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마음
임이랑 지음 / 허밍버드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렵고 괴로운 것들이 너무 쉽게 좋은 것을 집어삼키고 평안을 지운다. 수없이 많은 밤을 쌓아 올린 평안도 순간의 불안 앞에선 불구덩이 안에 던져진 종잇조각처럼 순식간에 불타 사라진다. 정신이 망상과 싸우는 동안 몸이 백기를 흔들고 만다. '몸이 정신에게 지는 건 이렇게 초라한 마음이 되는 거구나'하며 슬퍼진다. 나약한 내가 강인하려는 나를 훼방 놓는다... 털어 버리고 싶다. 좋은 사람들의 눈빛만 남기고 쓸모없는 부스러기는 모두 사라져라.           p.42


식물을 가꾸고, 노래를 짓고, 글을 쓰는 사람, 디어클라우드 임이랑의 신작이다. <아무튼 식물>,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 <불안이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리라> 모두 너무 잘 읽었고, 팟캐스트 식물수다의 오랜 팬이기도 해서 임이랑 작가의 신작은 언제나 설레이는 마음으로 챙겨보게 된다. 머리가 복잡한 날엔 자꾸만 식물의 세계로 도망치게 된다. 유해한 것들로 넘쳐 나는 세상 속에서, 식물만큼 무해한 존재가 또 있을까. 푸릇푸릇한 식물이 주는 그 에너지가 또 매일을 살아갈 힘을 준다. 임이랑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건 바로 '식물'때문이다. <아무튼, 식물>과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는 지금도 가끔 펼쳐 보는 책이고, 팟캐스트 식물 수다를 통해서 정말 많이 배웠다. 그야말로 힐링이 되는 목소리와 글이라 위로가 필요할 때, 휴식이 필요할 때 항상 찾게 된다. 


이번 신간은 식물 이야기 대신, 개인적이고 내밀한 단상들을 담은 비밀 일기장 같은 느낌이다. 2000년대 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임이랑 작가가 지나 보낸 시간과 감정을 엮어 만들었다. 그녀는 2004년부터 2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개인 홈페이지 <감정공작소>에 솔직하게 기록해 왔다고 한다. 그래서 이 글들에는 뮤지션, 베이시스트, 작가, DJ, 식집사… 그녀의 다양한 직업 세계와 취향, 삶의 흔적이 자연스레 녹아 있다. 식물을 가꾸고, 노래를 짓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고민과 불안, 일상과 감정들이 담겨 있어 짧은 글들이지만, 그 무게와 깊이는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임이랑 작가가 온 마음을 다해 좋아하는 식물들을 향해 쓴 글과 말을 통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아왔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서 그 이면에 있는 많은 생각들과 배경을 알게 되어 더 공감되고, 더 친근해진 듯한 기분도 들었다. 





요란하지 않게, 잔잔하게, 자극에서 가장 먼 방식으로 나를 입히고 먹이고 도닥인다. '그럭저럭 사는 시기가 너무 길어지지만 않는다면 당분간은 이대로 괜찮겠지' 생각하며. 큰 소리로 엉엉 울고 싶은 내가 툭 튀어나와 그럭저럭 살아가는 나를 때려 눕히고 일상을 눈물바다로 만들어 곤란해지기 전가지는 그럭저럭 살아 내기로 한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결국은 슬픔과 애통함을 건너 씩씩하게 살아갈 날이 다시 돌아올 테니까. 비슷하게 생긴 인생의 모퉁이를 이미 나는 몇 번이고 돌아 이 자리에 있다.             p.242~243


이 책에는 단정한 일상의 루틴, 생활을 리듬화하는 버릇, 물속에서 느끼는 고요한 감각, 18년 차에 접어드는 밴드의 베이시스트로 살아가는 이유, 생각을 멈추는 연습, 일과 쉼의 밸런스, 어른으로 산다는 것의 고단함, 뮤지션과 작가로서 갖는 고민과 불안감 등 2000년대 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임이랑 작가가 지나 보낸 시간과 감정들이 촘촘하게 엮여 있다. 우리가 살아가며 놓치고 있던 것들을 세심하게 붙잡아 반짝반짝 빛나게 보여주는 글들이다.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가드너로 사느라 분주하고, 해가 지면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일을 하는 임이랑 작가의 일상이 궁금했다면, 이 책이 더 재미있게 느껴질 것 같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순간의 결정들이 모여 행동의 패턴을 만들어 가고, 그 새로운 패턴이 나를 조금씩 달라지게 만든다. 그러니 변화한 모습이란 각자의 책임이라는 거다. 내가 먹는 음식과 자세, 듣는 음악과 걷는 시간, 읽는 책과 만나는 사람들 모두 내가 선택한 것이니 말이다. 좋은 결정을 내릴 줄 아는 사람들이 더 멀리까지 가게 된다,는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그런데 그 '좋은' 결정이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좋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 걸까. 시라는 형식을 제외하고는 짧은 글을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임이랑 작가의 글들은 툭툭 던져놓은 단어에도, 단상 같은 글에도 생각할 거리가 담겨 있어 좋았다. 짧아서 술술 페이지가 넘어 가지만, 밑줄 긋고, 포스트잇 플래그를 붙이고, 생각날 때마다 다시 펼쳐보고 싶은 그런 글들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때는 '지금이 아닌 순간을 갈망하고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꿈꾸던 시기'가 있다. 하지만 결국은 지금에 만족하고 여기에 마음을 가라앉히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 그렇게 현실에 단단히 발을 딛고 서야 나만의 방식으로, 오롯하게 나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뒤척이는 어느 날 밤, 어수선한 마음을 달래고 싶은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