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연극 킴 스톤 시리즈 4
앤절라 마슨즈 지음, 강동혁 옮김 / 품스토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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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이 관심을 가진 건 밥의 손이 사라졌다는 수수께끼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아무도 평범한 사람을 위해 싸워 주지 않는다는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미제 사건은 주기적으로 재검토되었지만 밥이 잔의 맨 윗부분에 크림처럼 떠오를 가능성은 낮았다. 그는 눈에 띄지 않는 인물이었다. 아무도 수사 결과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러니 다른 사건들이 언제나 우선순위에 오를 터였다. 밥은 '신원미상 남성'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검시관의 소유물로 남아 있을 것이다.          p.134


너무 애정하는 킴 스톤 시리즈 그 네 번째 작품이 나왔다. 올해 표지 디자인이 바뀌고, 제목도 원제에 맞게 달라져 1,2,3권이 재출간되었는데, 벌써 신작을 만날 수 있다니 부지런한 출판사의 열일에 박수를 보낸다. 사실 좋아하는 시리즈를 계속 번역본으로 만나볼 수 있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늘 궁금했던 작품이 국내에 출간되지 않아 원서를 구매하곤 했던 터라, 이렇게 신작이 나올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다. 부디 시리즈가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더 많은 이들이 킴 스톤의 매력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면 좋을 것 같다. 


앤절라 마슨즈의 <킴 스톤 시리즈>는 기존에 <너를 죽일 수밖에 없었어>, <상처, 비디오, 싸이코 게임>이라고 번역되어 먼저 나왔었다. 새롭게 옷을 갈아입고 시리즈의 통일성을 주변서 시작되는 시리즈에서는 제목이 원문에 가까운 <소리없는 비명>과 <악마의 게임>으로 바뀌었고, 이북으로만 나왔었던 3권 <사라진 소녀들>도 함께 출간되면서 본격적인 시리즈가 시작되었다. 사실 영국에서는 시리즈가 무려 20권까지 출간이 된 아마존 베스트셀러로 19개국에 번역 출간되었고, 시리즈 통산 누적판매 부수가 1300만 권이나 된다. 이 시리즈는 독보적인 캐릭터의 힘과 탄탄한 플롯과 전개로 압도적인 재미를 선사하는데 스릴러 장르를 좋아한다면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 등 다수의 작품을 번역한 강동혁 역자는 오직 이 시리즈를 출간하기 위해 출판사를 차렸을 정도인데, 이 작품을 읽고 나면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첫번째 작품인 <소리 없는 비명>에서는 옛 보육원 부지의 유물 발굴사업을 배경으로 10년이 넘는 세월을 넘나드는 연쇄살인을 다루었다. 두 번째 작품 <악마의 게임>에서는 성범죄자의 살인사건을 배경으로 타인의 심리를 조정하는 소시오패스가 등장해 흡입력있는 스릴을 선사했었다. 타인의 심리를 조종하는 소시오 패스라는 캐릭터가 킴에게도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점때문에 더욱 흥미진진했던 작품인데, 이 두 사람의 대결 덕분에 킴의 끔찍한 어린 시절과 어두운 과거에 대해서 조금씩 더 깊이 있게 알게 된 작품이기도 했다. 세 번째 작품 <사라진 소녀들>에서는 희대의 납치극이 벌어졌다. 비현실적인 상황에 놓이게 된 부모들의 절망과 공포를 통해 모성애와 부성애의 다양한 모습과 인간 본성의 어두운 밑바닥을 그리고 있어 더 묵직하고, 깊이 있는 시리즈 특유의 매력을 보여주었다. 이는 부모와 정상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위탁가정을 전전해야 했던 킴의 과거와도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어 그녀의 인간적인 면모가 두드러지는 작품이기도 했다. 




아마 대니얼은 킴이 다시는 자신을 그토록 많이 내줄 수 없는 이유를 모를 것이다. 킴이 가진 모든 것을 일에 바치는 까닭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킴에게는 이것이 안전하게 지내는 방법이었다. 그 무엇도 킴의 생각을 바꿀 수 없었다.

킴은 눈물을 닦고 종잇조각을 다시 서랍에 넣었다.

후회는 없었다.

세상에는 킴이 지금 이대로의 모습이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p.333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인 <죽음의 연극>에서는 킴 스톤과 팀원들이 '웨스털리 시체 농장'으로 향한다. 이곳은 법의인류학 및 그와 연관된 분야에 특화된 연구 시설로 시체의 부패 단계와 곤충에 대한 움직임을 연구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킴은 연구 목적으로 기증되지 않은 새로운 시신을 발견하게 된다. 옷을 완전히 갖춰 입은 여성이 뭉개진 얼굴을 한 채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눈으로 푸른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입 속이 흙으로 가득 차 있는 그 여성에게 구타 당한 얼굴 외에 다른 상처는 없었다. 킴과 팀원들은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하고, 이어서 또 다른 시체가 발견된다. 범인은 왜 굳이 이곳에 시체를 유기하는 것일까. 그들은 사건을 수사하며 이번 살인에는 개인적인 감정이 심하게 어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피해자들은 무작위로 선택된 것이 아니었다. 이야기는 범인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과거 회상과 현재의 수사 과정이 교차 진행되며 '죽음의 연극'을 향해 점차 다가간다.




냉소적이고 매사에 뾰족하며, 사회성이 떨어지고, 예절 혹은 사교성을 전혀 갖추지 못했지만, 업무적으로 매우 유능한 킴 스톤이라는 캐릭터는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정신 병원에 있는 엄마, 어린 시절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갖고 있는 죽은 동생, 그리고 수차례 위탁가정을 전전해야 했던 기억 등 어두운 과거가 현재의 그녀를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끼쳤는데, 이는 시리즈가 계속되는 과정에서 수시로 드러나며 킴 스톤이라는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구축하는 배경이 된다. 이번 신작 <죽음의 연극>은 특히나 시리즈 중에서도 높은 작품성으로 이탈리아에서 반카렐라 상을 수상했고, 영국의 CWA 대거상 후보에도 올랐던 작품이다. 


사교술이니 외교력 같은 건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이 발명한 거라고 생각하는 킴이 시리즈를 거듭해 나가며 한 걸음씩 나아지는 면모를 보여주는 것도 재미있고, 어린 시절부터 정신병, 상실, 학대 등 잔인함의 온갖 형태를 경험하며 자라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들에 굴복 당하지 않고, 자신의 과거를 추진력으로 삼아 정의 구현을 위해 나서는 모습도 너무 멋지다. 무표정하게 툭툭 내뱉는 말투에서 묻어나는 깨알 같은 유머도, 요리를 전혀 하지 못하면서도 매번 복잡한 메뉴에 도전하는 무모함(?)도 어쩐지 사랑스럽다. 겉보기에는 무례하고 퉁명스럽고 뻣뻣해 보일지 몰라도,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닌, 알면 알수록 더 매력적인 캐릭터 킴 스톤의 다음 이야기도 기대가 된다. 독보적인 캐릭터의 힘과 탄탄한 플롯과 전개로 압도적인 재미를 선사하는 킴 스톤 시리즈! 아직까지 만나보지 않았다면, 이번 신작으로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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