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까마귀 살인사건
다니엘 콜 지음, 서은경 옮김 / 북플라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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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이에요. 연쇄 살인범의 딸이 강력계 형사가 되었잖아요... 사실 그건 쓰레기 같은 삼류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에요. 난 당신이 오늘 밤 왜 혼자 날 쫓아왔는지 처음엔 전혀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건 무모했어요. 하지만 이젠 알겠어요. 당신의 가치를 증명하려면 당신은 남들보다 10배는 더 열심히 해야 했겠죠. 사람들은 당신이 마침내 무너져서, 그동안 자기들이 몰래 뒷담화한 말들이 사실이었다는 걸 증명해 주길 기다리고... 또 바라고 있을 걸요. 당신 아버지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든, 어떤 유전자를 물려받았든, 뇌가 어떻게 잘못되었든 언젠가 그 정체가 드러나길 바라고 있겠죠."            p.108~109


연회색 카펫 위에 금빛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누워 있다. 하지만 그녀는 실크 스카프로 목이 졸려 죽어 있는 상태였다. 이는 유명 인플루언서의 SNS에 업로드 된 사진 중의 한 장이다. 더 끔찍한 두 번째 이미지는 250만 명이나 공유해가며 급속도로 퍼져나간다. 늘 같은 수법으로 살해되는 세 번째 희생자였다. 실크 스카프로 목이 졸리고, 얼굴엔 할퀸 자국이 다섯 개 있었으며, 목이 잘렸는데 몸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이 사건의 범인을 향해 언론은 '갈까마귀'라는 별명을 붙였다. 지난 밤 친구들끼리 모여 파티를 했고, 파티가 끝난 후 친구 세 명은 자리를 뜨지 않고 문밖에 앉아 밤새워 놀았다고 한다. 창문은 하나뿐이고, 방 안은 이중으로 잠겨 있었으며, 침대 위에 곯아떨어져 있는 남자친구 바로 옆에 잘라낸 여성의 머리를 놓아둔 채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 범인은 대체 누구일까. 


연극 무대에 놓여있던 배우의 잘린 머리, 시상식장에서 발견된 가수의 머리, 그리고 유명인들이 나오는 연애 프로그램에 출연해 인기를 얻은 여성까지 세번 모두 다 머리를 제외한 나머지 몸통은 감쪽같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렇게 연쇄 살인은 계속 이어지고, 신출귀몰한 범인은 점점 더 불가능해 보이는 장면을 연출하기 시작하는데... 사건을 맡은 스칼릿 형사는 불가능해 보이는 살인을 계속하는 범인을 막을 수 있을까. 좌충우돌하면서 주로 혼자 사고를 치고 다니는 형사 스칼릿은 결국 진전 없던 수사를 반전시킬 단서를 찾아낸다. 바로 첫 번째 피해자의 사라진 몸통을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함께 발견된 목걸이가 다음 타깃을 가리키고 있었고, 목걸이의 주인은 중동 석유 재벌의 딸이었다. 삼엄한 경호팀과 함께 특급 호텔의 꼭대기 층을 모두 쓰고 있어 범인이 접근하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이긴 했지만, 스칼릿은 주변 곳곳의 보안을 확인한다. 그리고 곧이어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초현실적인 공상 과학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꿈같은 장면이 펼쳐지며, 또 다시 살인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당신은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을 하는 거죠?" 스칼릿이 물었다. 런던탑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 모든 사람, 그 모든 죽음이 당신을 따라다닐 텐데?"

"죽음은," 헨리가 대답했다. "... 따라다니지 않아요. 죽음은 거기서, 그 순간에 끝나요. 그걸로 끝이에요... 늘 같아요. 항상 똑같은 순서대로 감정을 느끼죠. 두려움, 희망, 절대 오지 않을 무언가가 올 것이라는 희망, 그리고 눈 깜짝할 순간의 깨달음, 그 다음에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돼요."             p.304


<봉제인형 살인사건> 시리즈로 네 편의 작품을 선보였던 다니엘 콜이 새로운 시리즈로 돌아왔다. 이번 작품에서는 충동적이고 앞뒤를 가리지 않는 성격으로 '돌아버린 딜레이니'라고 불리는 여형사 스칼릿 딜레이니를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극중 많이 언급되지는 않지만, 스칼릿의 아버지가 연쇄살인범이었다는 설정이 있어 흥미로웠다. 그녀의 아버지는 '행운의 칼잡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연쇄살인범으로 7개월 동안 여덟 명의 여인을 살해했다. 전부 붉은 머리였는데, 마지막 한 명은 예외였다. 자신의 아내였기 때문이다. 어린 스칼릿이 뒤뜰에서 놀 때 그녀의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살해되었다. 이유는 어머니가 남편의 범죄 행각을 알아냈기 때문이었다. 스칼릿의 어린 시절이 어땠을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녀의 어린 시절과 관련된 정보는 상사인 프랭크와의 인연을 보여주는 부분에서 잠깐 언급되는 정도라 아마도 이 부분은 시리즈를 이어 나가면서 더 자세히 풀어나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스칼릿 만큼이나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또 다른 인물은 바로 불법적인 일도 서슴지 않는 사립 탐정 헨리이다. 조각같은 얼굴과 근육질 몸을 가지고 있고, 넉살좋고 다정한 것 같으면서도 나쁜 남자같은 면모를 보이는 인물이라 앞으로 스칼릿과의 파트너십이 더욱 궁금해진다. 일반적으로 탐정하면 쉽게 떠올리는 인물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캐릭터라 이 사람이 나쁜 사람인지, 좋은 사람인지 시종일관 독자들을 헷갈리게 만들고 있다는 점도 페이지 넘기는 속도를 빠르게 해준다. 진지한 스칼릿에게 '당신하고 같이 연쇄 참수 살인범을 쫓는 경찰 놀이는 즐거워요. 진심이에요. 하지만 난 그냥 단순한 호의로 이 일을 하는 게 아니에요'라고 말하면서 불법 거래에 대한 조건을 얘기하는 모습과 그럼에도 위험한 순간에는 그녀를 지키려고 하는 모습이 상반된 매력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작가가 벌써 이 시리즈의 후속편을 집필 중이라고 하니 다음 이야기도 곧 만나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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