안 된다고 야에 씨는 말한다. 그리고 다정한 날개의 주인이 되라고, 그게 바로 새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고 말한다. 그게 야에 씨의 마지막 말이었다. 이후 다른 곳으로 이사한 리본은 모험을 계속하면서 다양한 인간을 만났고, 미유키라는 소녀의 새로운 가족이 된다. 




"우리 나무는 내내 같은 곳에서 살아.

언제나 보고 있어.

그걸 잊지 않고 기억해 두는 게 우리 역할이란다."

"굉장한데요.

난 금세 잊어 버리는데."

"하지만 그 대신 너희한테는 날개가 있지.

생명체는 모두 주어진 역할이 있어.

그걸 완수하는 게 인생인 거다."                p.83


<라이온의 간식>, <츠바키 문구점> 등 국내에도 많은 작품이 소개되어 있는 오가와 이토의 신작이다. 아름다운 손편지로 누군가의 간절한 마음을 대신 전해주는 가슴 뭉클한 기적을 보여줬던 <츠바키 문구점>, 일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소소한 음식들이 풍요로운 힐링을 전해줬던 <양식당 오가와>, 경건하고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동화 같은 소박한 이야기 <마리카의 장갑>, 과하지 않게 적절한 감정선을 유지하면서 봄바람처럼 살랑거리는 기분이 들게 했던 <라이온의 간식> 등 오가와 이토의 소설들은 매번 섬세하고 따뜻했다. 


이번 작품은 일본의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구리포포(GURIPOPO)’와 컬래버레이션한 미니 소설로 어른들을 위한 한 편의 동화같은 느낌이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작은 판형과 짧은 분량이지만, 여러 번 다시 읽고 싶은 여운을 남겨주는 작품이다. 




작은 왕관앵무 새 리본은 엄마의 얼굴도 모른 채 자랐지만, 할머니 새 야에 씨와 인간 소녀 미유키와의 만남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성장해 나간다. 그들과의 이별 이후에도 리본의 여정은 계속 되고, 하늘을 날아다니고, 나무 할아버지를 만나며 어른이 되어 간다. 살아 있는 존재에겐 누구나 각자의 역할이 있고, 새의 사명은 누군가의 희망이 되는 거라고 배워 가며, 알 속에서 들었던 작은 목소리와 소중한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해낸다. 


이 작품은 오래 전에 국내에서도 출간되었던 <바나나 빛 행복>을 원작으로 탄생한 이야기이다. 오가와 이토가 어릴 적 할머니와 함께 새를 키웠던 추억을 바탕으로 쓰였던 그 작품 속에서 마치 본능처럼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의 곁으로 날아가던 아기 새 리본의 이야기를 기억한다면 이번 작품이 더욱 반갑게 느껴질 것 같다. '새에게는 날개가, 나무에게는 나이테가 있듯 생명체에게는 모두 주어진 역할이 있으며 그것을 완수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이야기하는 이 작품은 오가와 이토만이 보여줄 수 있는 특유의 맑고 건강하고, 따뜻한 느낌이 가득하다. 새해를 맞아 소중한 누군가에게 선물하기에도 딱 좋을 것 같다. 전세계 100만 독자를 사로잡은 일본 힐링 소설의 원조, 오가와 이토의 사랑스러운 이 작품을 놓치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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